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 탐방기 3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서평 세번째 : 우고 론디노네

by Argo

이 책이 예술가들에 대한 책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정확히 말해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예술가들의 인터뷰 읽을 때마다 읆조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질문 가운데서 우고 론디노네를 만났고 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원하는 건 관객들이 그냥 작품을 바라보는 겁니다. 나는 늘 당신이 굳이 예술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그냥 보고 느끼면 되는 거죠. 사람들이 그냥 음악을 듣듯이, 마주할 때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내 바람입니다."

예술을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우고 론디노네의 말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렸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세부적인 요소, 음계라든지 그 구성에 대해 일일이 분석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듣지 않는다. 그저 들리는 대로, 소리의 전체적인 느낌을 들을 뿐이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느낌,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예술은 그런 점에서 매력이 떨어진다.


"난해함". 내가 현대 미술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이해'를 전제로 하는 현대 미술에서 나는 일말의 피로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위안을 얻기 위해 미술을 접하고 예술에 몸을 담그고 싶을 때가 많다. 보는 순간 느겨지는 감각들, 그 느낌을 맛보기 위해서 작품을 마주할 때,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하는 '생각'들로부터 유리되고 싶은 순간마저 이해하기 위해 '생각'해야 한다면, 그만큼 곤혹스러운 경우는 없다. 지나친 의도성 또한 내가 현대 미술을 쉽게 가까이 할 수 없는 이유다. 사유와 철학을 담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 가르치려는 느낌이 들고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으면 작품을, 더 나아가 예술을 모르는 듯한 인상을 주는 현대 미술은 소수를 위한 예술이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우고 론디고네는 특별하다. "보는 이의 감성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현대 미술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에 대한 명쾌한 정의다. 돌과 나무, 태고적부터 우리와 함께한 소재들을 사용하는 그는 현대 미술의 영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인간의, 인류의 근원적 감정을 건드릴 줄 안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을,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사진으로만 접한 그의 작품에 대해 그런 평가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의 모든 전시와 작품은 자연과 낭만주의"로 귀결된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이 작가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 최소한 내가 좋아하는 예술에 근접한 사람이라는 확신 말이다.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행위는 열린 해석을 가져올 수 없게 만들어요.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현재 쓰는 언어를 반영하는 거예요. 동시에 예술은 시간을 초월하는 언어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은 이런 내 믿음을 더 확고하게 했다.


예술은 소통이며 동시에 경험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 예술 속에서 작가와 작품, 타인과 세계와의 소통을 추구하고 경험한다.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과 경험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직관적일 때 더 수월하게 형성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언젠가 그의 작품을, 그의 예술을 경험하고 소통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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