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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22. 2024

가출

이른 사춘기의 기억.


 

얼마가 있는지 주머니를 털어보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6-7천 원가량이었던 거 같다. 엄마는 장사를 나갔고 언니들과 동생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마당에 덩치가 나만한 개가 묶여 있었는데 사람이 지나가면 꼭 달려들어 매달리곤 했다. 다행히 개도 자고 있다.

나는 살금살금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점점 빨리.. 더 빨리.. 더..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누가 쫓아오듯 달려간 곳은 시외버스터미널. 제주시로 가는 승차권을 샀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누가 볼까 버스에 얼른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의자에 앉아 뒤로 넘어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무서운 아빠도 싫고, 불쌍한 엄마도 지겨웠다. 그들은 날 버리지 않겠지만, 내가 넌덜머리가 났다. 모두 버리고 싶었다. 나는, 아무도 찾지 못하게 도망치는 중이었다.



 중문시내에서 몇 정거장을 지나 내렸다. 간판도 골목들도 낯선 그곳을 터덜터덜 걷다 보니 성당이 보였다. 이곳은 착한 사람들만 사는 곳일 거야. 나처럼 불쌍한 아이는 받아줄지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성당 정원을 기웃거렸다. 수녀님 한분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친구는 어떻게 이곳에 있니?”

“그냥.. 버스 타고 아무 데서나 내렸어요.”

“너 혼자 왔니?”

“네.... “

날 해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수녀님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집을 나왔고,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수녀님은 집 전화번호를 물어봤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순간 느꼈다. 수녀님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생각해 보니, 집으로 가야 할거 같아요. 안녕히 계세요.”

수녀님은 나에게 3천 원을 주시며 집에 가는 버스비에 보태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서귀포가 아닌 제주시행 버스에 다시 올랐다. 버스가 닿는 마지막 장소로 가보자. 종점은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쥐포 굽는 냄새, 텁텁한 냄새.. 어디서 많이 맡아본 듯한 공기였다. 아무 의자에 털썩 앉았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염없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아이고, 너 미미 아니냐? 여기 왜 혼자 이시니? 어떵 제주시까지.”

같은 반 예진이네 엄마였다. 예진이엄마는 막내이모의 친구이기도 하다. 예진이엄마는 이렇게 혼자 멀리 다니면 안 된다며 내 손을 잡아끌고 서귀포행 승차권 두장을 샀다. 나는 꼼짝없이 예진이엄마 손에 붙들려 처음 출발한 곳으로 와버렸다.



 분명 집을 떠났는데, 다시 우리 동네다. 중문도 가고 제주시도 다녀왔는데 아직도 한낮이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집으로 걸어갔다. 조금 지쳐던것 같다. 그리고 지금 돌아가면 아무도 나의 가출을 모를 거 같았다. 그래, 집은 언제든 나갈 수 있어. 아무렇지 않게 마당에 들어서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마 엄마는 알았을 것이다. 예진이엄마가 막내이모에게, 막내이모가 다시 엄마에게 말했겠지.

하지만 엄마는 내게 별말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 후로 한 두 번 더 가출을 시도했다. 한 번은 들켜서 아빠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집을 나가지 않았다. 체념한 것은 아니고, 그냥.. 집에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나의 관심이 집이 아닌 친구들로 향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더 이상 집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이십 대 초반이 되었을 때 엄마가 무심코 흘리는 말을 들었다.

“난이. 자이 키우는 게 제일 힘들어쪄.”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 한마디였다.


우연히 보육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나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의 존재도 모르고 살아가는 특별하고 평범한 아이들이 내게 관심받기 위해 몸무림 치는 걸 보며 느꼈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징글징글한 그곳이,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었다는 것을. 아이들이 밉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일들로 신경이 날카로울 때 이 모든 감정이 아이들에게 향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생각한 것들은 모두 단편적인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부모님이 다 떠난 지금, 나는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다. 부모의 존재와 의미.. 그리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지금 나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과 책수업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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