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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권비영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이 더 많은 게 위안부"

<몽화> 출간 권비영 인터뷰



50대 중반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덕혜옹주>가 백만 부 이상 판매되며 돌풍을 일으킨 소설가 권비영이 세 번째 장편으로 돌아왔다. 신작 <몽화>의 배경은 일본 제국주의가 마지막 야욕을 불태우던 1940년, 꿈과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세 명의 소녀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다. 혼란스러운 근현대를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과 비련을 포착하는 따뜻한 시선은 <덕혜옹주> 때와 마찬가지로 흥미진진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몽화>는 최근 한일 양국 간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을 다루어서 화제에 올랐다. 그녀는 역사적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 이전에 잊혀져가는 상처를 어루만지고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신간 출간 차 작가를 만났다. 꾸밈없는 소탈하고 진솔한 태도에서 그녀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 권비영이 말하는 신작 <몽화> 그리고 역사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보자.



"일본 폐탄광, 바람 불어 떨어진 꽃 한 송이가 그녀들의 피처럼 느껴졌다"



Q 처음 작가님 작품을 읽었던 날이 생각나요.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서점에 들어가서 <덕혜옹주>를 펼쳤는데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이 많아요. 문장이 짧고, 이야기 호흡이 빨라서 쉽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Q 아무래도 남자 독자와 여자 독자의 반응이 많이 갈릴 것 같아요.



<몽화>는 모르겠지만 <덕혜옹주>는 반응이 극명하게 갈려요. 여자들은 그 소설 읽으면서 너무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그런 걸 보고 뭘 슬프냐"고 해요. 어떤 분이 소설 속 탈출하는 장면에 너무 리얼리티가 없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길래 "제가 남자가 아니라 탈출을 안 해봐서 그러니 감안해서 봐주십시오."했더니 막 웃더라고요.



Q <몽화> 에필로그에서 작품을 처음 쓴 계기가 일본 폐 탄광촌에서 발견한 꽃 때문이었다고 쓰셨던데요.



<덕혜옹주>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시대에 일어난 강제징용, 위안부에 관련된 자료도 많이 모으게 됐어요. 그러다가 2년 전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내 나름대로 풀어보려고 일본 폐탄광에 가게 됐어요. 복사꽃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바람이 부니까 꽃송이가 툭 떨어지더라고요. 그때 갑자기 가슴에 뭉클한 게 오면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이 그녀들의 발자국처럼 느껴지고 그녀들이 느꼈던 피처럼 느껴졌어요. 이걸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까지 기록물은 많이 있었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로 표현되어 국민에게 널리 읽힌 적은 없었으니 소설로 써봐야겠단 생각을 본격적으로 한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위안부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선 그 사건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끔찍했는지 묘사하는 데 치중했죠. 그에 반해 <몽화>는 감정적인 면을 주목했더라고요.



일부러 서울까지 와서 수요집회에 몇 번 참석하긴 했지만, 직접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거리를 두고 냉정한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미 적나라한 사실은 다들 알고 있잖아요. 정작 피해자들의 내면의 고통은 알지 못하죠. 위안부를 겪고 힘들 게 고향에 돌아왔지만 결국 버려진 사람들도 있었고, 아이를 못 낳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이 더 많은 게 위안부 문제인 것 같아요. 너무 적나라한 것이 진실을 흐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빗겨서 보는 게 정확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Q 주인공이 영실, 정인, 은화 세 명인데, 각 인물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은화는 독립 운동하는 아버지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져 기생이 된 인물이고, 정인은 일제 앞잡이 아버지 덕분에 온갖 호사를 다 누리지만 정신적으론 피폐해져 있고 피해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죠. 마지막으로 영실은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어떻게 보면 아주 특징이 없는 인물이에요.



처음 원고 나왔을 때 ’영실이가 너무 밋밋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당시에 영실이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독립운동을 하고 목소리를 높인 위인들을 조망했다면 더 큰 주목을 끌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숨어서 살아야 했던 보통 사람들도 조명하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영실이를 더 밋밋하게 끌고 간 것 같아요.



Q 작가님 작품에선 주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죠. <몽화>에서도 각기 상황은 다르지만 여성들끼리의 자매애가 잘 드러났지요.



지금까지 남자 얘긴 많이 했잖아요. 요새는 옛날에 큰 소리 치던 남자들이 어깨가 움츠러들어서 딱하다고도 하지만, 인류사에서는 여성이 주로 피해를 보는 쪽이었어요. 우리 엄마나 할머니 세대는 마치 희생의 아이콘 같은 것이었고, 유럽에서도 여자는 투표권도 없고, 인구수에도 안 들어갔고요. 그런 걸 보면 여자에 대한 얘길 더 할 필요가 있겠단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얘길 더 하게 될 것 같아요.





"’일본 놈 나쁜 놈’이란 이분법은 좁은 시선"



Q 얼마 전엔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가 화두였죠. 이 뉴스를 지켜보는 심정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위안부와 같은 문제가 당시에 그런 일을 겪었던 세대에서 단절이 되면 안 되겠죠. 계속 그 역사적 사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져야 해요. 그런 점에서 일본은 자꾸 그런 걸 없애고 싶어 하더라도 소녀상과 같은 조형물이 생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Q 이 모든 문제가 결국은 근현대사의 비극에서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요.



