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주인공만 빼놓고 써 내려간 50년의 기록

by Sunshine

나는 한국의 제 이차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났다. 제1차 베이비 붐 세대는 1955년부터 1963년까지, 그리고 제2차 베이비 붐 세대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라고 구분한다. 1963년부터는 정부의 산하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내가 자라던 그 시기에는 칠공주집, 구 남매집 등등의 가족들이 주위에 심심치 않게 있었고, 같은 시기,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의 슬로건은 아직도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이 또렷이 기억난다.



짤순이와 DOS의 시대


그 시대는 배는 곪지 않았으나 여전히 가난했으며 한 골목 안에서 텔레비젼이 있는 집은 부자로 명명되던 시기였다. 전자제품이 하나둘씩 선보이기 시작했고, 우리 집에 처음으로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오던 때, 냉장고가 배달되던 때, 전화가 연결되어 아버님이 손가락으로 전화 다이얼을 돌리며 동네방네 전화기 구입을 자랑을 하던 때가 있었다. 또한 세탁기의 전조 짤순이부터 물의 수압이 약해서 세탁기를 사놓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비싼 돈을 내고 구입한, 컴퓨터 몸체가 산 만한 컴퓨터를 온 집안 식구가 신기해했던 시기도 있었다. 큰 비용을 내고 산 컴퓨터는 무엇을 위해 그 기기를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집안 한 구석에서 "우리집에 컴퓨터 있소!"하고 떡 하니 보여주기 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컴퓨터 사용법을 배운다고 거액의 돈을 주고 학원을 다니며 시커먼 화면에 도스가 나오고 무슨 암호를 처대며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면서도 배우겠다고 덤볐던,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없는 배움을 그 시대에는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그 사회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했던 그 당시 나의 용기가 지금은 가상하게만 느껴진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4969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twPoNRM9PCeYQo7ahrICQvG0Hsg%3D 우아하게 나이들어가고 싶은 나


호주로 떠난 이방인의 20년


한 인간으로서의 몫을 온전히 행사해야만 하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때는 내가 살던 나의 조국이 왜 그리 작게 느껴지던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신문물을 배우고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욕구에 2000년대 초반 한국을 뒤로하고 여기 호주로 이주를 했다. 처음에는 이곳에 자리를 잡을 계획은 아니었으나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은 나의 삶의 터전이 되어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모자라는 영어로, 이방인으로서도 부족함 없이 일을 해 내고 싶은 욕심에 참 열심히도 일을 했었다. 한국보다 더 발전되고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라로 이주를 했으나 십 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나? 이곳에 산 지 십 년 정도가 지나니 한국을 돌아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 호주보다 훨씬 더 앞서가고 있는 나의 조국을 보게 되었다. 매년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의 발전상을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는 역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십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고, 전 세계인이 여행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변화무쌍한 세월의 회오리 바람을 타고 도착한 현재, 그러는 사이에 나의 나이는 50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치열하게 살아내야했던 그 지난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지금은 조금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가빴던 숨을 내 쉬면서 나를 돌아보고 있다. 가지고 있던 지식은 바닥을 보인 지 오래되었고, 빈 깡통을 가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살아왔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세상과 거리를 두고 모든 중심을 내 안으로 모으고 있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 내 삶을 뒤돌아보니, 살아오는 동안 나 스스로와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보다는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살아온 세월이었다. 부모님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나의 삶에 주인공이었던 나는 없었다.



이제 나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먹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제일 먼저 가고자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부족한 나를 감싸 앉고 용기를 주고 있다. "참 잘해 왔어, 수고했어. 그리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내 삶을 잘 다듬어가자, 우아하고 향기 있는 여인이 되자"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언제 온지도 모르게 받아들인 나의 오십, 50이 되어 새로 시작한 것은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느끼게 되는 것도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거쳐야 할, 그 지난한 세월을 지나서야 만나게 되는 하나의 단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라도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면서 혼자서도 행복한 삶, 또한 더불어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사람들이 내 가까이에 오면 나의 향기에 취해 함께 행복해지고, 함께 즐거워지는 그런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렇게 오늘을 채워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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