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서평
이 책이 예술품에 대해 다루고 있거나 알랭 드 보통이 선정한 예술품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한국어판 제목에 낚인 것이다. 원제인 "ART as THERAPY"에서 - 한국어판 제목보다 더 직관적이고 노골적인 - 알수 있듯이 이 책은 단지 예술품을 소개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즉 예술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의 핵심이다. 특히 원제는 치유로써의 미술,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조명받지 못했던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어판의 제목은 흔히 우리가 미술관을 치유의 의미보다는 예술품을 감상하러 가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책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희석시킬 수 있다. "영혼의 미술관"이라는 제목은 "있어 보이는" 제목이기는 하지만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책의 내용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제목이 아쉽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 예술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치유로서의 예술을 조망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들은 - "알랭 드 보통의" 라는 사족도 문제다. 이 책은 엄연히 공동 저술인데
국내에 알려진 저자를 강조함으로써 마케팅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이라 부담스럽다 - 우리가 예술을 바라볼 때
그저 심미적인 관점, 미학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위한 예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탄생했으며 우리는 그 기원에 대해서 명확히 앎으로써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예술을 재발견 - 이전에는 강조되지 않았던 예술의 측면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 하는 과정에서 심리학을 유용한 도구로 사용한다. 예술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처를 치유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지에 대해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저자들의 주장 속에서, 명확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들 사이에서 우리가 왜 예술을 접하면서 감동을 느끼고 비탄에 잠기며 사색하게 되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동안 두루뭉실하게 알고 느끼던 것들, 그 모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예술을 분석하고 정의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부적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술의 시작이 존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분석이 예술을 격하시기키거나 위상을 실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더 고양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에 대해 연구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렇기에 "어떤 종류의 예술을 창작"하고 어떻게 사고팔며 연구하고 전시해야하는지를 논의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저자들은 예술의 새로운 측면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앞서 말한 치유의 기능과 함께 중요한 예술의 기능은 "학습"이다. 우리는 예술품을 감상하면서 무언가를 느낀다. 이 무언가는 처음에는 모호한 인상으로 남고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한다. 감정적인 반응의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점점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작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를 점차 인식하게 된다.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 그리고 이 책에서 설명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예술을 접하면서 단지 감정적인 반응,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공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가치와 덕목들을 배우게 된다. 책에서는 크게 사랑, 자연, 돈, 정치로 나누고 각각의 작품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들은 예술의 진정한 의의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즐기는 것이, 예술 "속에서" 살고 그것을 향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최선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예술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동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 예술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이것을 통해 삶을 더 깊이있게 살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을 언제 밀쳐두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수단일뿐이다.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 (...) 우리는 예술이 나타내는 이상들을 흡수한 뒤, 아무리 우아하고 의도적이어도 단지 상징적으로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술은 우리에게 잔인하고 고통에 가득찬 세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예술 속에서 위안을 얻고 무언가를 깨닫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투영시키기도 하고 현실에서 좌절된 이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예술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피난처는 잠시 머무르는 곳이지 거기에서 계속 살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예술을 평가절하하거나 지나치게 이상화해서 필요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또한 예술을 교양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하며 허영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이런 오용과 남용으로 인해 길을 잃은 예술과 그것을 쫓는 현대인에게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예술을 바로 보는 법을 배우고 예술을 보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문학이라는 예술의 한 갈래에 몸을 담고 있는 입장에서 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환상이 부담스러웠다. 대중의 시선 뿐만 아니라 일부 예술가들 조차 예술의 본질에 대해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이 다른 영역보다 더 중요하고 신성하며 이것을 다루는 예술가들도 그러하다는 인식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예술은 그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경이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예술가 또한 성직자처럼 - 성직자 또한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지만 - 추앙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단지 직업일 뿐이고 예술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 책이 그런 신화에 대해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내내 통쾌했다. 그리고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몰랐던 것들에 대해 확실하게 깨달은 것도 많아서 읽고나니 마음이 뿌듯하고 채워진 느낌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고 실제적이면서 의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