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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이석원 "글쓰는 이유, 남은 삶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저자 이석원 인터뷰



통상 인터뷰에서 기자와 인터뷰이 간에 발생하는 정보량의 비대칭은 어느 정도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석원과의 인터뷰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극단적이라 느껴졌다. 그의 문장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솔직하며, 세밀한 감각으로 포착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글을 읽은 기자는 그를 모두 알게 된 느낌이었지만, 상대는 기자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비대칭성이 만들어낸 기분을 누르려 애쓰며 마포구에 있는 그책출판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석원은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나타났다. 앨범 마지막 준비 중이라고 했다.

모던록밴드 언니네 이발관 리더이자, 글쟁이로서 이석원은 결코 그의 팬들에게 ‘보통의 존재’가 아니었다. 절망적이고 허무한 삶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 그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었던<실내인간> .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나왔다. 그가 보낸 시간을 언어로 걸러낸 여러 편의 글들이 실렸지만,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여자는 남자가 좋아하는 홑꺼풀도, 갸름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소개팅 장소에서 낯선 이와 마주 보는 걸 불편해하는 남자를 위해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 센스를 가졌고, 남자는 조금씩 그런 여자에게 맘을 빼앗긴다. 이렇게 시작된 우연한 인연, 사랑의 설렘, 안타까운 엇갈림, 궁금한 결말까지. 책장을 넘기며 독자들 역시 그의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인터뷰 장소에서 이석원에게 책 속에서 그가 사랑했던 여성 이름인 김정희를 거론했을 때 관계에 대한 질문은 정중히 사절하겠다고 말했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보호, 나아가 행간과 후일담을 상상할 여지는 독자들의 권리라는 것. 여기에 대한 보상심리일까 그 외의 질문에 대해선 정성껏 답해주었다. 그리하여 인터뷰 대화는 저자 이석원과 그의 주변을 아슬아슬 오고 가며 진행됐다. 해가 진 초저녁에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 한 토막을 이 자리에 옮겨 본다.



이석원이 쓰고 싶은 대로 쓴 잡문의 덩어리


Q 작가님 블로그에 올린 출간 인사를 읽어봤어요. ‘언제나 글을 쓰고 싶었던 저는 매번 보통의 존재를 쓸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밝히셨어요. 하지만 이번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쓸 때<보통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없었어요. 전작이 좋으면, 독자로서는 그것과 비슷한 새 작품이 나오길 바라는 게 자연스러운 습성이겠죠. 하지만 저는 이전 결과물이 아무리 좋았어도 그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편이라서요. <보통의 존재>를 의식하기보단 그저 또 다른 새로운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Q <보통의 존재>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이었잖아요. 그런 책을 다시 쓰고 싶단 욕심도 한번쯤 들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글과 사람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가 내게서 또 한 권의 <보통의 존재>를 원한다면 나는 그 책에 담긴 세월만큼을 또다시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 연후에 책이 나와도 나오는 거지 제 의지나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Q 사랑 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이야기가 극적이에요. 전부 실화인가요?

제가 이 책을 산문이라 칭한 데는 이유가 있겠죠. 그렇지만 실화다 아니다, 그것은 맞고, 이것은 틀렸다, 는 식의 답변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가졌던 느낌을 지켜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짜였으면 좋겠다”, “진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각각 느낌이나 바람마저도요. 거기에 대고 제가 일일이 답변해서 독자들의 감상을 해치는 것은 원치 않고, 온당치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Q 원고를 다 쓰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나요? 이야기 진행이 빨라서 원고도 금방 썼을 것 같은느낌적 느낌입니다.

초고는 순식간에 썼고, 다듬는 과정은 길었던 것 같아요. 거의 일년 반 정도. 저는 계속 다듬어야 하는 편이라서요. 

Q 원래 제목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었나요?

아니요. 처음 가제는 ‘수연산방’이었어요. 

Q 책에선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뭐해요?”예요. 작가님께 “뭐해요”가 항상 기다리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인 건가요?

사람들이 책 읽다 보면 제목에 대해 “이거였구나!” 느낌이 착 온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어요. 책에선 “뭐해요?”지만 그걸로 특정하고 싶진 않아요. 귀에 걸리는 달콤한 말뿐만 아니라 쓴소리나 아픈 얘기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일 수 있죠. 

