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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y 27. 2021

조선왕들을 ‘톡’ 하게 하다… 웹툰작가 무적핑크 변지민

<조선왕조실톡> 출간 변지민 작가 인터뷰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초, 중,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누구나 한번쯤 주문처럼 외워봤을 조선의 왕 이름 첫머리 글자들. 잠에서 깨어 달달 욀 수 있을 만큼 친숙하지만, 그들을 우리처럼 밥 먹고, 잠자고, 희노애락을 가진 사람으로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분명 역사도 사람의 기록인데 말이다.

이런 우리에게 그 시절 왕들에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 넣어 ‘톡’하게 한 <조선왕조실톡>이라는 책이 나타났다. 작년 12월부터 포털 사이트에 연재한 동명 웹툰이 좋은 반응을 얻어 책으로까지 출간된 것. 조선왕조 500년 왕실 역사를 새긴 <조선왕조실록>에 기반해 27명의 왕들이 에피소드 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왕의 캐릭터를 잡은 것이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예를 들면 태종은 쑥갓을 싫어하는 편식쟁이, 세조는 큰 옷 입기를 즐기는 허세꾼 캐릭터다. 엄연히 모두 ‘조선왕조실록’에 기반한 기록들이고 극적 재미를 위해 과장된 부분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의 분명히 금을 그어 혼동을 피했다. 유쾌하고 발랄한 요즘 세대 통신 언어가 가감 없이 등장해 카카오톡 대화라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 과거 역사를 현재에 그대로 소환해 온 느낌이다.

인터뷰 장소에 팔찌, 시계, 매니큐어, 반지 등의 액세서리에 분홍색으로 포인트를 준 모습으로 나타난 미모의 작가. 그녀는 서울대학교 디자인과 졸업을 자의 반 타의 반 유예하고 있는 무적핑크라는 닉네임의 변지민이다. 올해로 웹툰작가 경력 7년차. 한 가지에 빠지면 한없이 빠져버리는 ‘덕후’란다. 세일러문, 전대물, 야구를 좋아하는 그녀와 ‘취향’에 관한 그리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세일러문 ‘덕후’ 웹툰작가가 되다

Q <조선왕조실톡>이 역사 부문 1위던데요. 이렇게 열띤 반응을 예상 하셨나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분이 정말 좋아요. 웹툰 단행본은 보통 기존 독자들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내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잘 나가는 편이 아니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준비할 때 기존 연재 내용에 빵빵한 콘텐츠를 집어 넣어야겠다는 욕심과 부담감이 있었어요. 웹툰을 책으로 냈을 때 단순히 컴퓨터 화면을 컬러프린트 한 수준이 아니라,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는 돈 주고 살만한 책이 되도록 각 잡고 죽어라 작업을 했죠.





Q 초등학교 때부터 ‘세일러문’을 좋아하셨다고요. 아직도 세일러문의 팬인가요?



물론이죠. 원래 만화 마니아들은 보통 남들 안 보는 작품을 즐기지만 저는 그저 남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메이저 취향이에요. 돈을 벌고 나서 월급 받으면 세일러 문 요술봉, 변신 펜, 브로치 등을 하나씩 지르고 있지요.



Q 무적핑크라는 닉네임은 무슨 뜻인가요?



제가 ‘세일러문’도 좋아하지만, ‘무적 파워레인저’ 같은 변신로봇이 등장하는 전대물을 좋아해요. ‘무적 파워레인저’의 여성캐릭터가 입는 의상이 보통 노랑, 분홍색인데, 거기서 따와서 무적핑크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Q 야구도 좋아한다고요?



LG 트윈스 팬인데 이번 시즌 10팀 중 9위로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팬질을 강제적으로 못 하고 있어요. 그나마 아래에 올해 창단한 KT라는 신생팀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작업이나 하라는 계시인가 봐요. 야구만 생각하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요.



Q 애니메이션에, 야구에, 역사까지…. 작가님 팬 중에도 소위 ‘덕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웹툰이 올라오면 역사 덕후들이 달려들어서 이번 주제에 대해 위키 백과에서는 뭐라고 설명하는지 쫙 긁어서 붙여놓고, 베스트 댓글에 오르는 걸 즐기곤 하나 봐요. 가르치길 좋아한다고 해서 저는 ‘훈장님’이라고 불러요.



Q 독자들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방학숙제로 <조선왕조실톡> 읽고 내용 요약해 오는 것을 숙제로 내 준 학교도 있었대요. 그 학교 중딩이 보낸 “작가님, 전체 70화나 되는 걸 요약 하느라 팔 빠졌어요. 그 대신에 국사 점수 96점 받았어요~”라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아요. 저희 어머니가 근속 30년 교육 공무원으로 계속 교육 현장에 계셨기 때문에 이른바 선생님들 현장에서 힘들어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 생각해요.



Q 학창시절에 역사를 좋아하던 학생이었을 것 같은데요.



