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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May 23. 2024

같은 경험, 다른 결과

인간이 신기한 생물인 이유

엄마가 나와 형을 두고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냐고.


MBTI를 싫어하는, 정확히 말하면 MBTI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요즘 세태를 혐오하는 나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탐탁치는 않지만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MBTI식으로 표현하면

형은 ESFP

나는 INF(혹은 T)J다.

딱 봐도 얼마나 다를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극 외향적인 형과 극 내향적인 나에게 형과 함께하는 시간, 특히 쇼핑하는 시간은 고문과 같다.

뭘 살지 결정하고 예산을 산정한 다음에 적당하다 싶으면 사는 나와

괜찮아 보이지만 다른 곳에 또 뭐가 있을지도 모르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형.

출근이든 등교든 어릴 때나 지금이나 정시에 맞춰서 가야 하는 형과

정해진 시간 보다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은 먼저 가야하는 나.


다름은 생활 양식에서 그치지 않는다.

경험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나와 형은 건강보조식품과 유사과학, 대체의학을 신봉하고 열광하던 아빠 밑에서 자랐다.

(신기하게도 이런 쪽은 죄다 다단계하고 연결되어 있다)

억지로 다양한 건강보조식품을 먹어야 했던 불쾌한 경험과

당뇨와 고혈압이 중증임에도 약물치료보다는 앞서 말한 다른 방법을 맹신하다 실시간으로 악화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형도 나와 같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고.


분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온 형의 손에는 오메가3를 비롯해 각종 영양제가 들려있었다.

얼핏 듣기로 요즘 2, 30대가 영양제를 비롯한 건강보조식품에 열광한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 표본이 바로 옆에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아빠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나와 다른 형의 모습에 충격에 가까웠다.


양극성 장애 환자가 된 이후, 종종 주변에서 약물 치료 말고 효과가 있다는 각종 방법에 대해 추천받게 된다.

작게는 영양제부터, 어떤 음식, 어떤 행동, 심지어 기도원과 굿(!)까지.

거짓말 같겠지만 실제로 내가 만난 어떤 환자의 경우 굿에만 수천만원을 썼다.

기도원이나 기타 종교적인 방법으로 치료하겠다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간 경우도 꽤 봤고.


특히 앞에서 말한 방법보다 비교적 쉽고 돈이 덜 들어가는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오메가3나 어떤 성분의 경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전문 서적에 나오기는 한다.

근데 어디까지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지 그게 확실한 치료법은 아니다.

게다가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최근에는 확실한 근거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거나, 오히려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약물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 모두 약물과 똑같이 간과 신장에서 대사 작용이 이루어진다. 

이 말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두 곳에 부담을 주게 된다는 뜻.

실제로 최근에 건강 챙긴다고 단백질 음료나 보조제를 챙겨먹다가 신장이 나빠져서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사례가 많다.

일반인도 그런데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 양극성 장애 환자는 어떨까.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이 도움이 된다고 해도 간과 신장을 망치면 치료에 악영향을 준다.

특히 약물치료 과정에서 부작용 혹은 생활 습관의 변화 때문에 대다수의 환자들이 신장과 간이 나빠지고 대사증후군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몇년 째 내분비내과를 다니고 있는데 매번 갈 때마다 절대로 비타민 한 두가지 이외의 그 어떤 영양제나 건강보조식품을 먹지말라는 말을 듣는다.


누누이 말하지만 양극성 장애의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약물치료다.

물론 약물 치료가 부작용이 많다는 건 내가 직접 경험하고 보고 들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잘안다.

그렇지만 약물 치료로 얻는 유익이 부작용보다 크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거다.

약물 치료 이외에 심리치료나 상담, 대체의학,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 이외의 모든 방법은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해가 되거나 단지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물론 환자나 보호자 모두 절박한 심정에 이런 방법을 시도하는 걸 안다.

나도 약간 흔들릴 때가 있었고 재활의학과를 나와 병원에 근무했던 엄마조차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듯,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잊지 말자.

양극성 장애는 의학과 과학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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