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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Oct 20. 2023

바람을 향해 달리고 싶을 때, 삼락생태공원

나의 사적인 부산 여행기 3

                

'혜령이와 나와 오빠의 세 번째 봄이다.'

2017년 4월 16일의 일기는 이 문장으로 끝나 있다. 당시 김연수의 <내리 내리 아래로만 흐르는 물인가, 사랑은>이란 제목의 수필을 읽은 참이었다. 딸과 자전거를 탔던 추억을 써내려간 글이었다. '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면서 나는 "열무와 나의 두 번 째 여름이다"라고 혼자 말해봤다.' 란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남편에게 유아용 자전거 안장을 알아봐 달라 부탁했다. 비탈이 많은 부산에서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았고 아이를 낳은 뒤로는 여유도 없어 자전거는 베란다에서 녹슬어 가고 있었다. 무거운 짐짝처럼 방치된 자전거의 먼지를 털고 바람 빠진 바퀴를 갈았다. 10년 된 일상용 자전거 바구니 뒤쪽으로, 아이도 운전자와 같은 방향으로 앉을 수 있도록 안장을 달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차에 싣고 집에서 멀지 않은 삼락생태공원으로 나왔다.      


혜령이를 앞에 앉히고 봄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하나씩 떼어 깔끔하게 묶어주는 엄마 같은 바람이었다. 그 다정함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앞에 앉은 혜령이는 나보다 더 신이 났다. 지칠 때까지 달려도 자전거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다. 자전거가 덜컹거리면 아이가 소리 내어 웃었고 나는 몸을 숙여 아이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아이와 함께 한 첫 라이딩은 성공적이었다. 책 속의 문장을 본 따 '혜령이와 나와 오빠의 세 번째 봄이다'고 기록을 남겼다. 우리의 라이딩 역사는 이 날부터 시작되었다.      


첫 라이딩 후 남편의 자전거를 중고로 구입했다. 주말이면 셋이서 자전거를 타러 공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국토 종주의 한 코스인 낙동강 자전거 길은 을숙도에서 시작하여 안동댐까지 이어진다. 무려 389km다. 국토종주 14개의 코스 중 제일 긴 구간이다. 그 구간은 다시 인증기점을 기준으로 12개로 나뉜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는 자전거 길의 첫 번 째 구간은 을숙도에서 시작하여 삼락생태공원과, 화명생태공원을 지나 양산 물문화회관까지 이어진다. 삼락공원에서 화명공원으로 가는 구간 중 일부는 낙동제방 30리 벚꽃길이다.      


봄이면 약 5m폭의 길 양쪽으로 3000그루의 벚꽃이 각각 양팔을 크고 높게 벌려 손을 맞잡고 긴 터널을 만들었다. 노란 개나리와 철쭉까지 합세를 할 때면 마치 웨딩마치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꽃 좋은 나무의 녹음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해를 가려주어 여름에도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따뜻한 남쪽의 벚나무 단풍은 겨울 초입까지 고왔다. 봄, 여름, 가을, 봄, 여름, 가을, 우리는 그 길을 달렸다. 시간도 우리를 따라 달려왔다. 양산으로 이어지는 제 1코스까지 발도장을 찍었다. 아이는 학교에 입학했고 쌀 한 포대보다 무거워졌다. 자전거에서 유아 안장을 떼어냈고 자신의 세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도무지 집에만 있기가 힘들었고 콧바람이라도 쐬어야만 했는데 시원한 바람을 갈구하는 횟수도 점차 줄어 들었다.     


며칠 전이었다.

"혜령아, 엄마 따라 와 봐."

아이의 거짓말이 길어질까 족발을 먹던 딸을 불러내 방으로 데리고 갔다. 문을 닫은 후 아이와 마주보고 앉았다.

"오늘 오후에 엄마 핸드폰에는 네 위치가 괴정 시장으로 나오던데, 너는 아파트 주변에서 놀았다니 이상하네.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한 번 말해 볼래."

"사실은 친구들이 전부터 마라탕 먹으러 가자고 해서......“

 긴장한 아이는 눈물이란 방패를 꺼냈다.

"아파트 부근을 벗어나게 되면 미리 알리라고 말했지. “

내 목소리가 굵어졌다.

"아빠가 전화를 안 받아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이가 변명을 했다. 며칠 전에도 친구들과 마라탕을 먹으러 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아직 어리니 부모님이 같이 가든지, 4학년이 되면 생각해 보겠다 구슬려놓은 터였다.  

"그럼 식탁에서 엄마가 다시 물었을 때 솔직하게 말했어야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기노? 이제 그만 밥마저 먹여라.' 며 아버지가 방문을 한 번 열었다 닫고 가셨다. '가족 간의 믿음, 실망,' 이런 훈계와 '초등학교 2학년도 자기들끼리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데', 같은 변명들이 오가는 동안 30분이 훌쩍 지나있다는 걸 알았다.


 거짓말을 한 것이 속상하긴 했지만 괘씸하진 않았다. 자기만 가지 못하겠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으리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정작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자책과 걱정이었다. 아이가 10살이 되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구나 아이는 할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후로는 할머니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이 되어야 집에 왔다. 내게도 자유시간이 생겼다. 거의 10년 만에 충분히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고 친구와 만나 하루 종일 수다를 떨 수도 있었다. 집에 있어도 시간이 잘 흘렀다. 처음엔 불안하여 아이가 놀이터에서 잘 놀고 있는지 한 번씩 내려가 보기도 하고 전화로 확인도 했다. 그러나 의래 잘 놀다 들어오겠지 싶었고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학고 물어보는 일도 줄었다. 그러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며 친구들과 시장에 까지 진출하여 마라탕을 사먹고 동전노래방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 것이었다. 희극에 능통하지 않은 극작가가 여러 가지 나쁜 상황들을 섞어 막힘없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살면서 제일 후회되는 게 뭐냐는 질문에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읽고 쓰는 일에 몰두해 나중으로 미룬 일이라고 하셨다. 책읽기도 글쓰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고민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내일 삼락공원에 자전거 타러 갑시다' 가족 단톡에 문자를 남겼다. 다음 날 아침 베란다에서 자전거 세 대를 꺼내 차에 매달고 커피를 타고 물을 챙겼다. 마트에 들러 과자와 컵라면을 샀다. 주문해둔 김밥을 찾아서 삼락공원으로 갔다. 널찍한 정자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혜령이가 라면 국물을 쏟는 바람에 치마만 입은 맨다리가 되었다. 올해 봄, 혜령이는 보조바퀴를 떼고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막힘없이 페달을 굴리며 빨리 달려 나갔다. 한 번쯤 뒤돌아보아주어도 좋으련만 달리기에만 몰두했다. 선두로 나선 아빠를 따라잡을 욕심이다. 안동댐까지 달려갈 기세다.

“혜령아, 같이 가자.”

나도 둘을 따라 페달에 발을 올리고 굴리기 시작했다. 길 오른편으론 억새가 우거지고 왼편으론 강물이 조용했다. 하늘은 흰 회색이었다. 아이의 차가운 맨다리에도 10월의 바람은 다정하다. 우리의 열 번째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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