Q ‘오후의 홍차’ 편에서 글을 쓸 땐 사람을 전혀 만나지 않고, 작업을 쉴 때 사람을 몰아 만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럼 지금도 그런 시기를 보내고 계신가요?

매일 친구들을 바꿔가면서 찻집에 가는, 그런 때가 저에게도 분명히 있었어요. 저도 그 대목을 읽으며 느낀 건데, “그 친구들은 지금은 다 어디 있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시집을 갔거나, 외국에 나갔거나, 아니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어요. 

Q ‘불운 올림픽’이란 글은 나머지 이야기와 조금 성격이 다른데요. 우화 같기도 하고요.

2부에 실린 ‘불운 올림픽’이란 글은 애초 이 책의 단초가 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대로, 장편소설을 발표한 이후 글을 아예 쓰지 못하다가, 로제 그르니에라는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저 나름으로는 극적으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턴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자 라는 생각을 하던 무렵, 어느 날 갑자기 토하듯 몇 시간 만에 써진 글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시금 가능하게 된 저의 글쓰기의 시작이었고, 이번 책의 내용이 바로 그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이 글은 어떤 식으로든 들어갈 수밖엔 없었습니다.


이석원의 글은 다 실화? "독자가 가진 느낌 지켜주고 싶어"


Q 전작 <실내인간> 쓸 때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쳤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집필 과정은 어땠나요?

<실내인간> 쓸 땐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거의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요. 4년 동안 항상 턱을 괴고 글을 써서 턱관절이 어그러지는 바람에 지금도 입이 잘 안 벌어져요. 시력도 안 좋아졌고요. 그때 경험 때문에 몸을 돌보면서 쓰지 않으면 큰일 난단 걸 알게 됐어요. 이번엔 자세도 바로 하고, 안경도 쓰려 노력하며 글을 썼어요.


Q 그럼 또 소설 쓸 계획은 없으세요?

책에도 나오지만, 소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나 애정이 없이 소설을 썼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시 쓸 확률은 높지 않을 것 같습니다. 

Q 책에서 " 목소리와 말투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글만 보고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앨리샤 키스 같은 가수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때만큼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 기분에 취할 때가 있잖아요. 책을 읽다가도 글이 너무 좋으면 그런 경험을 느낄 때가 있어요. 

Q 눈꺼풀이 한 겹인 여자, 단발머리, 각지지 않은 얼굴…… 이성에 대한 취향이 굉장히 확실한 편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부분이 확실한 타입이긴 해요. 내가 만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절대 만날 수 없다는 건 있죠. 

Q 그런데 이번 책에서 상대분은 이상형이랑 딱 맞아 떨어지는 타입은 아니었잖아요.

앞에서 여자 외모를 강조한 것은 결국 그게 다 사랑 앞에서 소용없다는 얘길 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난 호오가 확실한 사람이었는데 사랑하게 되면 다 필요 없어지니까. 

Q 발레용 팬츠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걸 계속 의식하고 있다가, 종업원이 ‘발렛파킹’을 일컬어 “발레 하셨나요?”라고 묻자 소스라치게 당황한 일화처럼 피식 웃음 짓게 하는 에피소드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데요.

책을 읽는 분들이 즐겁고 릴렉스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장치들을 곳곳에 넣었어요. 이 역시 <보통의 존재>와는 다르게 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Q 이번 책에 실린 ‘결정되지 않는 삶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적어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느낌을 위해선 하다못해 살이라도 몇 킬로 빼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쓰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에서 변화를 위해 작가님께서 노력 중인 게 있나요?

제가 이렇게 글을 열심히 쓰는 이유도 내 남은 삶이 지금보다 약간이라도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에요. 생각도 자주 바뀌고 뭔가 만들 때도 수정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 제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수정하면서 어떻게든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고, 머물러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더 잘나가고 싶다는 차원이기보다는 이대로 계속 살고 싶진 않아요.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 싶어요. 

Q 계속 바꾸고 수정하는 작업이 피곤할 땐 없으세요?

