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서평 첫번째 : 총평
글쟁이를 지향하고 또 글쟁이의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예술과 예술가라는 단어는 언제나 생각의 대상이었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할만큼 이 주제는 나에게 의미가 깊다. 그런 점에서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이란 제목의 책에 끌린 것은 당연하다. 특히 내가 정말 좋아하고 닮고 싶은 작가 중 한 사람인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가 실려 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다양성. 이 책의 장점에 대해서 묻는다면 이 단어가 딱 떠오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17명은 예술가라는 공통점만 있지 성별이나 인종, 활동 분야가 저마다 다르다. 영화 배우, 소설 작가,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이라는 책에서 만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이 모여 다양한 예술, 예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성의 예술, 예술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고 하면 너무 과한 말일까.
17명이라는 예술가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그들의 활동 분야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제목이 좋았다. '사적인'이라는 말에는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 중에는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경우 해당 분야 종사자가 아니라면 왠만해서는 알기 힘든 게 사실이니까. 저자의 주관이 반영된 인터뷰집은 그래서, 누구나 알 법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이 뚜렷한 자신의 취향을 두고 선정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탐구욕이 샘솟는다. 저자는 왜 이런 작가를 좋아할까? 무엇이 마음에 들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읽다보면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저자에 대해서, 그녀의 시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또한 알 수 있다. 예술가와 그 예술가를 바라보는 저자 또한 독자의 관찰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러 번 인터뷰 했던 예술가들, 특히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된 예술가의 경우 그 시간적 흐름 사이에서 발생한 변화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압축적이긴 해도 한 사람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방식,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하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가 유명세와 상관없이 이들을 선정한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나다움'을 위해 사는 사람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동시에 자신의 과거에 안주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끝없이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우리가 예술에,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일을 -나다움의 유지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많은 심리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어려운 일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른다해도 시도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감탄했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확신"을 가진 예술가들의 도전정신은 우리를 뒤흔들기도 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도 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17명, 어느 한 사람 예술가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사뭇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안내서다. 이 안내서가 내게 그랬듯 다른 사람에게도 이전에는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한 세계로 인도해 주길 바란다. 설령 도착지가 서로 다르다 해도 이 세상을 탐험하는 여행자로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길 희망한다.
글을 마무리 하기전에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을 말하고 싶다. 교정과 교열, 쉽게 말해 오타와 비문과 관련된 부분이다. 한번 서평 담당자께 이와 관련된 메일을 보냈는데 읽다보니 더 발견됐다. 매번 보내기도 좀 그래서 홈페이지에 따로 모아서 올렸다. 6군데 정도 잘못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중에 백미는 449쪽의 행갈이. 이거 보고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예술적 의미가 있는지 잠깐 고민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편집도 해본 내게 이 부분은 조금 충격이었다. 다음에는 이런 부분에 좀 더 신경 써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