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묵상>
여행은 어떻게 가는 게 좋을까? <여행의 기술>을 쓴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현실에서 만나는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여행은 도피 수단밖에 되지 않으며 일상을 증오로 몰뿐이어서 불건전하다. 내 생각으로는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니,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한다. 우리가 현실에 살면서 얻는 정보나 지식으로 나도 모르게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 대해 환상을 쌓게 되는데, 그 환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 같아 힘이 없다. 심지어 우리의 삶을 허위로 내몰 위험도 있다. 믿건대,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일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묵도하게 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말은 항상 사실이었다.
승효상 <묵상> p23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승효상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