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이라고 다 같은 갑일까, 가수 이무진 갑질 논란의 핵심은?
'신호등'으로 유명한 가수 이무진이 공연장에서 스태프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간단히 요약하면, 충남 천안에서 열린 박람회에 초대가수로 공연을 하러 간 이무진씨의 리허설 도중 한 공연 스태프가 반말을 섞어가며 일방적으로 리허설을 중단시켰고,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사람들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연 주최측의 '갑질'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는 내용이다.
갑질 논란의 핵심은 가수에게 스태프가 반말을 써가며 무례하게 굴었다는 점인 것 같다. 친분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말을 쓰는 건 분명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또 이같은 행사에서 가수를 돈을 주고 고용하는 입장인 주최측이 계약상 갑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최측의 이와 같은 무례한 행동은 갑질로 지칭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번 사건을 과연 흔히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갑질' 사건으로 볼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벌써 30년쯤 전의 일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남성 4인조 아이돌 그룹이 있었다. 그룹 이름은 '노이즈'. 당시 '가요' 시장은 100% 내수 시장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글로벌한 K팝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지금의 BTS였다면 노이즈는 비교적 신인그룹인 '라이즈' 정도의 인기나 위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데뷔와 함께 음악 차트 상위에 오르며 '스포츠 신문' 연예 뉴스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노이즈가 갑자기 신문 '사회면'에 등장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가수들이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건 대부분 대마초나 음주운전 같은 불미스러운 일 때문이었는데, 노이즈의 경우엔 좀 달랐다. 폭행 사건의 '피해자'로서 기사화됐기 때문이다.
사건은 데뷔한 지 5개월쯤 된 신인 그룹 노이즈가 KBS의 한 음악방송에 출연했을 때 일어났다. 그룹의 리더였던 홍종구씨가 리허설 중간에 카메라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홍씨가 카메라를 만졌다고 생각한 KBS 카메라 기자가 반말로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함부로 만지냐'며 윽박지르자 둘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이 카메라 기자한테 흠씬 얻어맞은 홍씨가 코뼈 골절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이즈는 한동안 KBS로부터 출연 정지를 당했다. 당시 가수가 얼굴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방송 출연이 거의 유일했는데, 방송국이 달랑 KBS, MBC, SBS 세 곳밖에 없던 시절에 그 중 한 곳으로부터 출연 정지를 받은 것은 신인가수에게는 치명타라 할 수 있다. 맞은 것도 억울한데 불이익까지 당한 것이다. 이에 반해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인 카메라 기자가 어떤 징계를 받았다거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이 사건에 대한 기사 제목엔 '갑질'이란 키워드가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아직 갑질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전이어서 막연히 '방송국이란 거대 조직 앞에서 제아무리 10대들의 우상이라고 한들 가수란 존재는 정말 힘없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갑을' 관계란 계약의 당사자인 양측을 가리킨다. 보통 계약서에서 돈을 주고 제품이나 용역을 사는 쪽을 갑, 돈을 받고 이를 제공하는 측을 을이라고 적는다. 아무래도 돈을 주는 쪽보다는 돈을 받아가는 쪽이 아쉽기 마련이다 보니 보통 갑을 관계는 자연스럽게 상하 권력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권력 관계를 이용해 갑측이 힘을 행사하는 것을 우린 '갑질'이라고 부른다.
노이즈 사건의 경우엔 갑의 위치에 있는 방송국 소속 직원이 나이 어린 신인 가수에게 반말과 폭행을 가했다는 점, 이로 인해 오히려 을의 위치에 있던 가수가 방송출연 정지란 불이익을 당했다는 점에서 거대 방송국의 전형적인 갑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이무진 사건의 경우 행사 주최측인 갑 소속 스태프가 을인 가수에게 무례하게 반말을 사용했다는 점에선 갑질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을 보면 과연 저걸 갑질이라고 불 수 있을까란 생각이든다.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주최측은 과거 KBS와 달리 이번 사건이 논란이 되자 곧장 사과에 나섰다. 그럼에도 '을'의 입장인 이무진씨 소속사가 강경 대응을 요구하자 재차 사과문을 올렸고, 특히 문제를 일으킨 스태프를 '경질'했다고 밝혔다. 과거 반말에 폭행까지 하고도 사과는커녕 피해자인 을을 출연 정지시켰던 노이즈 사건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지금이 어느 땐데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 '갑을'이 형성되고 여전히 갑질로 고통 받는 사람은 생겨나고 있다. 이번 이무진씨 사건도 반말을 들은 당사자가 지금의 인기가수 이무진이 아닌 무명가수였다면 아무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당사자만 속으로 화를 삭혔을 것이다.
과거 방송국이 인기 가수를 상대로 갑질을 할 수 있었던 건 방송국이 가진 '전파'란 자원이 너무도 희소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TV 화면은 방송 3사의 전유물이었던 데 반해, 논란이 된 사건을 대중에게 전해줄 뉴스는 하루에 한 번 발행되는 신문이나 방송뉴스를 통해서만 보도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갑의 입장에선 거리낌 없이 제편을 감싸고 약자인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국의 역할을 할 플랫폼과 논란이 될 만한 이슈를 실어나를 언론과 유사언론이 차고 넘친다. 예전엔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어도 틀어줄 채널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는데, 개인도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시대엔 콘텐츠가 경쟁력이다. 콘텐츠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스타는 여전히 희귀하고, 그 가치는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결국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건 갑과 을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희귀한 건 비싸고 강하고, 흔한 건 싸고 약하다.
갑이라고 다같은 갑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을이라고 다 같은 을이 아니다. 그러니 갑질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을을 봐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욱 해서 말 한마디 잘못 했다 자기 목이 날아가는 상황이라면 이걸 과연 갑질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