오히려 그걸 안 하게 되면 미치니까 저에게 그건 피곤한 일이 아니에요. 저는 운전을 할 때 8차선, 16차선 대로에서도 양쪽 길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앞차 뒤차는 무엇인지가 다 관찰의 대상이에요. 에어컨도 껐다 켰다 하구요. 안 그런 사람이 보면 저런 사람은 피곤해서 어떻게 살까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면 힘든 경우죠. 

Q 최초의 독자랄 수 있는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내고 기분이 어떠셨나요?

저는 제가 만든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계속 끊임없이 만져야 해요. ‘이 정도면 죽인다’, ‘당연히 반응이 올 거야’라고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반응이 올 때까지 너무 초조해요. 그 순간엔 거의 미쳐 있기 때문에 사고도 몇 번 났었어요. 그래서 초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사형 판결을 기다리는 마음이에요. 대신 책이 나온 다음에는 수많은 사람한테 모니터를 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요. 


“내가 던지는 질문들은 ‘당신들 좋다’라는 표시”


Q 작가님께 “나랑 비슷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팬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 얘길 들으면 기분이 어떠세요?

제가 너무 노멀해서 그런 얘길 많이 듣나봐요. 너무 노멀하니까 저랑 비슷한 사람이 많은 거예요. 제가 특이하다면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적어야 하잖아요.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건 공감과 소통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작가님께 ‘보통’이란 것도 좋은 건가요?

보통이요? 좋죠. 저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어서 행복할 때가 많은데요. 제가 생각하는 ‘보통’은 ‘특별’의 반대말은 아닌 것 같아요. 잘나가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이라고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들도 공포를 갖고 있고, 빈곤한 부분이 있고, 결국 똑같은 사람이란 거죠. 보편적인 감정을 다 가진 사람이란 의미에서 ‘인간적인’에 가까운 표현이에요. 

Q <보통의 존재>에서 38세에 자신이 보통이란 걸 깨달으셨다고 했잖아요. 그때가 더 성숙해지는 지점이었던 건가요?

제가 미성숙한 면이 많아요. 책 속에서 제게 상담 자주 해주는 나리라는 친구에게도 평소에 핀잔을 가끔 들어요. 상담하는 내용이 몇 십 년 전과 지금이랑 똑같다고요. 내가 그냥 되게 평범한 놈이란 걸 깨달은 게 대단한 깨달음은 아니고, 남들도 대개 느끼는 것 아니었을까요. 어렸을 땐 대체로 자기가 특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시기들이 있잖아요. 언젠가 그게 깨지는 순간이 오는데, 저는 그게 약간 늦게 깨진 것 같고. 좀더 미련을 못 버렸던 것 같아요. 

Q 오히려 특별하다는 게 깨졌을 때 해방감을 느끼신 건가요?

여러 가지 감정이 있겠죠. 내려놓으니 편안해지는 것도 있고, 한편으로 약간 울적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남은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니 여러 가지 다층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Q 작가님 블로그 ‘글을 위한 글’에 글도 쓰시지만, 계속 방문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시잖아요. 그 밑에 여러 댓글들이 달리고요.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늘 궁금했어요.

저에게 질문은 애정의 표시예요. 저에게 그 블로그가 소중한 공간이고,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묻는 거예요. “나 당신들 좋다”라는 뜻으로요. 

Q 작가이자 뮤지션. 이렇게 성공한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계신데요. 삶에서 작가 이석원, 뮤지션 이석원의 비율을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성공한 뮤지션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음악은 내년에 마지막 정규 앨범이 발매를 앞두고 있는 터라, 두 일의 퍼센티지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일 같아요. 

Q 음악을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시는 건가요?

더 이상 정규앨범을 내지 않는 것일 뿐, 음악을 그만두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에 대한 결론을 저는 아직 내리지 못했습니다. 작가의 길이란 것도, 사람들이 받아들여 주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Q 작가님 팬들이 기다리는 새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새 앨범이 내년쯤에 나올 것 같은데, 6년째, 내년이면 7년째 만지는 거예요. 지금은 곡은 다 됐고, 녹음 직전이에요. 

Q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시면요?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요. 그래서 글을 쓰고, 작가로서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이미 다음 책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고, 그게 무사히 책으로 나올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계속 글을 쓰면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북DB 2015.10.22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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