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서평 두번째 : 아니 에르노 편
"내게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나 주변 세계를 생각할 때 사용했던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정상적인 것과 용납될 수 없는 것,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부끄러움> 중에서
아니 에르노를 알게 된 것은 그녀의 책 <부끄러움>을 통해서였다. 읽으면서 '이 책은 과연 소설일까, 아니면 회고록, 고백록이라고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책을 덮을 때까지 계속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소설이란 게 어느 정도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고 그래서 자전적인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소설로 생각하려는 순간, 냉정하리만큼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적인 태도, 일말의 주저함 없이 적어내려간 - 독자의 수용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 고백을 읽다보면 소설이 아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래서 내겐 그녀의 작품은 아직도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그 무언가다.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작품을 쓰는 "작가이되 소설가는 아닌" 아니 에르노.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그녀의 작품은 비난과 찬탄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뜨거운 감자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녀의 글에서 우리가 어떠한 끌림을 느낀다는 반증이다. 터무니 없는 글이었다면 아무런 반응도 없었을테니까.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그녀의 작품, 그리고 그녀에게 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솔직함,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 아름다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이 세가지로 인해 나는 그녀의 작품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단순한 고백이자, 그녀의 솔직함이 담긴 글에 끌리는 이유는 그녀의 목소리가 단지 충격적인 사건, 노골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그녀가 "자기 자신을 냉정하리 만큼 객관적으로 응시"함으로써 얻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에서 스스로의 속살을 드러내는 인류학자가 되겠다던 그녀의 다짐은 이런 과정을 통해 결실을 맺고 독자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독자들에게 자신처럼 각자의 과거를 진지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인류학자가 되어보길 바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글은 투명함 그 자체다.
내가 아니 에르노의 글을 접하고 나서 "단순한 열정"에 빠졌던 또다른 이유는 그녀의 글이 내가 고민하고 있는 글쓰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가감없이 쓴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받을 수 있는 - 그리고 줄 수 있는 - 상처와 비난을 감수한다는 뜻이 감춰져 있다. "진실에는 난방장치가 없어서 진실 속에서 사람들이 얼어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던 로맹 가리의 말처럼 솔직한 고백이라 해서 모두에게 '안전한' 것은 아니다. <부끄러움>을 읽고 나서 나 또한 이런 글을 써야겠다, 최소한 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글을 쓰자고 다짐했지만, 아직도 순간순간 두렵다. 이에 관한 그녀의 인터뷰를 읽다가 문득 '단단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의 솔직함은 내면의 단단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런 단단함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솔직함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글을 일종의 확신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고백하는 사람에게 확신이 없다면,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로 말한다면 듣는 사람 또한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인터뷰 내용 중에 아름다움,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 살짝 웃음이 났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비슷해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미안하지만 스물다섯, 아니 서른 이전의 여자 중에서 아름다운 여인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서 한결 같이 느껴지는 솔직함 때문에도 그랬고 "여성은 아흔 살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당당한 선언(?)에 감탄했기 때문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당당함 또한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이니까.
나는 그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하루하루 산다는 건 어쩌면 하루하루 잃어 간다는 의미일 수 있으니까요"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그녀가 상실의 자리, 살면서 겪는 '비워짐'을 표현하고 채우고 보듬기 위해서 끊임없이 글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지 않고는 평화롭게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오는 필요성"이 자신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다는 고백이 나직하고도 무겁게, 그리고 절실하게 다가왔다.
인터뷰 끝자락에서 사랑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말에 아니 에르노는 "산다는 건 온통 미스터리인데, 산다는 것은 그런 현재를 가장 격렬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답했다. 질문과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을 여러 번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녀의 답변에 마음 한켠이 쿵하다가도 내게는 맞지 않는 옷 같아서 선듯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끝내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의 답을 미래의 나에게 맡겨 놓았다. 산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을 읽으며 만난 17명의 예술가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다. 이들의 대답이 내게 실마리를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