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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박명수도 춤추게 한 '긍정 만화가' 주호민

<만화전쟁> 출간 주호민 인터뷰





군대, 죽음, 청년실업, 남북관계… 신문 사회·정치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골치 아픈 주제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도 특유의 긍정 에너지로 소화해 명랑한 느낌의 만화로 가뿐히 탄생시키는 이가 있다. '파괴자', '파주스님'이란 별명이 붙은 만화가 주호민이다. 그가 졸업한 학교, 그가 거쳐간 웹툰 연재 사이트가 모두 문을 닫아 '파괴자'란 별명이 붙었고, 민머리에 파주에 살았단 이유로 '파주스님'이란 별명이 붙었다.



주호민은 현실에 완전히 밀착하지도, 외면하지도 않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다뤄왔다. 그가 작년 하반기 동안 피키캐스트에 연재한 웹툰 '만화전쟁'이 동명의 책으로 나왔다. 6월 23일 작가의 자택이 있는 서울 능동에서 그를 만나 <만화전쟁>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만화전쟁>에 국정원 직원 댓글조작 사건도 담았다"



무엇보다 최근 주호민의 존재를 더 넓게 알린 계기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이었다. '무도 릴레이 웹툰' 편에서 그는 아낌없이 칭찬하고 장점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함께 짝을 이룬 '호통 개그'의 일인자 개그맨 박명수와 순조로운 협업을 진행해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다.



"남을 가르쳐본 적이 없다. 나도 내게 칭찬을 많이 하는 면이 있다는 걸 처음 발견했다. 박명수 씨는 당연히 웹툰을 처음 그리는 분이니 계속 칭찬하고, 재미를 붙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번에 출간된 신간 <만화전쟁>에는 보수단체의 대북선전물 살포사건, 국정원 직원 댓글조작 사건 등이 등장한다.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남북관계 관련 사건의 '종합 패러디 선물세트'라고 할 만하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익살스럽게 등장한다. 이야기는 무명 만화가 진기한의 '우주괴수 용지라'가 우연한 기회에 북한으로 흘러들어 가며 시작된다. 남한에선 이 동태를 포착하고 '덕후' 전력이 있는 국정원 여직원 안보연을, 북한에선 평양예술대학을 졸업한 성오철 소위를 진기한 작업실에 어시스턴트로 침투시킨다. 그리고 각 체제에 유리한 쪽으로 만화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그야말로 '만화전쟁'이 벌어진다.



"안보연은 국정원 직원 댓글조작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다.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것도 여기서 나온 설정이다. 원래는 '셀프 감금'에 관한 내용도 패러디해서 넣으려고 했는데, 이야기 흐름과 잘 맞지 않아서 아쉽게 넣진 못했다. 하지만 국정원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이라든지, 댓글조작 사건이라든지, 전부 패러디해서 넣었다."



작가가 처음 이 사건을 구상한 건 과거 파주에 살 때의 일이다. 북한으로 날리는 전단지를 보며 "그냥 내 만화책이나 보내지"란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가 구상되었다.



"임진각에서 선전물을 배포한다는 내용의 뉴스를 자주 본다. 같은 동네다 보니 아무래도 더 유심히 보게 되는 게 있었다. 하지만 파주에 산다고 무조건 북한을 민감하게 느끼는 건 아니다. 알고 보면 파주가 엄청 넓다.(웃음)"






"북한 주민들, 남한 만화도 재밌게 보지 않을까?"



그는 이번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새터민 두 명을 만나 인터뷰도 했다.



"북한에서도 만화를 보는지부터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생각보다 북한 만화 퀄리티가 훌륭하더라. 그림 질을 엄청 따진다. 못 그린 그림은 아예 안 본다.(웃음) 애니메이션은 90년대 디즈니 느낌인데 반해, 만화는 회화적 느낌이 강한 옛날 만화 스타일이었다."



