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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Sep 25. 2019

나는 왜 무신론자가 되었는가

신이 없는 삶도 가능하고 또 행복합니다

공식적으로 무신론자임을 선언한지 이제 2년째 되었다. 이 결정은 지금까지 굳건히 이어지고 있으며 다년간의 고민과 연구, 경험 끝에 얻은 결론이자 주체적인 선택이다.

언젠가 밝혔듯 - 브런치 혹은 인스타그램에서 - 나는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 내가 왜 무신론자가 되었을까.


먼저 간단히 내 과거에 대해 설명하자면, 개신교인 아버지와 천주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전도사였고 그 후에 목사가 되진 못했지만 교회일에 열심이었고 간간히 전도사 일을 했다. 어머니는 천주교인이었다가 결혼 후 반강제로 개신교인이 되었고 남편의 성화에 교회에 끌려다니다가 적응을 해서 신실한 신자가 되었다(지금은 다시 천주교인으로 살고 있다).


대게 목회자의 자녀들이 그렇듯 - 게다가 난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모태신앙'이다 -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의 가정에서 교육받았다. 일요일 - 개신교 언어로는 '주일' - 에는 당연히,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는 것이 불문율이었고 매일 성경을 읽거나 썼으며 가정예배를 드려야 했다. 심지어 형과 다퉜을 때는 성경을 필사하는 게 벌이었을 때도 있었으니 얼마나 종교적인 분위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아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었고 교회의 분위기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익숙했다. 삶의 중심이 교회와 성경, 하나님이었다. 초등학교 때 가훈으로 -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가족으로 써냈으니......


보통 이런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평탄하게 신앙 생활을 유지하고 나중에 - 보통 성인기에 - 조금 믿음이 약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교회에 간다. 나처럼 공개적으로 무신론자임을 선언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거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내 믿음에 금이 가게 되었을까.


그 시작은 가장 믿음이 순수 - 순수와 무지함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 했던 유년기였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내 의문은 단순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읽었던 성경에 의문점이 보이기 시작했던 거다. 천성적으로 궁금함이 많았던 나는 이내 성경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왜 가인과 아벨의 제사 중에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을까?'

'구약에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그리고 제사나 다른 여러가지 생활에 관련된 규칙들이 너무 이상해.'

'옛날 사람들은 수백년을 살았다는데 지금은 왜 100살도 못 살고 죽을까.'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데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지옥에 가는 걸까?'(이 질문 때문에 나는 7살 때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가 예수님 안 믿으면 장가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손자는 이제 자유에요!)


이런 작은 의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고 주위 어른들에게 의문을 해결하고자 질문을 했으나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이런 질문들, 특히나 성경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런 의문을 가진다는 자체가 상당한 불경으로 여겨졌으며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들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성경을 연구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공부를 거듭할수록 해답을 얻기는 커녕 더 많은 질문들이 생겨났다.

구약의 율법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 대표적으로 십일조 - 어떤 것은 안 지키는데 - 음식에 관한 규정이나 '부정한' 것에 대한 정의와 해결책 등 - 그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데 자신의 말을 거역하거나 딱히 그러지 않았는데도 한 두명도 아니라 집단적으로 - 수천에서 수십만 - 죽이거나 죽이라고 명령하는지(내가 정말 충격을 받았던 건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예수 탄생에 대한 부분으로 이것과 관련해 최소 수천명의 아이들이 살해당한 것이다. 이걸 성경에서는 예언의 성취라고...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왔다는데 남녀 관계 없이 아이가 생기는게 과연 가능한지 등등 수많은 의문들이 파생되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과학적인 의문들은 나중에 '창조론'을 접하면서 일시적인 해결 상태를 맞았으나 후에 역사와 과학을 더 공부할수록 내가 제대로 사기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지적인 의심에 더하여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삶 속에서, 그리고 주위 개신교인들의 삶 속에서 나는 신의 존재와 성경의 기록에 대한 확신을 찾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선교사가 되겠다며 비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이리저리 떠다녔고 그로 인해 나머지 우리 세 가족은 막대한 물질적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떠 안아야 했다.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고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해결하겠다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집을 떠나 산 속 기도원에 처박혀 생활비는 커녕 연락도 끊어서 카드사에서 직접 집으로 전화를 하게 하질 않나 15번이 넘는 이사 때문에 나와 형은 학교를 수시로 옮겨 다녀야 했고 그로 인해 당해야 했던 왕따라든지 다른 환경적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욱더 어이가 없었던 점은 아버지가 단지 교회에서 '충성 봉사'와 '헌신'을 한다는 이유로 훌륭한 신자로 대우 받았다는 거다. 실상은 가족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었을 뿐인데 말이다(내가 가장 열받았던 건 이런 아버지의 직접적인 폭력과 독단적 행동으로 인한 각종 피해와 고통이 믿음으로 견뎌내야 할 시련, 혹은 아버지의 변화를 위한 기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치부됐다는 거다).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어른들이 교회 밖에서 하는 행동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십일조를 내는데 - 탈세라든지 수단 자체의 부정함 등 - 그 액수가 곧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상징처럼 떠 받들어졌다.

