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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우에노 치즈코"강남역 포스트잇,더 참지 않겠다는 분노"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저자 우에노 치즈코 인터뷰



 

'여성혐오' 이슈는 지난해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페미니즘이 싫어서 IS에 입대한 고등학생부터 시작해, 여기에 대해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고 응수한 칼럼이 큰 비난을 받았고, 인기 개그맨의 여성혐오 발언, 최근의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논란이 이어졌다.

세상에 없던 여성혐오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 현상들을 보고 발언할 수 있게 된 것일 테다. 촉발된 수많은 논쟁의 한가운데서 자주 인용되는 책이 있다. 바로 도쿄대 명예교수 우에노 치즈코가 쓴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작동하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시작과 끝을 투명하게 꿰뚫는다.

이 책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가 한국을 찾았다. 6월 2일 '도시적 감정의 양식 : 여성 혐오와 테러시대 도시의 불안, 수치, 헬조선'을 주제로 열린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국제학술대회에서 강연하기 위해서다. 강연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서울 성북동의 한 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북DB를 비롯해 여성신문, 연합뉴스, 한겨레 등의 기자들이 참석했고, 연세대학교 조한혜정 명예교수, 도시인문학연구소 이현재 교수도 동석했다. 여성문제뿐 아니라 노인문제, 역사문제로 확장된 이 합동 인터뷰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옮긴다.



"우연히 살아남았다... 우리는 강간문화의 생존자"



Q 일단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이슈인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관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요?



그 사건을 전해 듣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Q 그간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등의 저서를 통해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한국, 중국, 일본에 소개하셨습니다.



과거에는 '우먼 헤이팅'이라고 했습니다. '여성멸시'라고도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성을 자신을 소유물로 만듦으로써 남성끼리의 유대를 형성해 남성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남성답지 않은 남성을 배제하는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입니다.



'여성혐오(misogyny, 미소지니)'라는 용어는 이브 세지윅이라고 하는 미국의 퀴어 이론가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세지윅이 '여성혐오', '호모소셜', '호모포비아'라는 세 가지 용어를 만들어준 덕분에 가부장제를 원활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에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소개한 뒤로 이 단어가 일본 내에서도 크게 확산되었고, 한국어와 중국어로도 번역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그만큼 이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공통점은 한심한 것이라고 봅니다.



Q 그만큼 동아시아에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 책 내용 자체는 영국문학에 대한 분석이지만 등장하는 개념이 지금 현대 일본의 현상에도 맞아떨어집니다. 일본 젊은 독자들은 책을 읽고서 "이런 걸 처음 알았다", "굉장히 신선하다"라고 반응했어요. 하지만 "이건 옛 이야기기 때문에 현재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게 언제 적 이야기냐"라고 이야기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그때와 상황이 별반 바뀌지 않은 것이지요.



Q 일본 사회에서도 강남역 사건과 유사한 여성혐오 범죄가 일어난 적이 있나요? 이에 대해 일본 사회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강남역 사건이 일어났을 때 두 개의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카토 토모히로라는 청년이 일본 아키하바라에서 무차별 살인을 했는데, 살인 직전에 '여자친구만 있었다면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 사건과 이번 사건이 굉장히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그가 했던 '여자친구만 있었다면'이라는 말은 '여자를 한 명 내 것으로 만들기만 한다면', '내가 남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는 최근에 한 탤런트가 칼에 찔린 사건입니다. 팬을 자칭하는 남성이 "무시당했다", "죽여버리겠다"라고 하며 여성 탤런트를 찔러 그녀는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국 여성들이 범죄 현장에 찾아가 "죽임을 당한 것은 나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와 같은 메시지를 남긴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살아 있는 우리는 강간문화의 생존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성을 강간하는 듯한 언동이 넘치는 사회에서 살아남고, 우연히도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페미니스트 여성들에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건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앞으로 나와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기에 굉장히 의지가 됩니다. 더는 참지 않겠다는 분노의 표출이니까요.





"남성다움에 얽매인 남성문제, 스스로 해결해야"



Q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살해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남성들도 있었습니다. "여성혐오라는 문제제기 자체가 '남성혐오'"라는 식으로 반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자체가 저는 여성혐오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여성혐오라고 하면 "너희야말로 '남성혐오' 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라고 공격하는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여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두지 않고 "조용히 해", "너희들 입 다물고 있어"라고 강요하는 것이죠.