책보다는 드라마로 역사를 배웠달까요? 일부러 사극만 본 건 아닌데, 보고 나니 사극인 경우가 많았어요.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도 사실과는 전혀 다른 판타지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저는 그 드라마를 DVD를 살 정도로 좋아했거든요. 옛날 이야기를 다뤘지만 요즘 사람들이 봐도 전혀 문제없을 정도로 재해석한 그런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들에 저는 무조건 반해요. 요즘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장태유 PD님이 연출하신 <바람의 화원>, <뿌리 깊은 나무>나 <정도전> 같은 드라마도 재밌게 봤어요.



Q 역사물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최근에는 드라마 ‘정도전’의 정도전이 기억에 남아요. 남들은 인정을 안 하지만 귀엽더라고요. 뭔가 열심히 해놨는데 막바지에 비참하게 죽는 실패한 영웅들을 좋아해요. 소현세자, 광해군, 문종 같은….




새벽 2시 정체 모를 행동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Q 처음 <조선왕조실톡> 그렸던 날, 기억나세요?

2013년 ‘경운기를 탄 왕자님’이라는 웹툰을 연재하던 때였어요. 한 화에서 ‘채소(야채)’라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표현으로 ‘채소’가 맞는 지 ‘야채’가 맞는 지를 확인하려다가, 고서인 <조선왕조실록>을 확인해 보게 됐어요. 운 좋게도 2007년에 이미 디지털화 작업이 끝난 상태라 검색하기도 편했고요. 세종이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는지 세종왕조실록에 ‘야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소채(채소)’는 농부가 정성 들여 임의로 키운 것. ‘야채’는 들에서 자연적으로 자라 백성이 굶어 죽을 것 같을 때 뜯어 먹는 게 야채였다고 해요.

그 계기로 실록에 나온 얘기들을 보게 됐는데 재미있는 얘기가 많았어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세종대왕이 그의 할머니께 채소를 바쳤는데, 그 채소 상태가 안 좋았던 거예요. 신하들을 불러서 “우리 할머니한테 네가 이런 걸 먹여?”하고 화를 낸 기록도 있어요. 좀 의외였어요. 세종대왕 하면 인자한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데 배추 때문에 신하들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요. 세종 아버지인 태종이 신하들에게 “세종한테는 채소를 먹이지 말라. 그 애는 고기만 먹는다.” 이렇게 말한 내용도 있었고요. 재미있는 내용들에 탄력 받아서 ‘조선왕조실톡’ 초기버전인 ‘로열 패밀리’란 제목으로 세 컷 만화를 하나 그려봤어요. 그리고 나서 한동안 <조선왕조실록>은 기억의 저편으로 가 있게 돼요. 원래 본격적인 작품으로 그릴 생각은 없었거든요.

Q 그럼 본격적으로 ‘조선왕조실톡’이 웹툰 만화가 된 건 언제였나요?

작년 여름 졸업 전시 준비로 연재도 쉬던 기간에 편하게 누워서 드라마 ‘정도전’을 보던 중에, 문득 기억의 저편에서 “태종도 귀여운 짓을 많이 했는데”, “세종도 귀여웠는데” 같은 기억이 스물스물 떠올랐어요. ‘짤방’이나 만들어 볼까 하다가 그때 한창 유행이었던 카톡 캡처 화면으로 뭔가를 만들어 봐도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의 한 일화를 카톡 캡처 화면으로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한 컷을 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ㅋㅋㅋㅋ”하는 덧글들이 실시간으로 쫙 달리고 마구 펌질 되기 시작했어요. 그때 누군가가 댓글로 “이거 연재해 주시면 안 돼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가 새벽 2시였는데, 새벽 2시면 정체 모를 행동력이 생기잖아요. 그 즉시 ‘조선왕조실톡’ 페이스북 페이지를 파서 매일 연재를 시작했죠. 연재 닷새 되던 날 포털 사이트에서도 연재해달라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친정이 네이버라 네이버로 갔지요.

Q <조선왕조실록>은 500년의 기록으로 시기적으로나 등장인물 수에서나 규모가 워낙 방대한데요. 이걸 체계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계획도 필요했을 것 같아요.

웹툰으로 ‘조선왕조실톡’을 연재하는 동안 스물일곱 명 왕 한명 한명에 캐릭터를 붙이겠다는 단기 목표를 세웠어요. 독자들이 일본 걸그룹 AKB48처럼 스물일곱 명 조선왕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으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일거란 생각을 했죠. 책에서 순서도 ‘건국 패밀리’, ‘성군패밀리’, ‘폭군 패밀리’처럼 주제별로 묶어서 매 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가족 이미지를 배치했어요.

Q 스물일곱 명이나 되는 왕마다 특징을 발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캐릭터 잡기 어려웠던 왕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안 유명한 왕들 경종, 예종, 명종이요. 경종 같은 경우는 드라마에 조차 나온 적이 없거든요.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인데 장희빈이 사약 마실 때 하도 화나서 아들의 주요 부위를 따버렸다는 설도 있어요. 엄마가 사약 먹는 걸 본 왕치고 잘 된 왕이 없잖아요. 그래서 비애를 가진 캐릭터로 잡았죠.

