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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mi Aug 24. 2018

플라스틱 빨대 이제 안 주신다고요?

네, 저는 찬성입니다만

다 자라면 무게가 14~45kg쯤 나간다. 육지에서 걸을 수 있긴 하지만, 주로 바다에서 생활한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드문 재주를 지녔다. 돌을 써서 조개껍질을 깐다. 윤기 나는 풍성한 털에 선량한 눈빛과 어리둥절한 얼굴. 북태평양 동북쪽 해안에 서식하는 수달(sea otter) 이야기다.


출처: wikipedia


이 어여쁜 동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말에 포인트 로브스 주립 자연보호구역(Point Lobes State Reserve) 내 해안 절벽을 따라 하이킹을 하기도 했고,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보러 가려고 수족관 연간 회원권을 끊기도 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Monterey Bay Aquarium)은 해양 생태계 연구와 보호에 특화되어 있으며, 비영리로 운영된다.



수족관 내에서 안내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하나같이 무척 친절하셨다. 조금만 헤매는 것 같아도 득달같이 알아채고는 먼저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걸고 다정하게 웃어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수족관을 아끼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교육을 이수한 뒤 자원봉사로 나와계시는 지역 주민들이라고 한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입장료, 기부금 등으로 수족관이 유지되는 듯했다.


내가 회원권에 지불한 비용 역시 몬터레이만 인근 생태계를 연구하고 보호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은 우편으로 받아본 소식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수족관에서 보호하고 있는 동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위험에 처했다가 기상천외한 작전을 통해 구출된 생명들이었다. 야생에서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내 사랑 수달 역시 멸종위기종에 속한다.



집에서부터 해안 산책로를 따라 30분쯤 천천히 걸어가면 수족관에 닿았다. 과거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모여 있던 자리가 이제는 작은 상점과 식당과 숙박시설로 오밀조밀한 관광지가 되었다. 수족관은 캐너리 로우(Cannery Row)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다.


나는 연간 회원권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족관에 자주 드나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펭귄이나 수달이 먹이를 먹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기도 했고, 아무 이유 없이 들러서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해파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기도 했고, 수족관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끼니를 때우며 공부를 하기도 했고, 기념품 가게에서 소소하게 물건을 사기도 했고, 심지어는, 산책로를 따라 조깅하다 화장실이 급하거나 목이 마를 때 들르기도 했다.



그 무렵,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해류가 모이는 곳에 플라스틱 폐기물이 모여 형성된 인공섬도 충격적이었지만, 비닐이나 플라스틱 링에 목이 졸려 질식하거나, 먹이인 줄 알고 플라스틱 병뚜껑을 삼킨 채 죽어간 해양생물들의 모습은 그저 참담했다.


플라스틱의 폐해야 이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생활의 작은 편의에 지장이 초래된 지금만큼 관심이 높았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부내 커피전문점에서 빨대가 사라진 날 나 역시 무척 당황했다. 일회용품을 줄이자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사용해온 탓이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이유가 단지 환경보호 차원만은 아니었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투명한 유리잔에 차가운 음료를 마실 때와 플라스틱 용기에 마실 때. 커다란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온기를 느끼며 따뜻한 음료를 마실 때와 일회용 종이컵에 마실 때. 맛과 풍미가 더 좋은 쪽은 늘 적합한 식기에 음료를 담았을 때였다.


카페에서 가지고 나갈 것이 아니라면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주지 않고, 빨대는 아예 구비하지 않는 데 대해 불편을 토로하는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 빨대 만드는 중소기업 주가가 폭락하겠다는 신선한 관점도 있었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컵에서 우유 비린내가 났다던가, 립스틱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는 다소 찝찝한 이야기도 있었다. 손님이 많은 가게에서는 머그컵이 동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일거리가 늘어난다는 인류애적 관점도 있었다. 설거지에 드는 세제나 물 때문에 오히려 환경오염이 심해지는 것은 아니냐. 진짜 문제는 플라스틱 빨대가 아니라 조업용 그물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플라스틱 빨대를 생산하는 업체는 당분간 어려움을 겪겠지만, 환경 영향이 보다 적은 종이 빨대, 대나무 빨대, 스테인리스 빨대, 쌀 빨대 판매량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텀블러 사용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컵 부족 사태나 위생 문제, 설거지하시는 분들의 노고, 세제나 과도한 물 사용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식기세척기 사용 등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세제 사용과 각종 수고를 합산한다 치더라도 과연 그 비용이 일회용품을 생산, 판매, 유통, 폐기하면서 야기되는 폐해보다 클까? 플라스틱 빨대가 콧구멍에 들어가서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 사진을 보았다. 빨대는 45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바다거북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빨대 하나에도 민감해할 줄 알아야 더 큰 폐단도 고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허황된 것인가?


변화에 부작용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각자의 최선을 다하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일일 것이다. 서투른 한 걸음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 긴 여정의 첫 발짝이 될 수 있기를 다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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