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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박노자 "재벌에게 흙수저들은 식민지 백성과 같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저자 박노자 인터뷰



<당신들의 대한민국>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등의 책에서 날카로운 관점으로 한국 사회의 폐부를 드러내온 박노자. 그에게는 종종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이란 별명이 붙는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2001년 한국으로 정식 귀화한 한국인이다. 게다가 평균 한국인들보다 더욱 유창한 고급의 한국어를 구사한다. 어쩌면 그에게 붙은 편견 깃든 별명 그 자체가 '피부색이나 겉모습이 다르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순혈주의에 물든 한국적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지 모른다.

그가 이번에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란 새로운 책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 2~3년간 그가 다양한 매체 지면을 통해 발표한 시사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박노자는 1997년 이후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적 '주식회사형' 국가로 재탄생했음을 천명하며, 대한민국에서 소위 '흙수저'로 살아가는 민중의 힘든 삶과, 다수 국민이 '헬조선'을 외치며 '이민'을 꿈꾸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선명히 드러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는 그가 한국을 찾았다. 7월 8일 서울 합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글을 통해 상상해온 그의 모습이 예리하고 딱딱한 모습이었다면, 실제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는 유쾌하고 쾌활한 모습으로 상대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경청했다. 국민을 희생양 삼고 오로지 부유층 주주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가 말한 대한민국의 실체는 꽤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절망적 상황을 설명할 중요한 열쇠로 다가왔다.




"1997년 이후, 국가는 노골적인 기업 로비 단체였다"


Q 책에서 대한민국의 1960년대 초반 개발주의적 권위주의 국가로의 전환을 첫 번째 전환으로, 198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제도적 민주주의의 제한적 도입을 두 번째 전환으로, 그리고 1997~1998년 신자유주의적 '주식회사형' 국가로 재탄생을 세 번째 전환으로 언급했다. 세 번째 '주식회사형' 국가로 재탄생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진 건가?


그전까지 대한민국은 개발주의 국가였다. 개발주의 국가의 이념적인 부분은 '다들 가족'이라는 거다. 적어도 고용자가 직원을 가족처럼 챙기고, 국가는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이념적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때 개발주의 국가의 과실은 재벌에게 갔고, IMF를 계기로 국가는 개발주의에 따르는 책무, 의무들을 모조리 폐기처분 하고 말았다. 당연히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이념은 퇴색하기 시작했고, 민생은 이제 각자도생, 각자에게 내던져진 몫이 되었다. 국가는 민생 챙기기보다는 기업 이익 챙기는 노골적인 기업 로비 단체, 기업 해결사로 나선 게 아닌가 싶다.


Q '주식회사형' 국가의 병폐가 무르익은 시점에 국민은 왜 보수 성향의 박근혜 대통령을 찍은 걸까?


수많은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개발주의 국가 지도자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인 박근혜씨가 과거 국민이 희생한 만큼의 몫을 돌려주리란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오판 치고도 엄청난 오판이었다. 박근혜 스타일은 한국 재벌자본주의의 화신이다. 박근혜씨는 실제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돌려주거나 챙겨줄 생각은 없었다.


Q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은 '정치인 품질 검증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검증 시스템이 가리키는 게 구체적으로 뭔지 알고 싶다.


사회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적어도 대권 도전자 중에서는 기본 상식을 결여한 사람이나, 범죄자, 원천 부적격자를 골라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원로들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박근혜씨 같은 분은 기본적으로 대통령 될 자격이 없는 분인데, 그녀의 대권 도전을 차단할 힘을 사회가 갖지 못했다. 조종사 학교 안 다닌 사람이 운전하는 비행기에 타면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기분일 거다. 박근혜씨가 운영하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느낌도 그런 것 같다.


박근혜씨는 대한민국을 통치하기 전 그 무엇도 통치한 적이 없는 완전 무적격자다. 행정 경험이 전혀 없고, 수평적 관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저질 후보 낙선 운동처럼 저질 대통령 후보를 미리 떨어뜨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지금 당하고 있는 거다.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가 넘었다'라고 말했다는데, 박근혜가 국민 모독하는 것은 지나친 게 아닌가?


Q 하지만 아직도 국민에게는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고 지켜주고 보호해 줄 것이란 희망이 있다.


희망이라는 게 유교 사회의 유습이기도 하다. 문제는 개발주의 시대의 과실들은 이미 재벌들에게 넘어갔고, 그 당시 재벌들을 총동원 재료로 이용해 재벌들 배를 살찌운 국가는 더는 국민에게 아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국민의 희생으로 국제 기업이 된 대기업들이 이제 국제 시장에서 대자본 노릇을 하고 그 재료가 된 사람들은 폐기, 살처분 되고 있다. 70년대 재벌들이 벌인 큰 사업 중 하나가 중동 건설인데, 12시간 동안 지옥 같은 사막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지금 누군가? 빈곤노인들이다. 국가나 기업들이 지금 그들을 신경이나 쓰는가?


Q 그렇다면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리란 환상은 어떻게 하면 깰 수 있을까?


