전자레인지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순간, 소주가 할 일이 남아 있다
전자레인지는 늘 바쁘게 쓰인다. 밥을 데우고, 국을 돌리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내부 벽면에는 튄 기름과 굳어버린 얼룩이 층층이 쌓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을 여는 순간 묘한 냄새가 먼저 올라온다. 닦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손이 안 가는 이유다. 물로는 잘 닦이지 않고, 세제를 쓰자니 음식이 닿는 공간이라 마음이 걸린다.
이럴 때 냉장고 구석에 남아 있는 소주 한 잔이 역할을 바꾼다. 마시기엔 애매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그 술이, 전자레인지 앞에서는 꽤 실용적인 도구가 된다. 소주는 알코올을 품고 있고, 알코올은 기름을 녹이고 냄새를 붙잡는 데 능하다. 여기에 물이 더해지면, 굳은 때를 불리는 데 딱 맞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방법은 번거롭지 않다. 물과 소주를 섞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잠시 돌리면, 내부는 금세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찬다. 마치 작은 사우나처럼, 벽에 붙어 있던 기름때가 수분을 머금고 느슨해진다. 이 상태에서 바로 문을 열지 않고 잠깐 기다리면, 증기가 구석까지 스며들며 일을 마친다. 닦기 위한 준비는 이미 끝난 셈이다.
행주로 한 번 쓸어내리면 그동안 버티고 있던 얼룩이 힘없이 떨어진다. 박박 문지를 필요도 없다. 소주에 들어 있던 알코올은 기름을 풀어주고, 휘발되면서 냄새까지 함께 데려간다. 생선이나 고기를 데운 뒤 남아 있던 비린내도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향을 덮는 게 아니라, 원인을 없애는 쪽에 가깝다.
이 방식이 편한 이유는 뒤처리가 없다는 데 있다. 화학 세제를 쓰지 않았으니 여러 번 헹굴 필요도 없고, 청소 직후 다시 음식을 데워도 찜찜함이 남지 않는다. 무엇보다 ‘청소했다’는 피로감이 크지 않다. 짧은 시간에 끝나고, 결과가 분명하다.
전자레인지 청소는 미루면 더 귀찮아진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데운 날, 소스가 튄 날, 달걀이나 우유를 돌린 날처럼 오염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 때 바로 한 번 돌려주는 게 가장 편하다. 혹은 일주일에 한 번, 남은 술을 쓰는 날로 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시지 못하고 남은 소주는 그렇게 또 다른 쓰임을 얻는다. 버려질 뻔한 한 잔이 주방을 정리하고, 전자레인지를 다시 편하게 만든다. 살림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새로운 걸 들이기보다, 이미 있는 것의 역할을 조금 바꿔보는 데서 훨씬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