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취향이지만 빵 중에 노란 크림빵을 제일 좋아한다. 정확한 명칭이 슈크림빵인지, 커스터드 크림빵인지 모르겠으나 어릴 때부터 줄곧 '노란 크림빵'이라고 불러왔기에 그 이름이 가장 정겹다. 베이커리를 운영하던 작은아버지 가게에 갈 때마다 작은 손에 노란 크림빵을 쥐고 한참을 아껴 먹던 기억마저 커스터드 크림 향처럼 달콤하다.
언젠가 반려와 대화를 나누다가 노란 크림빵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커스터드 크림이 시작된 곳이 영국이라 알고 있고, 영국에 살 때 마트에서 커스터드 크림을 흔히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반려는 난생처음 듣는 빵이라며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노란 크림빵의 단짝인 단팥빵이라면 모를까, 정말 그 빵을 모른다고?'라는 표정을 짓는 나와 반려 사이에 또 하나의 물음표가 띄워지는 순간이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오래된 추억을 공유하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국제결혼의 아쉬운 점이라고. 나보다 예전 세대의 음악이긴 하지만, 여름만 되면 라디오에서 질릴 만큼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다.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네가 있어' 라며 푸른 하늘과 바다를 떠오르게 하는 그 곡. 제목은 아리송해도 안무는 대강 따라 할 수 있는 바로 그 노래 말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익숙한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불러도 그 신난 마음을 반려와 공유하기 힘들다는 것. 그것이 내 결혼 생활의 단점 중 하나다.
짧은 대화 뒤 잊힌 노란 크림빵이 다시 생각난 것은 최근 일이었다. 갑자기 반려의 왼쪽 어금니 부근에 치통이 시작되었고, 엄살 없이 고통을 잘 참는 반려가 며칠을 버티다가 결국 내 등쌀에 떠밀려 치과에 가게 되었다. 치통의 원인은 잇몸에 반쯤 덮여 있는 사랑니 때문이었는데, 의사의 말로는 앞으로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같은 치통이 반복될 거라며 사랑니를 모두 발치해야 한다고 했다. 위아래로 한 쌍씩 사랑니가 난 반려는 한 번에 네 개의 치아를 모두 뽑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고 했지만, 치통 때문에 일상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반려를 두고 볼 수 없던 나는 발치를 강력히 주장했다.
운명의 사랑니 발치 날이 다가왔다. 총 네 개의 사랑니를 발치하는데 한 시간가량 걸렸고, 잇몸에 덮여 있던 그 사랑니만 빼고 나머지는 온전한 치아의 모습으로 발치가 되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반려의 얼굴이 별로 붇지 않아서 곧 회복하리라 생각하고 안심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반려의 턱 주변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그 모습이 두 볼에 도토리를 가득 저장한 다람쥐와 같았는데, 같은 다람쥐여도 Squirrel 보다는 Chipmunk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내 눈에야 한층 더 귀여울 뿐이었지만, 평생 날렵하고 갸름한 얼굴선을 잃지 않고 살아온 반려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충격받은 반려의 반응을 보는 나는 왠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지금 모습도 무척 귀엽다'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귀담아듣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건더기가 있는 음식을 48시간 동안 먹지 않겠다고 하기에 죽을 끓여 주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사양했다. 의사가 뜨거운 음식이나 발치된 공간에 음식 티끌이 낄 수 있는 것들을 먹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중에 쌀도 포함이라고 했다. 유럽에 살다 보면 가끔 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같은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유럽에서는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 한국보다 훨씬 뒤늦게 쌀로 만든 이유식을 시작한다고 한다. 한국 문화에서 쌀을 먹으며 자란 나에게는 '쌀이야말로 부드럽게 만들자면 한없이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식재료'인데, 여기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주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한 마음이 울렁였다.
쌀로 만든 죽이 아닌 건더기가 없는 서양식 야채수프를 먹겠다는 반려의 의견을 존중해 다양한 맛의 야채수프를 구비해 두었다. 그런데 수프만으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는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들숨처럼 내뱉는 반려가 너무 안쓰러웠다. 평소 요리 담당인 나의 업무 태만처럼 느껴졌다. 그때 생각난 것이 노란 크림빵. 대략 15년 전에 사랑니 두 개를 발치한 뒤, 씹는 것이 불편해져 입안에서 녹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다가 동네 빵집에서 노란 크림빵을 잔뜩 사 왔던 기억이 났다. '아, 지금이 기회다! 나의 추억을 반려와 공유할 수 있는 기회'. 살포시 설레는 마음이 일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시작한 홈베이킹이라는 취미는 여전히 질리지 않는 나의 첫 번째 놀이다. 물론 발효 시간이 필요한 빵보다는 간단히 구울 수 있는 쿠키나 스콘을 더 자주 굽지만, 빵을 굽는 것도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반죽은 1차 발효를 끝낸 뒤 2배쯤 부풀려진 모습으로 날 뿌듯하게 만들었다. 뜨거운 여름 날씨 때문에 반죽도, 나도 더 끈적한 느낌이 들었지만 과정대로 완벽히 모습을 바꾸는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반죽을 시작한 지 3시간 반이 지났을 무렵, 아직 더위가 물러가지 않은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달궈진 오븐의 영향인지 주방의 온도는 여전히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레시피에서 제시한 온도보다 내 오븐의 온도가 높았는지 표면이 얼루룩덜루룩해 예쁘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린 시절 두 손으로 꼭 쥐고 소중히 먹었던 정겨운 모습 그대로 반려에게 노란 크림빵을 소개할 수 있었다.
"여보! 이 빵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 크림빵이야!"
방금 오븐에서 나온 빵이 뜨끈뜨끈한데도, 반려는 '뜨거운 음식은 먹지 말라'던 의사의 당부를 잊은 듯 빠른 속도로 빵을 먹기 시작했다. 굳이 치아로 씹지 않아도 부드럽고 달콤하게 넘어가는 노란 크림빵이 너무나 맛있다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더운 여름날, 찌삶는 오븐 앞에서 보초를 서던 나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내 키가 겨우 1m가 될동말동한 시기에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노란 크림빵의 추억이 반려에게 전해진 것 같아 생경한 감회가 뭉클하게 솟아올랐다.
국제결혼의 단점이라 생각했던 작은 누수가 메워지는 순간이었다. 각자 어린 시절 가지고 있는 좋은 추억들을 공유하며, 개미가 금탑 모으듯 살아가다 보면 '이것 또한 국제결혼 생활의 묘미를 더해 가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크게 벌리지도 못한 채 다람쥐처럼 오물거리는 반려를 보며 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노란 크림빵을 좋아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