예종은 세조 아들인데, 12살에 애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어서 ‘11살 남편’이란 제목을 붙였어요. 명종은 아직 <조선왕조실톡>에서 한 번도 안 다룬 왕인데 엄마였던 문정왕후가 워낙 세니까 마마보이였던 것 같아요. 그 아래에서 조용히 살았더라고요. 명종은 애가 없어서 조카 중에서 애를 데리고 왔는데 그가 선조였던 거예요. 덕분에 임진왜란이 붐 터진거죠.

인기 없는 왕일수록 책이 없어서 찾기 어렵기도 한데 어려운 사람을 쉽게 풀어내는 법은 공부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Q 기존 ‘조선왕조실톡’ 웹툰 내용에 이한 작가님의 해설이 덧붙여져 책에서는 재미와 깊이 둘 모두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한 작가님은 책 나오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사실 이한 작가님이 외국에 계시며 작업을 해서 같이 책을 냈지만 얼굴 한 번 못 본 사이에요. 책 나오고 일주일쯤 있다가 “제가 이한이랍니다”라고 시작하는 메일을 받았어요. 그래서 “글 잘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손만 잡았는데 애가 나온 것처럼 얼굴도 안 뵀는데 책이 나왔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라고 답장을 보냈어요.


“하나의 세계관 안에 움직이는 캐릭터… 가상현실과 웹툰 작업은 닮아”

Q 얼마 전 TV 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해 미모의 서울대생 웹툰작가로 이슈가 됐는데요. 본인 인기에 외모나, 학벌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오히려 학벌이나 얼굴을 공개하기 전에 더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웹툰작가는 학벌이나 얼굴로 하는 직업이 아니니까요.

Q 가상현실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가상현실과 웹툰 작업 간에 관련성이 있을까요?

웹툰을 비롯한 모든 작업이 자기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인물을 하나 만들어 그가 겪는 사건들을 풀어내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가상현실 작업도 세계관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것을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단 게 좋은 것 같아요. 나중에 SF작업을 하게 되면 경복궁 하나 만들어 놓고, 앞에 이순신 장군을 NPC로 앉혀 놓고 거북선을 설명해 준다던가, 연산군의 방을 쳐들어가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세계관을 만들고 그걸 내가 진짜로 엿볼 수 있다는 그 맥락에서 계속 가상현실에 관심 갖게 돼요.

고3때 다이어리에 진짜 헛소리를 많이 쓰잖아요. 그 표지에 “일국의 여왕이 되자”고 써놨더라고요. 그래서 주인공 좋아하고, 가상현실로 나만의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는 것 아닐까요?

Q 웹툰 내용이 TV 프로그램 ‘웹툰히어로 툰드라쇼-조선왕조실톡’으로도 방송되고 있는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조선왕조실톡>은 제 웹툰 내용을 드라마로 각색한 생각보다 진지한 사극이에요. 대사는 ‘톡’ 형식으로 표시했어요. 저는 거기서 카메오로 글 쓰는 사관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일단은 현재 열심히 하고 있는 작품이 있으니. 얘를 열심히 하다 보면 운명이 저를 어디론가 데려가겠죠. 공부 욕심은 있어요. 대학원에 간다면 가상현실 같은 테크니컬한 쪽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작가가 추천하는 다섯 권의 책

1. <왕과 아들>(강문식, 한명기, 신병주 지음, 책과 함께 펴냄, 2013년 4월)
조선시대 문제적 왕과 아들의 관계를 그린 책이라 흥미롭게 봤어요.

2. <조선백성실록>(정명섭 지음, 북로드 펴냄, 2013년 8월)
    <조선직업실록>(정명섭 지음, 북로드 펴냄, 2014년 4월)
정명섭 작가님 책 중에 옛날 사람들 직업이나 생활사에 관해 참고하기 좋은 내용들이 많아요.

3. <대화의 신>(래리 킹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5년 1월)
제 책은 어차피 다 대화니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쳐야 하지 할 때, 래리 킹이 주는 대화에 관한 조언이 작품 쓸 때도 유용했어요.

4. <십이국기 시리즈>(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야마다 아키히로 그림, 엘릭시르 펴냄)
해리포터에 이은 제 두 번째 인생 책이 아닐까 싶어요. 그만의 법제가 있고, 향, 리, 촌, 정해져 있고, 도량형도 있어서 그만의 세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새 버전 나올 때마다 사다보니 똑같은 책이 여러 권이 있어요.

5.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2009년 12월)
어린 시절의 감각적 경험이 커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다룬 책인데, 이 내용이 저의 ‘덕후적’ 성향을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조광조가 좋아하는 책이 아이들이 보는 책 <소학>이라고 하잖아요. “<소학>처럼만 살면 공자의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한 조광조 말처럼 이 책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물론 그러다가 조광조는 최후에 사약을 마셨지만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 북DB 2015.9.18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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