Q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선이 생겼습니다. 남성으로부터 이에 대한 반발도 거세어서 인터넷에서는 격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시선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물론 모든 남성이 폭력적인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치한, 성폭력, 가정폭력에 가담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은 확실합니다. 남자들이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남자들의 문제이므로 남자들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의 폭력이 아니라 남성들의 폭력이니까요. 남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여성을 규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여성운동은 여성이 자신을 스스로 구제하기 위해 시작한 것입니다. 남성들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을 텐데요. 그런 남성들의 문제는 남성들 스스로가 해결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주체는 남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남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시나요?



군대 징병제, 가족소외 문제, 그리고 또 남자가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제 등 '남성다움'에 얽매여 있는 것들이 남자의 문제 아닐까요?



Q 남자가 늙었을 때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요.



제가 케어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강자였던 남성도 약자가 되는 것이 고령화 사회입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 강자였을수록 노후에 힘들죠. 남성들은 약자가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성의 노후는 여성의 노후보다 비참합니다. 언젠간 강자의 위치에서 내려와야지만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요. 저는 그래서 반대로 초고령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예외 없이 약자가 되기 때문에요. 여성에 관한 연구와 케어에 관한 연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독신세대의 노후가 이렇다는 것을 보여줄 롤모델이 될 겁니다. 최근에는 혼자 집에서 어떻게 죽을지를 연구했어요. 그 결과물로 <혼자 오신 분의 최후>라는 책을 썼습니다. 1년 내에 한국어로도 번역될 겁니다.



Q 한국에도 결혼하지 않고 싱글의 삶을 택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싱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팁을 하나 주신다면?



싱글 분들이 기혼자보다 더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웃음)



Q 싱글로 산다면 더 행복할 텐데, 아무래도 경제력의 문제가 큰 것 같아요.



그렇죠. 특히 여성이 자신을 부양할 수 있는 직장을 얻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연금을 받지 않으면 노후에도 영향을 미치지요. 그럼에도 최근 고령자에 대한 조사에서 독거세대 쪽이 오히려 행복이 높았다고 합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일본 원전 노동자 떠올라"



Q 내일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뒤틀린 동맹(twisted alliance)'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시지요? 신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 간 공모로 여성혐오와 인종주의가 이용되는 방식에 대해 발표하신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내용을 조금 소개해주세요.



아베 정부가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경제를 강화하려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하는 행동을 합니다. 가족의 가치, 민족과 국가의 가치를 선호하는 것이죠. 그런데 결국 생각해보면 양쪽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민족주의로 구원받게 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의 가장 간단한 방법은 '혐한', '혐중' 같이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독도문제 같은 한일 갈등, 중-일 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문제, 북한 미사일 발사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저는 이게 마치 아베 응원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적이 만들어질수록 민족주의가 더 활성화될 뿐입니다. 정치가들이 하는 일의 이중성, 결국 왼손이 하는 일과 오른손이 하는 일이 다른 겁니다. 고이즈미도 그렇고 아베도 그랬습니다. 이들은 굉장히 위험한 정치가라고 생각합니다.



Q 남녀 모두에게 여성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여성혐오라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결국 내 안에 이미 깊이 탑재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지를 물어보면 남자들은 대부분 '내가 다루기 쉬운 여자','나보다 열등한 여자'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강자'나 '나보다 큰 여성'들에게는 작아집니다. 여성들은 나보다 크고, 의지가 되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성에게 끌린다고 얘기합니다. 결국 젠더관계 안에서 이런 비대칭적인 관계가 정립되어버린 것인데 이 관계를 바꾸는 건 사실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은 존중하는 것입니다. 젊은 남녀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존중하거나 사랑받는 관계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의 지배, 집착, 성욕, 이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여성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Q 최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파견 직원이 목숨을 잃어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혹시 이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떠오른 건 일본의 원전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토록 위험한 일을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받아 합니다.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임금이 높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임금 착취가 개입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굉장히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신상을 확인하지 않고 일을 시키기 때문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건강검진도 받지 않습니다. 현재 후쿠시마에서는 그런 사람 몇 천 명이 공사를 하고 있고요. 그중에 질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원전문제 처리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기에 그들이 자신의 병을 증명할 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들이 일본에서 얼마나 나올 것인지 굉장히 공포심이 듭니다.



Q <내셔널리즘과 젠더>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등을 통해 역사와 젠더 문제의 교차점인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기도 하셨습니다. 작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제가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대안으로 무엇을 내놓을 것인지가 문제이죠. 정부나 학계뿐 아니라 민간 레벨에서 정말 성실하게 신중하게 여기에 대해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일본 상황이 1991년(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해)보다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북DB 2016.6.10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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