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에필로그 "당당히 현재를 살아갈 용기"

이혼 후 10년 #43 에필로그

by 누구니

이혼 전후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며, 나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얻었을까?
지난 시간들을 기록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망설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이야기를 써도 괜찮을까? 이런 마음을 남들에게 드러내도 될까?
혹여 나중에 아이들이 이 글을 읽고 상처받지는 않을까?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에 마음을 쓰며,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얻은 위안이라면, 이혼의 아픔을 글로 풀어내며 시어머니와 전남편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것이다. 차분히 지난 기억들을 글로 정리하며, 그들과의 나누었던 애증을 떠올리며, 일부는 이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분탓인지 남편또한 시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한결 너그러워진 것 같다.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아빠가 착해졌다'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엄마! 아빠가 크리스마스 때 우리 교회에 오기로 했어! 대박이지?”
덕분에 나는 예정되어 있던 제주도 여행 일정까지 미루고, 전남편을 VIP로 맞이하는 기이한 체험도 했다.
착한 아들과 딸은 주일학교에서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포기하고, 어색한 엄마와 아빠 사이에 기꺼이 앉아 주었다.

어른들의 예배가 지루했는지, 양 옆에 앉은 아이들은 이내 아빠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 잠이 들었다.


문득 예전에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한테는 막 배도 두드리고 이불 가지고 험한 장난을 쳐도 돼. 그런데 엄마한테는 그러면 안 돼."
나는 약간 섭섭한 마음으로 아들에게 되물었다.

"왜 엄마한테는 그러면 안 돼?"

"엄마는 돈도 힘들게 벌어오는데, 그런 장난까지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혹시 다른 집이 부러운 적은 없었어?"

아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른 집은 엄마랑 아빠가 합쳐서 10이라고 한다면, 우리 집은 엄마가 8이고 아빠가 4야.

엄마처럼 신문에도 자주 나오고, 재밌게 일하는 엄마는 잘 없어... 아빠가 좀 약하긴 해도 다 합치면 우리 집이 더 강해!”

중2 아들의 다소 유치한 표현이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동분서주 열심히 사느라 힘들었던 엄마의 노고를 자녀들이 인정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남들과 다른 가정환경에서도 깨알 같은 장점을 찾아내어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밝게 사는 사는 감사하기도 했다.


한때는 아이들의 혀 짧은 말투와 짧은 표현력, 남매 간의 나이에 맞지 않는 동물 놀이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교회 사람들과 솔직한 고민을 나누다가 내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제가 다른 엄마들처럼 매일 아이들과 부댖끼면서 살지 못하니까...자녀들이 가장 귀엽고 예쁠 때를 오래 볼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특별히 느린 성장 시계를 주신것 같아요.' 라고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떤 어려움을 겪든 그 미션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그 힘든 시간들을 잘 견뎌왔다. 실제로 그 믿음을 갖고 그 어려운 과정들을 잘 이겨내고 나면, 결과적으로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매번 성장해 있었고, 그 과정을 견뎌낸 나름의 이유도 찾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난 지금은 그 모든 과정 중에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분명 지금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만남과 결혼, 이혼의 과정을 통해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심적으로 많이 좌절하기도 하고, 세상을 향해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낸 것 같다.

바라건데, 나도 이제는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내가 가진 것이 다르고, 부족해 보일지라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이제는 주어진 일상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며 당당하게 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앞으로 내 인생에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기다릴지 모르지만...그게 무엇이든 당당히 마주할 용기를 내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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