'예언서에는 분명히 부정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걸 좋다고 받아들이는 목회자나 어떻게든 헌금만 많이 드리면 된다는 신자들은 뭐지?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데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다면 그건 잘못이라고 하는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말에 의하면 나와 우리 가족은 무슨 잘못 때문에 지금 이런거지?(이 부분은 한국 개신교에 상당히 만연한 '번영 신학'의 논리다. 미국에서 수입된 신학의 한 갈래로 현재 개신교 목사들이 흔하게 써먹는 복음 전파의 효과적 수단이다)'


대학교 때 형을 따라 대형 교회 대학부에서 활동을 하면서 잠시 믿음을 회복한 듯 했으나 - 성가대를 비롯해 임원과 제자훈련 등을 받아 소그룹장으로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 그때도 내 마음 속에는 꺼지지 않는 회의가 존재했다. 이때는 더욱더 실제적인 의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식주가 없어서 죽어간다. 그리고 열 살 무렵의 소년병들이 총을 들고 서로를 죽인다. 하나님은 도대체 이런 현실을 왜 그대로 내버려 두는걸까. 그들은 하나님을 접할 기회도 없는데, 그들이 죽는다면 그들은 천국에 갈까 아니면 지옥에 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다는데 그러면 그들은 그런 곳에 태어나서 그렇게 살다가 죽을 계획으로 태어난 걸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인간은 자유는, 자유의지는 무슨 소용이 있는건가. 그리고 애초에 원죄라는게 존재하는 걸까.'

(대형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조직에 대한 깊은 회의와 불신을 추가적으로 얻었다. 목회자들이 얼마나 자기 마음대로 교회 재정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교회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받고 있으며 이것의 출처와 사용처가 합리적이지 않을 뿐더러 성경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그러했던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신앙 서적과 신학 책을 읽어보고(마침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개신교 학교였기에 정해진 학기 동안 채플이 있었고 신학 수업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했다. 신학을 공부하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내로라 하는 목사들의 설교를 들었다. 교회 일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고 어떻게든 내 믿음을 지켜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의문들은 회의로 발전했고 내가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들은 신의 존재와 성경의 확실성 - 신학적인 표현으로는 '성경의 무오성' - 에 대한 비판적인 결론을 이끌어 냈다.

(이 부분을 다루기엔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자면,

현존하는 성경은 '진본'이 아닌 '사본'에 불과하다. 여러 사본이 각각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고 정경과 외경의 구분 또한 불확실할 뿐더러 성경의 저자와 내용의 진실성 또한 신뢰할 수 없다. 신약의 대부분이 서신서이고 그 내용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이나 그다지 의미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것도 '신의 감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가. 그것이 어떻게 해서 정경인가. 만약 성경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면 성경을 기초로 만들어낸 교리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와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믿을 만한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또한 성경에서, 특히 구약과 신약 중에 어떤 율법 - 혹은 명령 - 은 지키고 어떤 것은 안 지킬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그 기준이 모호할 뿐더러 성경이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오류가 없다면 그 내용을 다 믿고 실천해야 하는데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성경의 아무 장이나 펼쳐서 보면 노예제나 여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를 비롯해 장애인은 제사장이 될 수 없고 나병 환자를 비롯해 생리하는 여성은 불결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과 대량 학살이나 동성애 문제 등 비인간적이며 도저히 용납할수도, 용납해서도 안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외에도 자유의지나 종교의 기원, 역사적 사실, 과학과 관련한 사실들도 있지만,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14년에는 잠정적인 무신론자가 되었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신론자임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고 3년 정도의 유예기간 동안 마지막 시도로 성당에 다니면서 세례도 받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최종적으로 무신론에 대한 확신을 굳혔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무신론자임을 선언하고 난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 물론 초기에는 종교를 믿던 습관이 있어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이것이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거나 신의 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특히 종교적인 환경에서 배운 사고의 틀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내 판단의 근거를 성경과 종교적 권위가 아닌 다른 것에서 찾아야 했기에 그 체계를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여러 고민 끝에 나는 휴머니즘을 내 기준으로 삼았다. 커트 보니것이 말한 것처럼 "사후세계에서 받을 보상이나 처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최대한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한다.


나는 이제 신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처벌이나 천국에서의 보상을 위해 선행을 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선택과 자유 의지에 의해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의거하여 나와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신 없이도 충분히 잘 살고 있으며 오히려 더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키워드 선택에 무신론, 무신론자가 없어서 아주, 매우, 엄청 당황했다. 문의글을 남기긴 했는데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다.


*종교에 대한 문장들.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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