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닐 때와 사회 초년생 시절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내 몸가짐이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양다리를 한쪽으로 모아 앉게 되고, 양손을 가볍게 잡고 살며시 겹쳐 치마 위에 놓게 된다. 걸을 때는 등과 허리를 쭉 피고 다리를 쭉쭉 뻗으며 똑바로 걸으려 노력하게 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건만 본능적으로 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여성미 철철 넘치는 요조숙녀가 된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만끽하게 만들어 주었던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은 졸업을 한지 이미 오래전이고, 치마를 입는 일도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치마를 입더래도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와 허리가 어딘지, 배가 어딘지, 내 몸을 모두 감춰주는 박스형 원피스를 선호하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몸에 달라붙는 긴치마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나 스스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아주 가끔 집 안에서만 입고 있다. 집 안에서만 입고 있어도 느낌이 다르다. 잘 차려입은 부잣집 사모님이 되어 깔끔하게 정돈된 집 안을 거닌다든지, 또는 정원의 꽃들을 감상하는 고상한 모습이 그려진다. 또는 잠시 다니러 온 손님들을 맞기 위해 과하지 않게 살짝 준비한 모습의 내가 느껴진다. 이때는 향기 나는 차를 한잔 끓여 소파에 앉아 음악이라도 듣고 싶어 진다. 몸의 실루엣이 살짝 드러나는 치마 하나를 입었을 뿐인데 느껴지는 나의 감각들이다.
보통은 바지를 주로 입는다. 바지를 입을 때도 어떨 때는 딱 달라붙는 바지를, 기분에 따라서는 통이 엄청 큰 통바지를 입는다. 레깅스를 입을 때는 내 사이즈보다는 훨씬 더 큰 윗도리를 선택해 엉덩이를 가리고, 때에 따라서는 부츠를 신어 가냘픈 다리가 너무 빈약해 보이지 않게 가린다. 이 때도 내 느낌은 보통때와는 다르다. 약간은 날이 선 느낌, 감각이 살아난다. "나는 여자다, 나의 여성성은 여전히 살아있다"라고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편안한 옷이 제일이다. 너무 딱 붙는 옷은 숨 쉬기도 불편하고, 특히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를 가릴 수 없기에 거절이다. 내 몸 사이즈보다 한 치수 큰, 품이 넉넉한 옷들이 편하다. 너무 화려하거나 튀는 색깔의 옷들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남들에게 눈에 띄기를 그리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나 평범하게 파묻히기도 싫다. 너무 비싸거나 유명 메이커의 옷도 선호하지 않는다. 유명 메이커의 마크가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원하지 않고, 옷 하나하나에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도 그리 현명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젊게 보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내 나이에 맞게 우아하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게 중년의 삶을 잘 살고 계시는 분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우아하게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 취향과 내 분위기에 맞고 입어서 편안한 옷이라면 환영이다. 나를 여인으로 느끼게 해 주는 옷이라면 더없이 좋다. 내가 입는 옷이 나라는 사람과 잘 어울려 나의 품위를 높여준다고 느꼈을 때에는 좋은 곳에 가고 싶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음악회라도, 미술 전람회라도 가고 싶어 진다.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기쁨을 느끼고 싶다. 보통 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는 비밀. 이런 느낌이 좋아 가끔은 옷을 잘 입고 싶어 진다. 옷이 날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