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자유

<좁은 회랑>(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A. 로빈슨) 서평

by Argo

이 책은 자유에 대한 책이다. 국가-사회의 관계,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의 형태에 따라 어떻게 자유가 유지되거나 파괴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자유'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개념은 없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그러한 것처럼, 알긴 알지만 정확히 안다고 하기엔 부족한 것이 자유가 아닐까. 그렇기에 저자들은 책의 도입부에 자유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로크와 페팃의 견해를 바탕으로 자유에 대해 정의하면, 자유는 "지배가 없는 상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을 할 자유"가 아니라 "~의 지배를 받지 않을 자유"인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서 페팃의 말마따나 "어떤 형태의 종속 관계에서도 해방되는 것, 그런 의존 관계에서 풀려나는 것"이고, "누구도 다른 이들에게 멋대로 간섭할 힘을 갖지 않는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동료 시민들과 대등하게 마주 보며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심오한 의미다. 지배가 없는 상태가 자유라는 말은 행위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 또한 자유롭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어느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그 표현으로 인해 당사자가 법의 제재를 받거나 불이익을 당할 경우 자유롭다고 할 수 없으며 그런 위협이 존재하여 사람들이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다면 그 사회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 자유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저자들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유를 위해서는 '국가'가 필연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혼란했던 시대를 경험하면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가만이 혼란을 종식시키고 전쟁을 비롯한 다른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며 어쩌면 자유까지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들 - 무정부 상태 - 을 보면 일견 홉스의 주장은 타당해보인다. 강력한 힘을 가진 리바이어던이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리바이어던을 3가지로 분류하면서 홉스의 주장을 심화시킨다.


리바이어던은 독재적 리바이어던, 족쇄 찬 리바이어던, 부재의 리바이어던으로 나눌 수 있다. 리바이어던 간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국가와 사회의 관계다. 간단히 설명하면, 국가가 사회보다 힘이 강해서 사회의 통제를 받지 않을 경우 독재적 리바이어던이 된다. 이 경우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는 있어도 자유가 보장되기는 어렵다. 국가를 견제할 사회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국가는 제한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며 소수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기 때문이다. 족쇄 찬 리바이어던은 독재적 리바이어던과 달리 사회 또한 역량이 있어 국가를 견제하고 협력하며 국가와 사회가 서로 동반자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들은 안전함을 느끼고 국가와 사회의 협력과 견제 속에서 얻어진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반면에 사회가 국가보다 힘이 강력해 국가의 등장을 막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경우가 부재의 리바이어던인데 이때 사람들은 '규범'에 의해 지배당하며 독재적 리바이어던 만큼이나 부자유 상태에 처할 수 있다.


위임하되 방임하지 않는다. 이 말은 족쇄 찬 리바이어던을 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일정 부분 위임해 리바이어던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그로써 우리의 삶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지 않게 하고 자유를 비롯한 개개인의 삶, 일상이 평안하길 바란다. 하지만 위임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족쇄를 찼다고 해서 리바이어던이 언제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다. 민주주의에서 완성은 없기 때문에 위임하는 동시에 우리는 족쇄를 유지시킬 의무가 생긴다. 방임하는 순간 리바이어던은 족쇄를 끊고 나와 우리가 애써 도달한 좁은 회랑, 국가와 사회가 균형을 이루고 자유가 보장되는 그 지점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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