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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un 10. 2022

31.나의 워킹 메이트 은성에게

승효상 <묵상>

친애하는 나의 친구 은성에게


'아끼는 말들' 편지 쓰기를 시작하고 15편의 편지를 주고받았더라. 너에게 보내는 열여섯 번째 러브레터, 오늘은 너에게 했던 첫인사 그대로 편지를 시작하고 싶었어. 곧 네 글이 올라오겠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아침, 오랜만에 너의 글을 보니 정말 반갑더라고.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듣거나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 멍석 깔린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잖아. 너의 이야기를 차분히 읽고 내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쓰고 읽는 이 행위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아침에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졌어.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음에도 그것에 쉽게 지치고 빨리 지겨워지는 것 같아. 결국 고향 같은 이들 품에서 위로받고 혼자만의 고독 속에서 정화의 시간을 거치지. 그럼 또 앞으로 쭉쭉 걸어가 보고 싶은 의욕이 불쑥 생겨. 목적지를 정해두고 최단거리를 계산하여 일직선으로 곧게 달려 나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했어. 나는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빙글빙글 순환하며 나아가는 낮은 회오리바람 같은 사람인가 봐.  글쓰기란 목표점만을 보기엔 내 마음을 유혹하는 것들이 사방 지천에 깔렸다. 러닝타임 5시간짜리 영화도 보고 싶고 40분 오롯이 귀호강하게 해주는 피아노 연주도 듣고 싶어. 주말엔 땡볕이라도 좋으니 하늘 아래 서고 싶고 다정한 이와 뚜벅뚜벅 지칠 때까지 걷고도 싶어. 그래서 조금 달리다 보면 이렇게 좋은 것들을 다 놔두고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어지는 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더라.


'글쓰기'가 고심 끝에 깃발을 꽂아 둔 목표점이 맞다고 해도 단숨에 달려갈 체력도 인내심도 없어. 이렇게 두리번거리며 순환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게 내 방식인가 봐. 그래도 가슴에 와닿는 글귀를 읽으면 쓰고 싶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면 쓰고 싶고 햇빛이 찬란해서 쓰고 싶고 걷고 나서 상쾌하니 쓰고 싶더라. 결국 두리번거리는 행위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며 나를 나아가게 하는 일들이더라. 글쓰기란 큰길 위에서 노는 것 같았어. 쉬었다 가자고 말해주는 것도 좋고 한 번씩 달려 나가 주는 것도 고마워. '천천히 가자' 하고 빠른 템포를 조절해 주고 '너 뭐해?'하고 말 걸어 주고 '같아 가자' 하고 이끌어 주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너의 글은 내게 이런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기분 좋게 푹신푹신해지도록 해주었어. 러닝이 아닌 워킹의 속도라도 함께 즐겁게 가보자.


참 저번 주에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왔어. 일요일은 비가 와서 여기저기 다니지 못하고 내가 가고 싶었던 곳 두 군데만 가족들을 끌고 다녔어. 전혁림 미술관 옆에 <남해의 봄날>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독립서점이 한 군 데 있어. 너 생각나?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열 다섯 곳의 출판사에 투고했었잖아. 거절의 메시지는 대체로 읽을 때 온도가 낮게 느껴지잖아. 답장을 주지 않는 곳도 있고 그나마 형식적인 답변들이 대부분. 그러다 아, 이곳은 그래도 검토는 해보았구나 싶은 메일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그때 <남해의 봄날> 편집팀에서 보낸 메일이 제일 따뜻한 온도로 거절의 메시지를 전한 출판사였어. 이곳에 원고를 보낸 건 우리 편지글의 시작이 <친애하는 미스터 최>라는 책 덕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출판사 이름이 <남해의 봄날>이라니 좀 낭만적이지 않니? 한 권씩 기념으로 책을 골라 국제음악당에 있는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각자 책을 읽었다.


사실 이번 여행엔 목적이 하나 있었는데 엄마가 어릴 적 잠깐 살았던 사량도의 마을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어. 전에 사량섬에 대한 글을 쓰고선 일정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비가 와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거든. 이번에도 비 소식이 있었지만 이왕 통영까지 왔으니 비가 오더라도 사량도행을 감행하기로 했어. 아침 5시가 되니 눈이 번쩍 뜨이더라. 커튼을 걷고 하늘을 봤어. 여름을 맞아 부지런해진 헬리오스 신 덕분에 밖은 벌써 어둠이 가셨더라. 전날 하루 종일 내리던 비마저 정량을 초과했던가 깜쪽같이 그쳤고. 일찍 일어난 엄마와 둘이서 커피를 한 잔 마시니 금세 아침 햇살이 넓은 바다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창문을 뚫고 방안 깊숙이 인사하듯 들어왔어. 오늘의 여정을 축복하는 듯한 성스러운 느낌이 들더군.


엄마가 그 섬에 머문 것은 초등학교 때 3~4년 정도였데. 마을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이름도 없는 작은 마을이었던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힌트는 단 세 개. '작은 규모의 몽돌 바닷가가 있고 그 앞에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집 뒤쪽으로 대밭이 있다. 뚝뚝 떨어져 앉았지만 대여섯 채의 집 사이사이에 논과 밭이 있다.' 이 단서를 가지고 우리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 섬 일주를 시작했어.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일한 관광지 지리산 옥녀봉은 상도에 자리하고 있어.  숙박시설도 음식점도 상도 터미널 근처에 모여 있는 작은 섬이야. 상도와 하도를 잇는 다리가 개통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하고 엄마가 섬에 갇힌 후 한 번도 뭍으로 나온 적이 없다 하니 상도의 어느 마을이 아닐까 짐작하고 상도일주로를 먼저 달렸어. 그러나 비슷한 곳을 찾지 못했어. 꼬불꼬불 이어지는 섬 드라이브. 위로 올려다보면 바위와 바위를 연결한 아찔한 높이의 다리가 보이고 왼쪽으로 바다가 끊임없이 이어졌어. 아, 대나무 숲이다! 아... 앞에 섬이 없네... 아, 앞에 섬이다! 몽돌해변이 없잖아... 혹시와 역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혜령이가 속이 불편한 것 같다고 칭얼거렸어. 뒷좌석에서 깊은 잠에 빠졌던 현아도 스르르 눈을 떴어. 비슷한 곳을 찾지 못하고 상도 일주가 끝나버렸어.


