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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Feb 28. 2024

무신론자라서 다행이야

그냥 삶이라고

1.

글을 몇번째 뒤엎는 건지 모르겠다.


2. 

근 6개월 간 엄마, 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등

내게서 매우 중요한 사람들에게 유독 건강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나와 엄마의 코로나 감염(+두 차례 응급실+두 차례 입원), 할아버지의 폐렴으로 인한 입원, 삼촌의 폐렴, 그 외 자잘하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응급실 방문과 입원.

게다가 엊그제는 할머니의 낙상 사고로 인한 갈비뼈 골절 + 코로나 감염까지.


3.

예전의 나, 그러니까 유신론자에 진성 개신교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본인은 장로교 합동 쪽이어서 비교적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있었다.

종교의 목적을 개인의 이익 같은 게 아니라 진리의 측면, 즉 그것이 유익이 되기 때문에 믿는다가 아니라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옳기 때문에 믿는다 라고 생각했었기에 지나치게 죄책감을 가졌을 것 같지는 않다.

(보통 개신교인들은 질병이나 사고등을 겪으면 본인이 무언가 잘못했다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신앙생활을 매우 잘했던 사람이었으니까.

매일 성경읽고 기도하고 십일조 기본에 봉사도 많이 했다.

목회자 자녀라 모태신앙이었기에 출신성분(?)도 확실했다.

근데 왜 고통이 나에게 생긴 거냐고 물었겠지.


4.

신은 절대선이다. 

완전무결하기에 고통의 원인을 신에게서 찾을 수 없다.

고통은 나쁜 것이고 악이며 '죄'다.

따라서 신에게 원인을 찾으면 안 되고 신에게 문제가 없다면 남은 건 인간, '자신' 뿐이다.

즉, 현재의 고통은 내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신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회개를 하든지 종교 의례를 더하든지 해서 고통이 지나가도록 해야 한다.


5.

대체로 개신교인들은 저런 사고 방식으로 살아간다.

물론 최근에 고통의 중립성에 대해 인식하고는 있는데 음... 딱히 일반 신자들까지는 그게 먹혀들어가는 것 같진 않다.

일반 신자들은 기복 신앙에 익숙하고 인과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복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고통을 없애려면 혹은 고통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게 관심사다.


6.

고통에 대한 개신교인의 반응에서 스스로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도 문제지만

여기에 더해 주변 신자들의 비난이나 위로 같지 않은 위로 때문에 더 피폐해진다.

기도 안해서, 헌금을 제대로 안해서, 주일 성수 안해서, 봉사 안해서, 목회자 잘 섬기지 않아서 등등

온갖 종교적 이유를 갖다붙이고는 죄인으로 취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7.

실제로 엄마가 실시간으로 앞에서 말한 상황을 겪고 있다.

회복에 3개월은 걸린다니까 기껏 전화해서 하는 말이 왜 이렇게 안 낫느냐고 말하고 기도하면 빨리 나을 거다 등등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짜증날 정도였다.


8.

무신론자라서 행복해요, 는 아닌 거 같고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고통일 뿐, 삶의 일부나 다름 없다.

고통에 의미란 없다.

그러니까 괜히 누구 탓하지말고 아픈 거 낫기만 잘하면 된다.

무신론자가 된 이후로 나 스스로에게 원인을 찾고 죄책감을 느끼며 해결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종교에 매달리지도 않고 주변에서 상황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으로 위로 같은 비난을 해도 끄떡하지 않는다.


9.

만약 아직도 내가 저런 종교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있었다면 진짜 오랜 만에 폐쇄병동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질환자에게 종교를 권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정신적으로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긴 한데 정신질환에 대한 교회의 해석이나 신자들의 시선 때문에 더 상처를 받고 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질환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 그리고 치료법을 의학이 아닌 종교 의식에서 찾는다든가 하는 것들이 결코 정신질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없으니까.

솔직히 신체적인 질병에도 부정적으로 보는데 정신질환은?


10.

아무튼 무신론자여서 다행이다.

이런 나를 돌아보면 진짜 '종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종교 때문에 전쟁도 할 수 있겠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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