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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 구원할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

<제3인류> 출간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터뷰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 그림밖에 모르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와 주변 이들은 그가 장차 화가가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학교 숙제로 써낸 ’벼룩의 모험’이라는 이야기 한편이 그의 인생 각도를 미세하게 바꿔놓는다. 결국, 이 아이는 과학기자라는 직업을 거쳐, 기술과 미래에 대한 무한의 상상력을 펼치는 세계적인 소설가가 된다. 그의 이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렇게 돌아보면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던 인생 여정이나 결국 그의 인생은 ’상상력’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위를 차지할 만큼 국내에서 각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이에 작가 또한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번 작품에도 한국인 고고학자 히파티아 김이 등장해 활약을 펼친다. <개미> <아버지들의 아버지> <신> <파라다이스> 등으로 거대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던 작가는 최근 <제3인류> 5․6권을 발표하면서 또 한편의 거대서사의 막을 내렸다.

<제3인류>는 현생 이전과 현생 이후의 인류를 시간적 배경으로, 세계 각국의 도시를 장소적 배경으로 넘나들며 전개된다. 그 이야기는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마치 실시간 뉴스 속보의 형식과 닮아있다. 지구를 제 입맛대로 파괴하는 인간, 인간이 창조한 제2의 존재, 외부 행성과 충돌 위험, 지진과 쓰나미의 위협, 자본주의자․종교 근본주의자․기계주의자․여성주의자 등 다양한 진영 간의 갈등 등. 가히 오늘날 인류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문제가 이 소설 한 편에 우화처럼 녹아들어 있다.

<제3인류> 5․6권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베르나르베르베르와 서울 종로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시차 적응 탓일까, 바쁜 일정 탓일까? 그는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진지한 태도로, 때론 유머를 섞어가며 인터뷰에 응했다.



"더 작고, 여성적이고, 잘 연대하는 종들이 살아남았다."



Q 현생 인류의 이전, 이후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스케일이 큰 소설인데요. 이번에 완간이 되었죠. 하지만 아직 1권에도 손대지 못한 독자들이 있을 수 있을테니 이런 독자들을 위해 <제3인류>를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10배 큰 거인이 제1인류였고, 그보다 10분의 1 더 작은 크기의 인류가 제2인류인데 그것이 지금의 우리입니다. 이제 우리 인류가 우리보다 10분의 1 더 작은 제3인류를 창조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착안한 스토리였어요. 제1인류와 제3인류 사이에 있는 중간적 존재가 바로 현재 우리 인류이고요. 인간이라는 종이 점점 더 빠른 진화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현재 우리는 인간이 계속 생존할지 멸종할지의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제3인류>에서 작은 것, 여성적인 것을 진화의 방향으로 보셨지요. 특별히 이러한 속성을 진화한 것이라고 규정한 이유가 있었나요?



지금까지 더 작고, 여성적이고, 잘 연대하는 종은 살아남고 그 반대 특징을 가진 것은 멸종해 왔습니다. 개미가 그러한 대표적인 예일 텐데요. 일반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시련이나 어려움에 잘 견디고, 수명도 더 길고, 상황 변화에 잘 적응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 연대하는 생물은 개체 하나하나로 놓고 봤을 때는 약하지만 뭉치면 강하고요. 크기가 작으면 소비가 적으니 지구를 덜 파괴하므로 더 잘 진화할 것이라 보게 됐습니다.



Q 아무래도 그동안 약자의 것이라고 간주했던 속성들이 진화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약간의 희망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여성의 지위나 페미니즘에 대해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악화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권이 세력을 떨치면서 학교에 취학하는 여학생들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슬람 세계는 모든 여성을 노예화하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말랄라 유사프자이라는 파키스탄 여성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지위는 현재 굉장히 어려운 상태에 처해 있는데, 한때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는 순환을 겪는 상황입니다. 저는 여성의 지위가 악화하는 것은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든 유전자공학이든 그 자체로서는 도구일 뿐"



Q <제3인류>에도 인공지능이나 인간이 창조한 생명체에 대한 얘기가 등장하지요. 미래를 소재로 다루는 소설가의 입장에서, 향후 인공지능이나 유전자공학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시나요?



중요한 질문을 하셨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든 유전자 공학이든 그 자체로서는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망치라는 같은 도구를 사용할 때를 생각해 볼까요? 망치는 집 짓는 생산적인 용도로 쓸 수도 있지만, 사람 머리를 치는 데 사용할 수 있듯이 다르게 사용될 수 있죠. 망치 자체에는 책임이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세계라고 보는 겁니다.



Q <제3인류>는 인간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 된 작품인데요. 소설과는 달리 현실에서 인간이 미래를 바꾸는데 얼마나 관여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현재로서는 인류가 미래 변화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간이 큰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가 삼림입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에서 그렇습니다. 인간이 파푸아뉴기니나 아마존 아프리카 같은 지역의 삼림을 파괴하다 보니, 대기가 파괴되면서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요. 우리는 점점 더 기온이 올라가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지구는 지금 열에 시달리고 있는 거고요.



Q 작품 속에서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이 함께 혼재하는데요. 어떻게 이질적인 두 세계가 양립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일단 종교와 영적인 분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측면은 과학 기술과 연계가 될 수 있지만, 종교는 과학 기술과 연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요즘의 종교는 사실상 정치적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을 자기 밑으로 굴복하게 하도록 쓰이는 게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것은 이것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개인의 자유를 추구합니다.



Q 한 작품 안에서 역사와 미래를 아울러서 다루시는데요. 작품 창작에 큰 영향을 준 큰 사상가나, 예술작품이 있나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요. 저는 그 영화에서 굉장히 강력한 영적 세계를 느꼈습니다. 그 영화를 통해 인간이 진화하는데 발목을 잡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구도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



Q 인류가 밝은 미래로 가기 위해 현재 결여했거나 특별히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영적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나 지구에 대한 의식이 더 강력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생태학적 관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것인데요. 지구도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기존하는 종교 중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나요?



저는 사실 종교의 집단적인 성향에 대해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또 성직자가 그 안에 있고 그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투로 말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합니다. 저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은 받았으니 종교 중에 관심이 가는 것이 불교였습니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웠기 때문이죠.



저는 불교에서 ’현재를 살라’,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놓아라’라는 세 가지 메시지를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Q 지금까지 소설 창작뿐만 아니라, 연극․영화․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해 오셨는데요. 현재 집필 중인 작품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 현재 집필 중인 작품은 고양이에 대한 소설입니다. 작품 집필은 완료했지만,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안 된 작품이 하나 있는데 <여섯 번째 수면(가제)>이라는 작품이고, 꿈과 수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한국에 번역출판은 되지 않았지만, 곧 한국 독자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북DB 2016.5.27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8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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