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동요를 강요하지 않는 나라

장기자랑에 동요가 사라졌다... 어린이다움 강요하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

by 최강산

아들이 올초에 졸업한 집앞 초등학교에서 아침부터 시끌시끌한 소리가 났다. 한 학기에 한 번씩 등교시간에 미리 신청한 아이들이 교단에 나와 노래나 춤을 선보이는 주간이 있는데, 그 시기가 돌아온 모양이다.

올해에도 선곡은 초딩들이 좋아하는 K팝 그룹의 노래들이 주를 이뤘다. QWER의 '내 이름 맑음'이란 노래의 고음을 힘겹게 따라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초통령으로 알려진 '아이브' 노래도 빠지지 않았다. 동요를 부르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학생이나 초등학생이나, 아이들도 동요보다는 가요를, K팝을 좋아한다. 다만, 예전엔 어린이가 가요를 부르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학교에서 장기자랑 같은 걸 하면 가요보다는 동요를 불러야 한다는 유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어린이는 어린이 노래인 '동요'를 불러야 어린이다운 것이고, '남여상열지사'를 읊어대는 가요는 어린이들이 따라부르기에 적절치 않다는 식의 명분을 내세웠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1980~90년대) 우리나라 가요의 가사는 얼마나 점잖았던가. 연인에 대한 호칭은 '그대' '당신' 같은 정중한 표현이 주를 이뤘고, '그리움 눈처럼 쌓여 언덕을 굴러넘고'(이선희 '겨울애상' 중에서)처럼 시(詩)적인 표현의 가사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린이는 모름지기 동요(童謠)를 불러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적 사고가 동요보단 가요를 좋아했던 어린 마음에 '죄의식'을 남겼던 것 같다.

img.png '겨울애상'이 수록된 이선희 5집 앨범 재킷.

특히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명시적으로 학교에서 가요를 못 부르게 했는데, 내가 그 분의 나이를 훌쩍 넘어섰을 지금 돌이켜봐도 하늘 같은 선생님의 마음이 헤아려지기 보다는 '어린이가 가요 부르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랬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선생님이 유별났던 것도 아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다. 한마디로 촌스러운 시대였다.


한때 부부였던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운명적인 인연을 맺는 연인으로 출연한 1994년작 영화 '러브 어페어(Love Affair)'에는 아네트 베닝이 유치원생 꼬마들과 '비틀즈(The Beatles)'의 'I will'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4~5살쯤 돼보이는 꼬마 아이들이 달달한 사랑 노래(내가 널 얼마나 오래 사랑해왔는지 누가 알겠어 'Who knows how long I've loved you'란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다)를 '서슴없이'(?) 따라부르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는 마땅히 동요를 불러야지'라고 강요 당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저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저런 게 선진국인가' 싶은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img.jpg 영화 '러브 어페어' 포스터.

이제 우리나라도 더이상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동요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동요는 누가 부르나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는데, 얼마 전 어린이날 우연히 TV에서 창작동요대회를 방영하는 걸 봤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학교에서 등 떠밀어 아이들을 저런 대회에 내보낼 것 같진 않다. K팝이 아무리 힙하다 해도 순수하게 동요를 좋아하는 동심(童心) 또한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아이들이 좋아서 부르는 동요는 얼마나 멋진가.


어린이에게 어린이다움을 강요하고 동요를 부르게 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학교 운동장에서 버젓이 사랑 노래를 부르는 시대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도 하지만 한 세대 전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기까지 엄숙하고 촌스럽던 우리 문화도 그만큼 성숙했다.

K팝이나 K드라마의 성공이 우연 같지만, 개도국 시절의 엄숙주의를 털어내고 아이들을 비롯한 약자의 목소리도 받아들일 만큼 대한민국이 통 큰 나라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에게 동요만 부르라고 강요하는 나라에서 전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K팝'이 탄생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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