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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15. 2024

거미의 인사

수업독서.

 ‘태어난김에 세계일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웹툰작가 기안84와 여행유튜버 빠니보틀이 주축이 되어 인도와 마다가스카르 등의 여행 일대기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여행의 날것을 보여주는 출연진들의 모습도 신박하고 재밌었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마트 들른 김에, 학교 간 김에, 오이 사는 김에도 아니고 태어난 김에 라니.




 우리는 태어난 이유로 꼭 무언가를 배워야하고 이뤄야 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라는 말은 삶이 결코 무겁지 않고, 당연히 무얼 꼭 해야 하는 의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말은 신기하게도 내게 긍적적인 힘을 준다. 당위적인 말이 아님에도 내 스스로 무얼 생각하게끔 하고, 하고 싶게끔 한다. 태어난김에 힘껏 살아보고, 태어난김에 아이들에게 듬뿍 사랑을 주고, 태어난김에 뭐 한가지는 열심히 해보고, 태어난 김에 건강도 챙겨보고 뭐 이런 생각들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본인이 원하고 선택해서 태어난 것은 없다. 나 또한 그렇다. 아들이 귀한 집에 셋째딸은 퍽 달가운 자식이 아니었을거다. 그럼에도 나는 태어났고, 키워졌고, 자라왔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는 일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들고, 아프고,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5학년 수업을 하며 <거미의 인사> (글 어윤정, 그림 남서연, 샘터 펴냄)라는 책을 읽었다. 여기서 주인공 누리는 뺑소니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하늘에 간지 백일이 되는 날, 환생 서비스를 통해 하루동안 이승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사람의 모습으로 갈 수는 없다. 스파이더맨을 좋아했던 누리는 거미로 환생하여 가족들을 찾아간다.


 슬픔에 젖은 가족들을 보며 거미의 모습을 한 누리는 울다 잠든 엄마의 따뜻한 손등에도 올라가보고, 웃음을 잃은 아빠를 눈에 담는다. 여기서 반전은 누리가 거미로 변해 집으로 갔을 때 만난 강아지 코리가, 환생한 할머니라는 사실이다. 하루안에 하늘로 돌아가지 않으면 평생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데,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 강아지의 생을 택한 것이다. 할머니는 누리가 거미로 살아가지 않고 온전한 자신의 생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늘로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


 함께 수업한 신우는 자신이 환생 서비스를 받게 된다면 참새로 변해 가족들을 내내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사람에게,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조금 더 일찍 온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겠다고 했다.




 책을 통해 태어남과 죽음이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것들은 흘러가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태어나는 것은 축복이고, 죽음은 허무하고 허망하다. 그리고 죽음은 주변에 삼키지 못할 슬픔을 남긴다. 그러나 어찌보면 죽음도 다른 부분의 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삶도 죽음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비록 죽은 이후의 생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을 한 사람은 없지만,  죽음 이후의 삶이 더 길고 깊은 시간일 수 있다. 아이들과 하는 책수업이 내안의 어린 마음에도 온전히 스며들어 위로를 주고 성장의 씨앗을 심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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