북한 간첩 성오철이 '남한에서 만화를 그릴 때는 고민을 하고, 또 그걸 재밌다고 해주는 사람들도 만나고,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좋았다'라고 하는 대목에선 새터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인터뷰 때 오늘 남한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다음 날에 북한에서 볼 수 있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난 옛날 생각을 해서 '비디오로 보느냐'고 했더니 코웃음을 치면서 USB로 본다고 했다. 웬만한 남한 드라마는 다 알고 있더라. 남한의 음악,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는 걸 보면 언젠가는 그들이 만화도 재밌게 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한 편의 만화 때문에 남과 북의 수뇌부가 움직인다? 다분히 만화적 설명이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오늘날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으니 휴전선을 못 넘으란 법도 없다. 그렇다면 만화가로서 주호민이 믿는 만화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샤를리 엡도 사건(2015년 1월 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서, 무함마드 만평에 분노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킨 테러 사건 - 기자 주)은 풍자만화를 그렸다가 벌어진 일이다. 만화는 글이나 그림을 다 사용해 정보나 주장을 전달하므로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또한 희화화해서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광우병 사태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만화가들이 릴레이 만화를 그려서 사회참여를 할 수도 있었던 거다. 만화에 정말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이라면 그게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만화전쟁>은 남북관계 및 시사에 대한 풍자를 담은 만화이기 이전에, 만화에 대한 만화, 그리고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만화다. 그래서 만화 곳곳에 숨어 있는 국내외 만화들의 패러디 장면을 찾는 것도 <만화전쟁>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주호민 본인의 <신과 함께>를 비롯해 <커피 한잔 할까요> <나쁜 상사> <원피스> <노래하는 왕자님 진심 LOVE 1000%> 등.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 영역은 무한히 확장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만화의 탄생 요건은 무엇일까?



"그림은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그릇이다. 음식과 어울리는 접시가 있듯이 나는 내가 만드는 음식에 어울리는 접시를 가진 거다. 결국은 무엇을 담아내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어떤 걸 만들지 결정되면 거기에 맞는 그림체도 결정된다. 그 둘이 딱 맞아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






"웹툰작가가 되고 싶다면 일단 '시작'하라!"



주호민은 현재 웹툰 시장을 "거의 과포화 상태"라고 표현했다. 작가들에 대한 처우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매체가 변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웹툰계라고 했다. 현재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향한 뜻깊은 조언도 잊지 않았다.



"가끔 '어떻게 하면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느냐'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는다. '말로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고, 그린 걸 보여주면 조언을 해주겠다'고 대답하면 그려 놓은 것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단 '시작하시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또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시작 못 하는 분도 많은데. 난 시작함으로써 해결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시작을 권한다."



2013년 1월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신과 함께> 이후로 비교적 짧은 분량의 만화만 그리고 있다. 육아와 작품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긴 호흡의 장편보다는 단편을 주로 하게 된 것이다. 육아의 경험을 <셋이서 쑥>이란 만화에 녹여내기도 했다.



"아이가 없을 땐 생활리듬이 마음대로였지만 요새는 어린이집도 데려다줘야 하니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만화를) 낮에 많이 그린다. 아기 때문에 정신이 분산되는 것도 있지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엔 아이가 안 보였다. 이젠 엄마·아빠의 심정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확실히 알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 달라졌다. 요새는 영화에서 유괴 장면이 나오면 못 보겠더라. 이런 부분에서 전과 다른 무엇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주호민의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신과 함께>는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도경수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가운데 영화로 만들어져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국내 영화로는 최대 규모의 컴퓨터그래픽이 들어가는 점이 기대된다. 아마 그쪽에선 굉장한 기록을 세울 것 같다. 다만 영화에서는 (원작 만화에 있는) 변호사 역할이 빠지고, 강림도령 캐릭터가 변호사 역할까지 하게 된다. 변호사가 인기가 많은 캐릭터였던 터라 원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되기도 한다."



주호민은 전통 설화들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신과 함께>와 비슷한 톤의 작품을 올 연말부터 연재할 예정이라고 했다. 특유의 긍정 에너지가 이 요지경 세상을 또 한 번 어떻게 비춰낼지 기대된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북DB 2016.7.4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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