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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Mar 26. 2021

'BTS 오디세이' 목숨을 건 비약

김송연의 'BTS 오디세이'를 읽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비약'을 해야 한다고 말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사랑은 단지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이루고 있던 익숙함을 버리고 상대방을 믿고 나를 변화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이라고 정의했다. 그 비약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비약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대상과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고약한 취두부 향기에 코를 틀어막고 얼굴을 찡그리기만 한다면, 한 장 읽는 데 30분 걸리는 들뢰즈의 책을 사정없이 덮어버린다면, 아이돌 가수이지 뭐 다른 게 있겠어하고 BTS의 음악을 틀어보지도 않는다면 너는 방구석에 앉아 사랑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뿐이 더 되겠니 하고 나에게 뜨끔 하게 말한다. 음식은 먹어봐야 맛을 알고 책은 읽어 봐야 진가를 알며 노래는 들어 봐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더 온전히 집중하여 맛을 느끼고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고 읽으려 애쓰며 눈을 감고 선율에 몰두하면 더 많이 알게 된다. 더 많이 알게 되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나는 믿음은 그렇게 천천히 싹터서 사랑의 꽃으로 활짝 핀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처럼 만남이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취두부는 상종 못할 남자구나, 다음엔 절대 저런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지 않으리 하고 다시 골방에 처박히기도 한다. 그러나 뼈아픈 인생 경험 하나를 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쁜 남자 많이 만날수록 좋은 남자와 결혼하더란 소리가 영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더 온전히 사랑할수록 나를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고 나를 변화시킬 힘을 얻었던 경험을 소개한 책이 있다. 김송연 작가의 첫 에세이 집 'BTS 오디세이'다. 김송연 작가는 브런치 이웃이다. 나는 그녀가 낯선 프랑스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던 이야기들을 담은 글을 통해 그녀를 만났다. 솔직했기에 너무 아픈 그녀의 상처가 그대로 와 닿았다. 가식 없이 진심 담긴 글은 누구나 울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브런치에는 영화 이야기, 음식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있었다.  가끔 그녀의 서랍을 드나들며 글들을 읽었고 그녀가 소개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던 매거진이 하나 있었다. 사실 내가 글로 만난 그녀의 이미지와 그 매거진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순진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글을 통해 작가와 진심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며 글을 읽는 타입이다. 나를 전율하게 했던 그 시인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도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의 롤모델이던 그녀의 소설들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 때도 그 작가가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속으로 두둔했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하고 끝내 믿지 않으려다가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글을 읽으며 그 글을 쓴 사람을 상상하다 보면 독자는 스스로 작가의 이미지를 만들고 원하는대로 작가의 성품이나 취향까지 만들어 보기도 한다. 내가 그려보던 작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BTS,  방탄소년단?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얼마 전 'BTS 오디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그녀의 BTS 글을 처음으로 만났다. BTS에 대한 관심보다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구입한 책이었다. '고통과 치유의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분명 이 책 어딘가에 그녀가 겪던 그 아픔을 치유해 가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였다.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글은 희망처럼 붙잡고 있던 아이에게 외면당한 엄마의 심정을 담은 글이었다. 읽는 사람까지도 절망으로 이끌고 가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 헤쳐 나왔을까, 그 지혜의 비법을, 그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책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다.

  

숨이 막혀오던 그 겨울, 나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감옥 속에 있었다. 내 마음이라는 감옥이었다. 이토록 완벽한 절망은 없었다.


  힘든 사람한테 힘내라는 이야기만큼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도 없을 것이다. 당장 오늘을 겨우 살아내고 내일을 견디는 것만이 최선인, 그런 시간들을 지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취미생활이라도 하라는 조언들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해 볼 마음의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냥 살자 싶었다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싶었다가 마음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죽을 수도 죽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힘차게 불러주는 노래다. 나는 이렇게 지나왔어요라는 희망의 노래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 속에다
                                                                                     -BTS   <Masgic Shop>

진짜 어려운 것은,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조화롭게 흐르고 저마다가 제 모습 그대로 빛나는 것이다.                                                                    -김송연

우리는 영혼의 어둠을 지나야 하고 자신의 짐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누구도 그 집을 대신 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융



책은 위로의 향연으로 무척이나 포근하다. 그녀가 우연히 들린 BTS노래에서 희망의 서곡을 발견했듯이 상처 입은 영혼들이 김송연 작가와 BTS와 융이 번갈아 가면 내미는 위로에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실마리를 발견할지 모른다.' Love yourself' 치유의 답은 여기에 있다. 자신에게로의 회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는 부처님 마지막 가르침이 함께 떠올라 나에게도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자유를 깨달은 자가 끝내 가고자 하는 곳은 자비의 바다인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선택했다. 이제는 나의 힘을 모두를 살리는 곳에 쓰기로.

흐릿했던 세상이 보다 선명해졌고 모든 사람이 있는 그대로 고유하고 소중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존재에 대한 너그러움이 나를 감쌌다. 편안한 숨으로 존재하며 세상과 더 조화로운 나

처음으로 꿈이 생긴 것이었다. 그것은 내 안에 막연히 품고 있던 오래된 소망이었다.
나를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하고 싶다는 바람.
그렇게 모든 생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껴안고 싶다는 바람.

 


치유의 노래가 우연히 그녀를 찾아온 것일까,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기에 이제는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녀의 무의식이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 것일까. 우연히 들려온 멜로디에 '자신을 사랑하세요, 자신의 길을 걸어가세요"라는 가사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들었어도 돌파구로 삼는 사람이 있고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더 절박했기에 더 잘 들렸을 터이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치유는 BTS를 도약 삼아 그녀가 자신을 향한 사랑에  '목숨을 건 비약'을 했기에 이루어 낸 성과다. 이 책은 온전히 사랑에 몸을 맡긴 사람이 일궈낸 성과물이고 그에 대한 보상이며 그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깨달은 자에게 펼쳐진 일상은 어제와 다름이 없건만 모든 것이 다 바뀐다. 부엌에서 딸과 함께 차 안에서 남편과 함께 BTS노래를 듣고 부르고 춤추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 연금술 같은 진리를 현실에서 증명해 보인 그녀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이제 'BTS라는 인공호흡기'를 떼어 버린다고 했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말하는 일곱 개의 별들이 궁금해졌다. 사랑할 만한 대상인가 그들을 탐색해가기 시작했다. 나는 Burn The Stage 유튜브를 정주행하고 있다. 그들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여느 영화 한 편 못지않은 울림으로 내게 다가온다. 덕질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그 도약이 사랑으로 결실을 맺을지 아닐지 모르지만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새 책에 설레고 뜻밖의 선율에 귀가 모일 때 나는 그것만으로도 제법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다락방의 유일한 여중생 두 명도 방탄의 골수팬이다. 지금껏 앨범이 나올 때마다 심하게 흥분하며 설레어하던 그들을 그 나이엔 그려려니 했는데 내일은 정국이가 어떻고 남준이가 어떻더라 하고 아는 체를 좀 해볼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지민이가 좋던데 애들은 누구의 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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