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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기 싫은 나만의 해방촌...

by 누구니

올해부터 내가 다니기 시작한 문학교실의 강사님은 70세가 훌쩍 넘으신 은퇴 교사이다. 수강생들 또한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대 선생님부터 같은 수업만 수년째 수강하고 있는 70대 어르신까지... 평균 연령이 60대를 훌쩍 넘어가는 것 같다.

매주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내심 ‘여기는 내가 아직 낄 자리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그곳 사람들이 내가 어느 회사에 다니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수강생 중에는 내가 실제 동네에서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주민들도 제법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꾸역 꾸역 수업을 듣고 있던 나에게 지난주부터 새로운 난관이 생겼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서 문학 교실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 공개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은 수강생들이 직접 쓴 작품을 모두 같이 읽고, 강사님이 공개적으로 퇴고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수천 명이 가입되어 있는 온라인 카페에 내 이름으로 글을 올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공개적으로 내 글을 뜯어고치기까지 한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어떤 학생들은 개인 이메일로 작품을 보내면서 ‘익명으로 해주세요!’라고 하는데 그런 건 절대 안 돼요!”

강사님은 연세 지긋한 학생의 말투를 흉내까지 내며, 익명 기고는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강조했다.

이런 말까지 듣고 나니... 나도 제대로 배우려면 없던 용기라도 짜내서 글을 올려야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팔순을 겨우 넘긴 아버지와 엄마’라는 제목으로 문학 카페에 첫 글을 올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카페에 방문해 보니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연세 지긋한 어른들의 가족이야기부터 효도와 부모 공경에 대한 훈계까지...

"너도 곧 그 나이가 될 테니... 살아 계실 때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답답한 고향 땅에서 내가 유일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은 온라인 속 글이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남들에게 말 못하는 내 상황을 편하게 드러내고 속마음을 써내려 가는 순간 만큼은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관계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나의 일상이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상황을 겪으면서 정작 내 속마음은 어땠는지 털어놓는다고 생각하니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내 삐뚤어진 생각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포장해야 하고, 날 선 말들을 억지로 순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까지 막혀오는 것 같다.


이제 겨우 네 번의 수업을 마쳤을 뿐인데…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할까? 고민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내 이름을 드러낸 글을 공개하다 보면, 내 글도 더 당당해지겠지?'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여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여전히 흔들리는 내 마음

헤어지기 싫은 나만의 해방촌


나는 여전히 그곳에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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