상도 터미널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어. 하도일리가 없다. 어떻게 걸어서 바다를 건넌단 말인가. 왠지 엄마의 그 마을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더라. 나는 전날 갑자기 몸에 생긴 종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 타이레놀로다스려지지 않는 통증을 참아가며 견디고 있어서 그런지 점차 말이 없어졌어. 포기하지 않는 모험가 역할을 분명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힘이 쭉 빠졌어.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한쪽에서 치고 올라왔어. 그래도 하도를 돌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거야. 또다시 차에 앉았어. 혹시, 역시가 다시 시작되었어. 얼마 안가 요의를 느낀 아이들 때문에 어느 마을 회관 앞에 차를 세웠어. 이 김에 좀 쉬어 가자 하고 돗자리를 들고 나무 아래를 찾아 걷기 시작했는데 길만 이어질 뿐이야. 정자가 있는 다른 마을을 찾아보자고 다시 걸어 나오는데 참지 못한 내가 옆에 보이는 선착장 공터에라도 얼른 돗자리를 펴자고 성화를 부렸어. 그러니 '이 땡볕에? 조금만 참아봐~' 하는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다들 가던 길을 그냥 가는 거야. 별말 없이 넷이서 쪼롬히 도로를 점령하고 길을 가는데 그 모습이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 영화의 한 장면 같더라.


여행은 어떻게 가는 게 좋을까? <여행의 기술>을 쓴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현실에서 만나는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여행은 도피 수단밖에 되지 않으며 일상을 증오로 몰뿐이어서 불건전하다. 내 생각으로는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니,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한다. 우리가 현실에 살면서 얻는 정보나 지식으로 나도 모르게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 대해 환상을 쌓게 되는데, 그 환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 같아 힘이 없다. 심지어 우리의 삶을 허위로 내몰 위험도 있다. 믿건대,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일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묵도하게 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말은 항상 사실이었다.

승효상 <묵상> p23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묵도하고 싶었던 것이 엄마의 바람이었을까. 혼자 외롭고 무섭게 섬집을 지켜야 했던 그 시절을 원망이 아닌 그리움으로 승화시켜가도록 설득한 것은 '세월'이란 녀석일 테지. 혹시가 역시가 아니라 아마도, 라는 장소를 만난 것은 하도 일주가 끝나가는 곳에서였어. 옛날 선착장이 있던 '양지리'란 마을을 보자 엄마가 그 이름을 기억해 내시더라. "여기서 산을 넘었다." 그 말에 힘입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산길을 향해 오빠가 차를 몰았어. 세월은 원망을 그리움으로 승화시키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것들을 묻어버리기 마련이겠지. 길은 끊어지고 집터는 흔적만 남았을 뿐이라 멀리서 '아마도 저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으로 우리의 탐정 놀이는 끝이 나고 말았어. 정작 진실을 마주하며 환상이 깨지는 경험을 한 것은 엄마가 아닌 나였어. '어떻게 이런 외지에 그 어린것을' 누구를 향해서라고 할 수 없는 원망이, 굳이 따지자면 '시대와 운명'에 대한 한탄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더라. 엄마를 보니 '그리움이란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는 어느 소설가의 문장은 참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쨌든 이 무미건조한 여행으로 엄마는 60여 년이 넘도록 속에 담고 있던 미련을 떨칠 수 있었고 나는 숙제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어.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딱 정해져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봄과 가을이 단연코 자연과 함께 하기 좋은 계절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 오전에 잠깐 영화를 봤는데 여자 친구 넷이서 아리마로 온천 여행을 떠나거든.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어떤 여인에게 부탁을 해. 그 여인이 스냅사진 기사처럼 1+5는 뭐죠, 이런 식의 갑작스런 질문들을 던져. 다 같이 웃음보가 터지는 거야. 갖가지 고민들을 끓어 안고 서로에게 다 털어내지도 못하는 그들이지만 그 순간의 함박웃음은 분명 진품이더라. 그 장면을 사진기로 찰칵 찰칵 담는데 내 입도 그들처럼 벌어져서 한참 다물어지지 않더라. 힐링의 순간이었다. 함께 걷고 함께 치즈를 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감사해.


너와 만나기 전에 승효상 선생님의 <묵상>을 다 읽고 싶었는데 사실 오늘에야 책을 펼쳤다. 책은 여행을 다녀와서 읽어도 충분히 좋을 거야. 그렇지? 오랜만에 친구와의 나들이라 옷도 사고 싶고 신발도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책 첫 챕터 제목이 아래와 같더라.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승효상 <묵상>


오전 시간은 정말 급속 열차처럼 지나간다. 벌써 출근 시간이야. 그래도 오늘은 아쉽지 않다. 못다 한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실컷 할 수 있으니.


추신. 설렘은 항상 여행보다 한 발 앞서 오나 봐.


2022.6.10 바람막이 점퍼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한 승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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