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이 만든 그늘, 비로소 시작된 생명들

휴식과 포기가 필요한 이유

by Sunshine

정원이라고 하면 아주 멋있는 앞뜰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보석같이 중요한 앞마당이기에 정원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온 때는 2018년 10월 말 여름이 다가오는 때였다. 그때까지는 집을 감싸는 담이 없어 집의 건물 전체가 도로에서 그대로 가감 없이 드러나 보였었다. 내가 호주로 도착한 2000년도 경에는 거의 모든 집들이 담이 없었고, 담이라고 해도 허벅지나 허리정도까지 오는 얕은 나무로 세워진 울타리가 집과 정원과 어우러져 집의 외관을 보기 좋게 해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 집으로 이사를 들어온 때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담이 없는 집들이 여전히 몇 채 남아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모든 집들이 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가족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 우선일 테고, 두 번째 이유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보안을 위해서일테이다.

image.png 담장이 없던 우리집 외관 모습


이사를 들어와 담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불안감이 높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유리창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집안으로 순환시키고,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고 아침을 시작하는데 그때는 마음 편안하게 창문을 열기가 쉽지가 않았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샤워를 해도,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누군가 작정을 하고 집을 들여다 본다면 충분히 엿보고도 남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을 더하여 말해보자면, 집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집 앞을 돌아 나가는 차 안의 운전하는 사람들의 얼굴까지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image.png 풍성해진 정원


하여튼, 몇 달을 기다려 드디어 집을 에워싸는 벽이 세워지고 우리의 보호막이 되어주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담벼락이 주는 안정감에 만족하는 사이 우리만 그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 있는 나무들과 풀들과 꽃들도 그늘을 즐기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담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하루종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가감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는데, 이제는 아침과 저녁 담벼락이 만들어주는 그늘 안에서 우리 정원의 화초들도 한숨을 내쉬며 즐거워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끼게 된 연유는 이사 온 첫 해에는 일 년 열두 달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사시사철 아침에 블라인드를 열면 총 천연색의 꽃들이 피어있는 가든을 상상해 보시라. 이사 들어온 첫 해에는 화초 정원이 훵 했었는데 해가 갈수록 무엇인가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땅 속 깊이 화초들의 뿌리가 숨겨져 있던 것이 땅이 조금 축축해지고 부드러워지면서 목마름에 잠자고 있던 있던 식물들의 뿌리가 습기를 머금고 새싹을 피우고 푸른 잎을 내 보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6년이 지난 현재는 화초 정원이 무성해졌다. 남편과 나는 화초들을 사다 심지 않았는데 지속적으로 생명체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이런 신비한 일들이 현재 우리 집 정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화초와 나무들도 그늘이 주는 휴식이 목마르게 필요했던 것이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4969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maGHDv%2BNOkfFUEpefyb5dlu8qFw%3D 온갖 나무들이 풍성한 정원


커다란 라임나무는 처음 몇 해는 라임이 열리지 않았다. 나무는 무성하게 큰데 열매를 맺지 않으니 왜 그런 지 몇 년을 지켜보며 가지치기를 해 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열리던 라임 열매가 해를 더해가며 마구마구 자라는 것이 아닌가. 어느 한 해는 비닐봉지 가득 라임을 담아 이 집 저 집 이웃집 문 앞에 나누어주기도 했었다. 덩치가 커다란 망고 나무도 줄기와 잎사귀만 튼튼하고 열매는 맺지 않고 있었는데 매년 필요 없는 줄기들을 잘라주니 작년부터 망고를 만들어내고 있다. 작년 여름 망고철이 지나 커다란 가지를 잘라냈더니 금년은 작년의 두 배이상의 망고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람만 휴식이 필요한 게 아닌가보다. 식물들도, 동물들도 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다.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필요 없는 것들을 과감히 포기했을 때에야 가능해진다. 이런 자연의 섭리와 변화를 나는 우리 집 정원에서 배우고 있다. 이런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의 앞마당,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나의 정원이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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