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개봉일날 보고 왔다. 러닝타임이 2시간 17분으로 꽤 긴 편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면 사실 아무 고민 없이 그냥 보러 간다. 기생충을 봤을 때도 어찌나 몰입해서 봤던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얼마간 벙쪄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미키 17]은 기생충이나 설국열차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설국열차의 주제의식을 반복하는 느낌이 좀 들었고, 배경이 우주인데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매력이 그다지 담기지 않았다. 그냥 디스토피아 세계, 어딘가 폐허에서 기지를 짓고 생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았던 점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였다. [트와일라잇]의 잘생긴 뱀파이어었던 그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성장했는지 몰랐다. 특히 그가 미키 17, 미키 18로 칭하는 다른 인격을 가진 동일한 자신을 연기하는 부분은 정말 다른 사람같이 느껴졌고, 영화말미에 로버트 패틴슨이 불쌍하고 소심한 모습을 벗고 그저 편안하게 관망하며 웃는 모습은 방금까지 똑같은 로버트 패틴슨이었는데도 갑자기 어 맞지. 저렇게 잘생기고 멋있는 사람이었지? 저 얼굴로 찌질함을 어떻게 연기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근 미래 지구는 살아가기에 척박해졌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미키는 새로운 우주도시로 이주하는 항해에 지원한다. 별다른 능력이 없던 그는 파일럿으로 탑승하게 된 친구 티모와 달리 '익스펜더블', 소모품 역할로 합류한다. 바디스캐닝이라는 기술을 통해 죽더라도 똑같은 신체와 인격, 기억을 복제하여 계속 살아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서 방사능 노출, 바이러스 테스트 등 여러 위험한 임무에 실험쥐처럼 투입된다.
인간을 이렇게 비인간적인 실험쥐로 사용하고, 복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를 훼손하는 것에 대한 비판, 그리고 봉준호 감독에 영화에서 자주 다뤄왔던 계급갈등과 지도자 계급의 무능함에 대한 풍자가 이 영화의 주요한 주제의식이다. 음 그런데 가장 메인이 되는 핵심 아이디어인 '익스펜더블'이라는 게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시리즈를 보고 기분 나쁘고 소름 돋는 이유는 어쩌면 미래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인데, 공익을 위해 인간을 실험용 쥐로 사용하며 죽으면 계속 복제한다.라는 콘셉트는 2025년을 사는 지금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여전히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보러 갈 것이다. 그의 영화는 이만 원이 안 되는 영화티켓 가격이 때로 송구할 정도로 예술적인 퀄리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슷한 주제의식 역시 그가 집중하는 봉준호의 세계관일 것이다. 매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깊이가 없는 것일 테니까. 모쪼록 [미키 17]을 볼까 말까 고민한다면 한번 보시라고 추천한다. 긴 시간 몰입해서 흥미롭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