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의 신부, 펜트하우스에서 폐백을 올리다

by Sunshine

내 인생에 결혼은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혼자 살아가던 중, 어쩌다 나의 반쪽을 만나게 되었다.

내 나이가 40대 중반이 되다보니 결혼식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웨딩 마치에 맞춰 식장을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았고, 생각해 보면 쑥스럽기 그지없는, 나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결혼식이라는 것은 한창 이쁜 나이인 이십 대와 삼십 대 초반의 그림같이 이쁜 선남선녀들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곳 시의회에 가서 결혼 서류에 사인하는 것으로 거추장스러운 의식의 절차는 끝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났고, 결혼을 해서 함께 살 생각이라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미국에 사는 큰 언니가 너무나 축하를 한다며 어떻게 결혼식을 준비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서류에 싸인하는 것으로 간단히 식을 끝낼 생각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아니 왜 웨딩드레스는 입지 않고, 결혼식을 할 생각을 왜 않느냐고 펄쩍 뛰면서 놀라는 것이 아닌가! 내가 결혼을 한다면 미국에 사는 큰 언니네 다섯 식구가 모두 참석을 하겠다고 하며, 엄마 아버지는 물론이고 온 가족 모두가 참석하여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하고 나의 결혼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결혼 적령기에 있는 한창 아름다움이 무르익은 나이의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살면서 삼십 중반이 넘어가도록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 자식의 도리를 못하고 사는 것 같아 내심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던 중 호주로 이주를 해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자식의 도리를 못하고 사는 것이라는 한국적 사고방식의 프레임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너무나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호주 사람들은 왜 혼자 사냐고 물으면 '제대로 된 사람을 못 만나 혼자 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말이 정답이네'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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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내가 결혼을 하려고 하니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도 눈이 떠지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양가 가족들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결혼식을 치르는 부부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섬으로 하객들을 초대해 몇 날 며칠을 그들의 가족, 친지들과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나와 같이 일했던 한 동료는 이곳 골드 코스트의 해변에서 신부는 무릎을 살짝 덮는 짧은 웨딩드레스와 캐주얼한 슈트를 입은 신랑이 부드러운 모래를 맨발로 느끼며 야자나무를 배경으로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으로 조촐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결혼식을 치렀다. 그 아름다웠던 결혼식 사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 직장 동료의 부모님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두 번째 결혼식을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치루기도 했었다. 내 나이와 비슷한 분들이 그들은 두 번째 결혼식을, 나는 첫 번째 결혼식을 치루네 하고 생각했었다. 또한 결혼식은 생략한 채로 사실혼 관계로 사는 사람들도 무진장 많다.



그렇다면 나의 결혼식을 어떻게 치뤄야 하는가가 내가 마주했던 문제였다. 여차저차하는 사이에 서류에 사인만 하려고 했던 결혼식은 생각지도 않았던 성대한 결혼식으로 막을 열었다. 내가 다니던 호텔 맨 위층 펜트 하우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하고 한복으로 바꿔 입고 폐백도 진행했다. 폐백은 남편과 그의 식구들, 그리고 이곳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의 행사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아가며 모두들 너무나 즐거워했다. 피로연에서는 호주 음식과 한국 음식을 모두 준비해 다양한 메뉴로 하객들의 입맛을 춤추게 했다. 그 당시 내가 호텔에서 근무를 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일이었다.


결혼적령기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혼할 상대를 만난 때가 나의 결혼 적령기인 것이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가을에 피는 꽃이 있다. 겨울에 피는 꽃도 있지 않은가. 내게 맞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는 때가 나의 적령기이다. 사회적 편견과 관념 속에서 우리는 그것에 따라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이런 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십년 이상이 걸렸다. 이제서야 내 방식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마음 내려놓기가 가능해 졌다고나 할까? 내가 부딪혀 보지 않으면 남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이해하고 안다 하더래도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수많은 프레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프레임을 벗어버리는 방법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부딪혀 보는 방법뿐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나만의 프레임으로 내가 만나는 모든 적령기에 맞는 나만의 삶을 만들고 운영해 나아가보자. 나는 지금 가장 아름다운 내 인생의 적령기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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