좁게 보면 우리 근현대사이지만 이걸 확장해서 보면 우리나라만 그런 비극을 겪은 건 아니에요. 그 당시에는 캄보디아나 베트남처럼 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으니까요. 다만, 어느 나라건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게 힘없는 여자들이에요. 몸이 깨지고 다치는 건 영혼까지 다치는 건 아니지만, 여성들이 성적인 학대를 겪는 것은 인간이 깡그리 무너지는 거잖아요.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겪은 일이에요. 그러니 단순히 한국과 일본을 앙숙 관계로만 보는 시각엔 한계가 있고, 조금 너른 시선을 가지고 보면 오히려 더 좋은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Q 국가 간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는 것이네요.



솔직히 그 당시에 일본 사람들보다 더 나쁜 짓을 한 우리나라 사람도 많아요. 우리가 일본에게 당했으니 일본 놈은 나쁜 놈이고 우리나라는 괜찮다는 이분법적 시선은 너무 좁게 보는 거예요. 인간의 문제로 접근해서 그 사람의 인품이 훌륭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야죠.  조금 더 내 품을 열어 놓으면 더 빨리 좋은 방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덕혜옹주> 흥행은 덕혜옹주 혼령이 은총을 준 게 아닐까"



Q 작품 쓰실 때 특별한 버릇이 있나요?



저는 작품 하나를 끝내면 어디를 가는 버릇이 있어요. <덕혜옹주> 쓰고 간 곳이 터키였어요. 터키는 작품 쓰려고 간 게 아니라 힐링 하려고 놀러 간 거예요. 거기서 사방치기 브론즈를 봤어요.



Q 사방치기요?



네. 사방치기가 우리나라 것이 아니더라고요. 북방에서 내려오면서 퍼진 거예요. 터키의 시장에 어린 아이들이 공기놀이 하는 모습으로 만든 브론즈 상도 있고, 팽이도 볼 수 있어요. 터키라는 나라가 다민족 국가이고 유럽과 동양의 경계잖아요. 다민족 문제와도 딱 맞아떨어져서 갔다와서 후다닥 쓴 게 <은주>예요. 소재 찾으려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죠. <은주>를 끝내고 간 곳이 일본 폐탄광이에요. 작정을 하고 간 거였지만 거기 갔다 와서 <몽화>를 썼어요. 증평에 있는 21세기 문학관에서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3개월간 초고를 썼지요.



Q 이번엔 어디로 가세요?



이번엔 러시아에 가요. 그쪽에선 뭐가 나올 것 같지 않은데.(웃음) 내가 취재를 해야지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무심코 본 게 오히려 탁 머릿속에 올 때도 있잖아요. 작가들이 그래서 많이 보고 다녀야 하는 것 같아요.



Q 중년에 들어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 <덕혜옹주>가 대박이 났으니 경력이 특이한 축이신데요.



학교는 서울서 계속 다니고 결혼 전까지 살다가 결혼하고 울산으로 갔어요. 지금은 울산사람 다 됐죠. 글은 초등학교 때부터 썼어요. 제가 얻게 된 인기는 행운인 것 같아요. "네가 그렇게 미련스럽게 곰탱이처럼 쓰니까 어디 빛 좀 봐라"하시면서 덕혜옹주 혼령이 은총을 주신 것이 아닐까.(웃음) 지방에 살면서는 책을 내는 것도 어려워요. 지방에서 좀 떴다 하면 서울로 오더라고요. 이쪽 바닥에서 어울리면서 안면도 트고 뿌리를 내리던데, 저는 울산에 머물러 있으니 처음엔 유령작가라는 얘기도 나오고 했어요. 문단에도 이름이 없던 작가이고 하니까요.



Q <덕혜옹주>가 출간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잔잔한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왜 사람들이 그렇게 <덕혜옹주>에 열광했는지에 대해서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제 윗 세대나 조금 어린 세대, 그러니까 지금 한 오십 정도 된 분들은 가슴 속에 한이 많아요. 오빠 공부 시키려고 버스 차장도 하고, 부모님 봉양하려고 일하고, 공부 잘해서 대학교 붙었는데 "계집애가 대학교 가서 뭐하냐"고 해서 못 가게 하고. 그런 한이 많은 세대가 50~60대에요.  원래 소설이 20~30대 젊은 여성 타깃인데 <덕혜옹주>는 처음 인기를 끈 연령층이 40대였다고 해요. 여성들의 가슴 속에 깃든 한이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본 게 아닐까 해요. 일부러 대중소설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작품을 대중소설로 본다고 해도 불만은 없어요. 작가마다 자기가 쓸 수 있는, 자신만의 역량이 있는 것이니까요.



Q <덕혜옹주> <은주> <몽화>…그 다음 작품의 행선지는 어디인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덕혜옹주>를 쓰면서 도공에 대한 자료를 많이 모아 놨어요. 그런데 자료만 많다고 작품이 써지는 게 아니잖아요. 나와 작품 사이에 불꽃 튀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어쨌든 앞으로 쓸 작품 중엔 도공 얘기도 하나가 들어 있을 것 같아요. 또 현재 한국에서 할머니, 어머니 딸 세대가 아주 극명하게 바뀌잖아요. 할머니 세대는 ’여필종부’로 살았고, 엄마 세대는 죽어라 시부모 모시고 자식도 길렀는데 자식들은 개인주의이고 자존감 찾기엔 형편도 넉넉치 않고. 젊은 세대는 자식도 안 낳고, 제사도 안 지낸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다른 여인삼대의 모습을 이야기로 써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북DB 2016.5.18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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