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가로지르는 <언어의 온도>, 말에는 힘이 있기에 마땅히 수반되어야 할 <말의 품격>, 이미 지나가버려 기억으로만 아스라이 남은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다루었던 이기주 작가가 이번에는 <글의 품격>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글 쓰는 사람이 삶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책이다. 소재는 글이지만 기교나 기술을 다루는 즉효약 같은 책이 아니라 뭉근하게 오래가는 차향을 닮은 책이다. 전작을 관통하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이 책에도 그대로 묻어 있다. 예컨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들을 어떻게든 움켜쥐어 보려는 처연한 의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길 줄 아는 태도 같은 것들.
그는 글 쓰는 이로서 그가 가진 마음가짐을 "일상의 모든 것이 배움의 원천"이라는 좌우봉원,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라는 본립도생, "밖으로 쏠리지 않고 나를 지킨다"라는 두문정수로 나눈 뒤 이 세 갈래의 커다란 줄기 하에 '마음, 처음, 도장, 관찰, 기억, 존중, 욕심', '습관, 개성, 문체, 제목, 주제, 결말, 여백', '산고, 능동, 질문, 오문, 성찰, 퇴고, 지향' 각 7개의 키워드를 두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81쪽의 "글쓰기는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에게 문장을 건네며 말을 걸어보는 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도 그랬나요?', '한때 눈물을 다 써버릴 정도로 아팠던 기억이 있었나요?'"라는 문장을 읽으면, 그가 글을 쓰는 목적과 스스로 발품을 팔아가면서까지 본인의 책을 알리는 이유를 헤아려볼 수 있게 된다.
116쪽의 다음 문장을 통해서는 글을 쓸 때 작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유추해볼 수 있다. "낙서의 조력을 받아 무의식의 감옥을 탈출한 단어들이 서로 충돌하고 뒤엉키는 과정에서 온갖 생각이 레고 블록처럼 쌓이고 또 허물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일정한 계통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대열을 이루며 행진하는 느낌이 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글로 옮겨야 하는, 쓰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은 생각의 덩어리들이."
163쪽에는 독자가 으레 글쓰기 책을 사서 볼 때 기대할만한 실용적인 조언이 들어 있다.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집을 입체적으로 짓고 밖으로 드러내는 글이다. 백화점 물품을 진열하듯 스펙과 경력을 두서없이 나열한 글로는 '나'를 알리기 어렵다. 평면성을 탈피해야 한다. 어떤 활동에서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는가를 각 단락의 소주제로 삼고, 그것이 지원 동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대주제로 세워서 촘촘히 문장을 엮으면 글에 입체성을 부여할 수 있다. 자기소개서라는 틀 위에 '나'를 쌓아 올릴 수 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독자는 일정 부분 작가가 지닌 인간적인 매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32쪽의 다음 문장을 보고 나는 그에게 엄청나게 친밀감을 느끼고 말았다. "'세상에 맛없는 빵은 없다'는 것이 예전부터 내 지론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듯, 거리를 걷다가 갓 구운 빵 냄새에 이끌리면 곧장 빵집으로 빨려 들어간다." 빵을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로서는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 세상에 나쁜 빵은 없다! 그가 추천한 '오월의 종'에 무척 가보고 싶어 졌다.
이 책을 읽고 가보고 싶은 빵집만 건진 것은 아니다. 하나의 책은 다른 책으로 길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에 등장한 도서 중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꼭 읽어 보고 싶어 졌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소개하면서 작가는 242쪽에 소설의 등장인물인 쌍둥이 형제의 서술 방식을 소개했다. 이 쌍둥이 형제는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때론 모호하다는 이유에서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 "당번병은 친절하다"가 아니라 "당번병은 우리에게 모포를 가져다주었다"라고 적는다고 한다.
이는 소설가 김훈에게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인데 100쪽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김훈의 소설에는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같은 간명한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만을 촘촘하게 서술한다. 다른 작가와 저명한 학자의 문장을 무리하게 인용하거나 활용하지 않는다. 그저 사실과 사실을 잇는 느낌으로 쓴다."
진위를 알기 어려운 자극적인 정보에 노출되기 쉬운 요즘일수록 직접 보고 겪은 것이 아니라면 그건 모르는 것이라고 보는 태도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어떤 사람을 잘 모를 때 타인이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면 나도 모르게 선입관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접한 정보를 마치 다 아는 척 떠들게 될 때도 있다. 감정에만 호도되어 해당 정보가 사실인지 제대로 파헤쳐 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만큼 검증하려는 노력에는 외려 게을러지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오른다. 주인공 이치코가 절친한 친구인 키코와 크게 다툰 일이 있다. 키코에게는 절실한 고민이었는데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이치코가 속 빈 강정 같은 말로 함부로 충고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에 통달하기라도 한 듯이. 이들의 역린은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태도인 듯하다. 다른 친구인 유우타 역시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과 잘난 척만 하는 도시 사람들에게 질려서 시골로 돌아왔다. 두 손과 두 발로 직접 일궈서 얻어낸 것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요행을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성취한 것들만이 진짜라고 믿고 우직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코모리 마을 사람들은 직접 시도해본 것,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들은 바대로 실천한다.
136쪽 작가가 어린 시절 덤덤하게 써 내려간 일기를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엄마는 아빠가 쓰던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장롱에 밀어 넣었다. 이제 우리 집엔 낮에도 밤에도 아빠가 없다. 아빠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다 궁금한 게 생겨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아버지를 여읜 이 어린 소년을 꼭 안아주고 싶어 졌다면 그건 꾸밈없는 문장 사이사이에 빼곡히 차 있는 슬픔과 상실감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은 화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