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물었다. "늘 이렇게 명랑하십니까?"
'늘 이렇게 명랑하십니까?' 기자가 물었다.
"스물한 살 때 나는 기대치가 0이 됐습니다. 이후로는 모든 게 보너스지요." (스티븐 호킹)
<돈의 심리학>, 모건 하우절 저, 중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출신인 모건 하우절(Morgan Housel)이 쓴 <돈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Money)>에 소개된 내용이다. 지난 2004년 <뉴욕타임스>가 고(故)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를 인터뷰했을 때 호킹 박사가 내놓은 대답이다.
생전에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 종종 언론에 등장한 그는 언제나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킹 박사가 선천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건 아니다. 21살 때 운동신경세포병에 걸려 온몸이 마비됐고 급기야 말조차 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더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던 사람에게 닥친 비극의 깊이를 평범한 사람들이 헤아리긴 힘들 것이다. 이런 인터뷰이를 만나면 기자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늘 이렇게 명랑하냐'는 질문을 던질 걸 보면 당시 호킹 박사의 모습이 누가 봐도 즐거워 보였던 모양이다. 인터뷰를 할 때 호킹 박사는 컴퓨터를 통해 비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책을 팔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하며 들뜬 모습이었다고 한다.
스물한 살 때 인생에 대한 기대치가 0이 됐다는 호킹 박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기저효과'를 떠올렸다. 기저효과란 비교 시점이 되는 과거(보통 1년)의 경제지표가 나빠서 현재의 경제 상황이 좋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경제위기 같은 대형 위기 직후에 아직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위기 당시와 비교하며 경제가 좋아졌다고 느끼게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굴곡을 겪게 된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고 높이 올라가 본 사람은 시련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바닥까지 내려가본 사람은 마침내 바닥을 내딛는 순간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호킹 박사에게는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스물한 살이 인생에 대한 기대치가 0으로 수렴한, 인생의 바닥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바닥'(基底)을 친 순간부턴 나아질 일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이후의 삶을 '보너스'로 생각하며 진정으로 기뻐하고 명랑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굴곡 없는 인생이란 없다. 마냥 올라가기만 하는 인생이 없듯이 마냥 내리막으로 치닫기만 하는 인생도 없다. 그저 너무 절망한 나머지 이미 바닥을 쳤는데도 버둥대느라 헤어날 생각을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올라가면 될 일이다.
인생의 기저효과. 비록 호킹 박사의 심오한 물리 이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기대치가 0이 된 이후로 모든 게 보너스가 됐다는 그의 인생관만큼은 꼭 배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