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까?
"그 일은 다 하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 짜증이 배어 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쭉 그랬던 것 같다.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기로 유명한 그녀였기에 적잖이 놀랐지만 티 안 나게 '네' 하고 만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늘 긍정적이고 우아하신 윗 분의 해맑은 지령이 있었던 걸까? 스텝부서 경력이 오랜 팀장은 기획과 실행의 분리가 몸에 밴 사람이다. 실행을 위한 수면 아래 백조의 물질을 알리 만무하다. 그런 우아 대장이 그녀에게 또 뭔가 내린 건가? 면전에선 아무 말 못 했겠지?? 우리한테도 볼멘소리는 못하니까 짜증으로 묻어났나 보다. 내일 다시 출근하면 배시시 웃는 착한 그녀로 돌아가 있겠지만, 왠지 그녀의 짜증 빈도는 늘어만 갈 것 같다.
그녀는 늘 바쁘고 종종거리며 정신이 없다.
일이 많아도 들어오는 일을 쉬이 거절하지 못하고 검토라는 좋은 말로 상대방에게 희망의 여지를 준다. 아랫사람들은 반갑지 않아할 스타일의 상사다. 인당 몇 개의 업무를 할당받고 일정에 맞추려고 달리는데, 더 얹으면 누가 좋아하겠나? 요청하는 쪽은 늘 급한 법! 오픈을 정하고 요청을 하니 그럴 수밖에. 실무자인 우리와 먼저 일정 협의를 하고 보고를 해야지 항상 거꾸로다, 젠장. 현업의 시스템이 이모양이니 그녀도 거절이 쉽진 않겠지. 하지만 그녀의 위치에선 그게 능력이다. 적절히 끊고 받고 완급조절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리소스가 충분하다면야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리소스는 한정되어있으니까. 비단 일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적인 부탁도 잘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는 배달 판매 사원의 좋은 타겟이기도 하다. 좋게 거절하는 법, 그게 필요한 순간이다. 오늘 그녀의 짜증 표현을 계기로 좀 더 건방진 '을'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녀의 일상이 조금만 느리고 편안했으면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