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이 싸대기를 날려도 나는 씨익 웃는다: 불행은 제 맘대로 와도 행복은 내 맘대로 결정하려는 당신에게]
총을 맞았다고 해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마냥 무겁지 않고 아프지도 않다. 인상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찌푸리면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가볍진 않다. 언뜻 모든 걸 잃어버린, 실패투성이의, 찌질하고 칙칙한 인생처럼 보인다. 아니다. 잃었지만 얻은 이야기를, 넘어졌지만 엎드려 있지 않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한다. 칙칙한 게 아니라 씩씩한 슬픔을 이야기한다. 엉망, 폭망, 원망, 낙망, 절망해서 도망가지 않았다. 나만의 새로운 삶을 희망하고 전망하고 소망한다. 때로는 욕망한다. --- p.11~12 「프롤로그: 총을 맞고도 살아가는, 살아 내는 이야기」중에서
어른이 된 지금도 내 안에서 문득문득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때론 그 괴물에게 먹이를 던져 준다. 웅크리고 있던 괴물은 먹이를 날름날름 받아먹는다. 그리고 나면 먹이를 준 주인인 나를 몰라보는지 야금야금 삼키려고 한다. 나는 그것들을 꾹꾹 누르고 꽁꽁 숨겨 버린다. 남몰래 키워 온 그 검은 그림자와 가끔 마주할 때면 나 자신이 무섭다. 겁이 난다. 내가 그토록 미워한 아빠의 모습을 닮아갈까 봐. 아니, 내가 더 교묘한 괴물이 될까 봐. --- p.45~46 「내 안의 괴물을 볼 때」중에서
‘그래. 지금은 누가 뭐래도 진흙탕에서 진흙 범벅으로 사는 거야. 이건 때려죽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현실이지. 진흙탕에 뒹굴어도 마음만은 별을 보자.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럴수록 별은 더 빛나게 보여. 저 사람이 내딛는 열 걸음을 부러워 마. 질질 끌고 가는 나의 한 걸음이 더 값져. 그것도 벅차면 그냥 머물러 있어도 돼. 그러다가 다시 걸어가면 되고. 오늘 걷지 못한다고 해서 안타까워하거나 재촉하지 마. 이제 내 삶은 경주가 아니라 연주(演奏)야. 이 질병 자체가 비극이 아니야. 나의 삶으로 살아내지 못할 때, 그때 비극이 되는 거야. 왜? 이제 나는 희‘귀한’ 놈이니까.’ --- p.103~104 「나는 희‘귀한’ 놈이니까」중에서
집에 환자 한 명이 있다. 우울 정도가 아니다. 우중충해진다. 살맛, 그런 건 사전에나 있는 단어다. 우리 집은 4명 중 3명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2명의 환자가 버젓이 살아 있다. 나는 매일 가랑비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다. ‘내가 가버리고 나면 어찌 될까’ 하고 생각해 봤다. 남아 있을 가족이 눈에 밟혔다. 특히 엄마가 아픈 동생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헤아려 보니 암담했다. 내가 먼저 간다고 해서 그 짐을 다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니다. 남은 가족에게 더 큰 짐을 안겨 주게 된다. 나는 생각했다. ‘평생 힘이 못 되었다. 짐은 남겨 주지 말자. 매일 다투고 얼굴을 붉히더라도 지지고 볶고 함께 살아가자.’ --- p.189 「마침표는 내가 찍는 게 아니다」중에서
“내가 던져 준 이 배역은 너를 힘들게 하거나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야. 이 배역을 잘 해내는 사람은 어떤 역할도 잘할 수 있어. 그러니 지치지 마. 지치면 천천히 쉬어가도 돼. 실수 좀 하면 어때? 살 수 없다고 내팽개치지만 마. 다만 네 배역에 끝까지 충실하기만 하면 돼. 이 배역은 너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애초부터 원 캐스팅을 했던 거야. 너는 분명 이 캐리어를 끌고 자갈밭을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 그 문턱도 넘어갈 거라고 믿었거든. 너도 이제 잘 알지? 캐리어 안의 짐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내가 너를 믿는 ‘힘’이라는 걸.” --- p.238 「나는 나의 배역을 살아간다, 걸어간다, 사랑한다」중에서
어제는 ‘위를 쳐다보며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 치는 삶’이었다. 오늘은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분투한다. 내가 처한 이 현실을 인정한다.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주어진 오늘을 묵묵히 살아간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에 한참 모자라도 괜찮다. 나에게 부끄러운 인생이 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거야말로 진짜 내가 살아 보고 싶은 인생이다 --- p.244 「부러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