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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Jan 07. 2016

그런 거지...

약속은 깨지기도 하잖아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  이거  참  잔인하고도 좋다.  

글에는 감정을 오롯이 전달할 수 없는 활자만의 딱딱함이 있다.  말의 뉘앙스에 감정이 실려 있어도 어쩐지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느낌이라 좀 잔인하다.  그래도 나 또한 그 순간에 바로 답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내용을 확인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그냥 창을 닫았다.  

난 메시지를 읽은 상황이 됐고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왜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을까?  찰나 놓쳐버린 타이밍에 기분은 한없이 가라앉았고, 폭풍전야의 고요가 깨지듯 바람이 일고 일순간 엉기기 시작했다.  교환 차 들렀던 구두가게 점원과도 겉돌더니 나는 졸지에 황당한 고객이 되어 버렸고, 부랴부랴 마무리를 하고 차를 빼서 또 출구를 놓친 채 지하차도를 달리고 있었다.  차라리 답을 할걸...

화는 나지 않았는데, 어디든 달아나고 싶어 못 견디겠는  듯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

"약속이 내가 아닌 상대방에 의해서 깨졌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었나?"  


"왜  무슨 일 있어?"

"어렵게 잡은 거였는데.  치...  "

따지고 보면 맥은 같다.

“당신이 약속을 깨서 나 좀 서운해,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약속까지 취소야.”

그런 속내가 깃들인 거다.  그래,  이게 나지.

아니 보통 사람들은 다 그런 거 아닌가?


이상하게도 화는 나지 않았다.  일이 생겨 약속을 취소한 사람이 한없이 이해가 됐고, 깨진 약속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도 이해가 됐다.  다만  끝도 없이 가라앉는 날 어쩌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약속은 깨지기도 하잖아.  그런 거지.”

나락으로 치닫는 날 구원한 건 어쭙잖은 상황 일반화였다.  


늦은 밤이 돼서야 답을 했다.  미안해했다.

"그런 거지... 뭐,  음... 처음엔 할 말이 없어 그런 거지 했는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거지 뭐.  약속이야  깨지기도 하잖아."


눈물을 참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내가 한 "그런 거지"라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나는 수면 가까이 나올 수 있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서럽게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비단 깨진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전날의  피로와 스트레스에다 혼자 보낼 시간이 좀 애처로웠던 걸까?  난 정말 괜찮다고 무겁지 않게 전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전에 없이 사람을 통해 커가는 나를 느끼는 요즘이다.  상대방의 어떤 기제가 내게 작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되짚게 된다.

만약 바로 대답을 했더라면 어떤식으로든 상대방을 나무랐을테고 더 미안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더불어 내마음도 부대껴 불편한 상황이 되었을 듯 하다.  시간차를 두길 잘했다.

한 발 물러나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살아가는데 여러모로 유용하다.   순간의 감정은 도화선이 될 소지가 다분하고,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어지니까.

이성적인 것과는 다른 절제...

물러난 시간동안 생채기가 좀 난다고 해도 말이다.




 ㅣ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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