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돌치레
정말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엇으로 바빴는지 생각해보면 첫째로는 돌잔치였다.
우리 둘째의 돌잔치.
돌잔치의 주인공인 둘째의 컨디션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외려 낮잠을 자지 못한 첫째가계속 안기고 짜증을 내었다. 행사 시작 전부터 엄마의 몸은 땀범벅. 다행히 본격 행사가 시작되자 첫째는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이 박수치며 웃고 사진을 찍으니 포즈도 잡으며 매우 즐거워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참고로 우리 네 살배기 아들은 요즘 귀엽다는 말을 싫어한다.
“뭐가 귀여워, 나는 멋진 거지.”라며 아주 귀여운 분노를 표출한다.
형제가 없는 나는 아가씨들이 와 자리를 채워주고 귀여운 조카들과 함께 축하해주니 너무나 행복했다. 흥성흥성한 분위기에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줄곧 함박웃음을 지었다.
소박하게 준비했지만 손님을 초대해 행사를 치르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힘든 일임이 분명했다. ‘으아’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하지만 육아는 끝나지 않는 법.
곧장 아이들의 어린이집 방학이 찾아왔다. 모든 나의 일을 중단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놀고, 먹고, 자고 이 간단한 프로세스의 반복이 얼마나 힘든지.
일단 삼시세끼 밥을 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지쳤던 며칠이었다.
방학 끝무렵 남편이 휴가를 내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대망의 여름휴가로 2박 3일 여행을 계획했고 나의 양손은 아이들의 짐으로 아주 무거웠다.
기대감으로 가득 찬 우리 가족의 짐. 수월한 여행을 위해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도록 가득 채웠다. 완벽했다.
그러나 삶은 늘 기대이외의 것으로 가득한 법, 여행 중 둘째가 많이 칭얼대기 시작했고 만져보니 몸이 뜨겁게 느껴졌다. 체온계를 꺼내 열을 재보니 39도 고열, 피할 수 없었던 둘째의 돌치레였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 와서도 연이은 고열로 아이는 힘들어했고 나도 온 신경이 아이에게 치우쳐 예민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열이 완전히 내린 다음날 아이의 온몸과 얼굴에 열꽃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고생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열꽃, 안타까우면서도 그것이 회복의 결과임을 알기에 안도의 마음도 함께였다.
아픈 뒤 아이들은 엄마 껌딱지가 된다.
아이가 내려만 놓으면 울고 계속 엄마를 찾아서 화장실조차 가기가 어렵다. 참다 참다 결국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아이를 안고 화장실에 가본 경험은 어느 엄마나 있지 않을까.
하루종일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온 어깨가 맞은 듯 아팠다. 아이와 한 몸이 되어 일주일쯤 지냈을까
그날 밤 오한으로 나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몸살이었다.
긴장이 풀럈을까?
나는 중요한 일, 힘든 일 모두 다 해내고 나서야 비로소 아플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내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소진하고 그제야 겪는 나의 돌치레.
많이 아팠다.
하루 이틀이면 나을 줄 알았는데
나흘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통증으로 힘들었고
내 몸이 이만큼 지쳐있었다는 생각이
나를 더 서럽게 했다.
진통제를 먹고 육아를 하고 남편이 퇴근하면
침대에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온전히 쉴 수 없어 회복이 더뎠으리라.
둘째를 낳고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모든 순간순간을 위해 노력했다.
두 번째 출산과 육아이기에 나름대로 수월하게 해내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주어진 모든 일정들을 다 비우고 나니
내 몸은 멈춰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 멈춰서 쉬고, 회복의 끝이 보이자.
힘겹게 느껴졌던 모든 일들이 귀하게 느껴졌다.
아이와 보내는 일상, 가족끼리 웃던 시간.
아픔의 끝에서 서러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차올랐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자란다고 한다.
엄마의 돌치레도 성장이었을까?
내 아픔에 그런 의미가 붙을 수 있길 바란다.
조금 더 자란 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