대중들이 역사적 경험 속에서 배우는 것밖에 없다. 배운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누구도 믿지 않는다. 배운 사람들의 말은 그저 배운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유희일 뿐, 대중들이 역사에서 배우는 거다. 아마 지금의 역사적 경험이 머지않아 그들에게 엄청난 교훈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싶다. 벌써 조선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을 시작해서 2018년까지 30%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아마 이것이 구조조정 연쇄 사슬의 첫 단계이고 앞으로 계속 이뤄질 것이다. 노동자들이 말 그대로 살처분 당하는 과정에서 대중들이 뭔가를 배우지 않을까? 역사 속에서 배우는 것이지 누가 말로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은 국가라는 조폭 조직에 불법 납치감금 당했다"


Q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저성과자 해고 지침' 같은 문서를 노르웨이 노동자들이 읽는다면 19세기 말 착취공장의 이야기로 오인할지도 모른다고 책에서 말했다. 얼마 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는 사태도 발생했는데, 이 사안을 어떻게 보았는가?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지만, 동네마다 '해결사'라는 게 있다. 동네 부호가 조폭 집단에 '저놈 혼내줘!'라고 하면 돈 받고 적당히 때려서 반죽음을 만든다. 지금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사실상 그런 동네 조폭 노릇을 하고 있다. 재벌 기업에는 노조 활동이 위협으로 다가오니, 노조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을 개별화시켜서 보다 편리하게 착취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급진파인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이 걸림돌이 되니 국가는 조폭처럼 한상균씨를 5년 동안 불법 감금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한상균씨는 양심수이기도 하지만 국가라는 조폭 조직에 불법 납치감금 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사법이나 재판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수준이다.


Q 최근 국민의 공분을 산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있었다. 책에서는 이 사건을 주주(기업)들의 배당금 극대화를 위해 분투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활동의 일환으로 언급했다.


이것 역시 무엇으로부터도 보호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성격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이 주주로 취급하는 대상은) 외국 자본이나 국내 자본이나 차이가 없다. 옥시 제품은 수많은 국내 백화점들이 팔아줬다. 또 옥시라는 회사가 살인적으로 해로운 살균제를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만 팔았을까? 다른 나라라면 분명 식약청 같은 기관에서 막았을 텐데, 대한민국에서는 재벌이 있었다. 재벌이 국민을 필요한 만큼 돈벌이 재료 삼아 이용하고, 그 부작용은 개인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Q 역사적 맥락으로, 왜 하필이면 대한민국이 가장 자본화된 사회가 되었다고 보나?


기본적으로 식민주의가 전혀 청산이 안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계층은 크게 봐서 식민지 시대 조선인 엘리트의 후예들이고, 일본이 가고 나서 그들은 일본이 운영하던 사회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말하자면 본인들이 식민지 일본을 대체한 거다. 미국이란 권력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 사회를 하나의 내부 식민지로 운영하는 느낌이 있다.


대기업의 주인들이 그들의 머슴(직원)을 보는 눈은, 지배자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바라보던 눈과 크게 다를까 싶다. 그들에게는 흙수저들이 내부 식민지 백성이다. 한국에서는 지배 엘리트들이 거의 미국에서 교육받는다. 지난번 '땅콩 회항' 사건에서도 조현아씨가 외국에서 상당 부분 삶을 살고 돌아와서 명예 미국인으로서 조선인들을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식민주의가 거의 그대로 계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인 것 같다.


"정말 세계화되어야 할 것은 케이팝 아닌 한국 노동운동"


Q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너도나도 '헬조선'을 외치는 요즘 세상에서 사람들이 말하듯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이민은 개인적 해결방식이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도 여러 착취나 차별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벌화된 국가, 기업화된 국가는 세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다만 전국 노조 위원장을 불법감금해 5년이나 괴롭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지만, 대한민국만큼 재미있는 세상도 없다.


Q 재미있다는 게 어떤 뜻인가?


대한민국은 정말 극단적인 자본주의이지 않은가. 이런 극단적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저항도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태를 띠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인간의 숭고한 본질이 발휘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한국만큼 고공농성이 있는 곳은 없다. 2012년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산에서 고공농성을 했고, 최근 기아자동차 노조에선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일 년 가까이 고공농성을 했다.


고공농성이 뭘까? 죽음과의 공존이 아닌가? 떨어지면 구조할 수도 없이 즉사하는 높이의 꼭대기에서 강풍을 맞아가며, 죽음과 마주하며 타자들을 위해서 고통, 시련을 자진해서 청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숭고한 본질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희생을 해야 저항이 가능한 사회는 없다. 정말 세계화되어야 할 한국적인 것은 케이팝이 아니라 이런 노동운동일 거라 생각한다.


Q 다른 나라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나?


농성도 있고 파업도 있지만 그걸 조절하는 기관들이 있다. 보통 다른 나라에선 자본이 어쨌든 타협을 원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들이 하도 하찮은 존재로 인식되니까 자본이 노동자와 타협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물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현상들은 어디서나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도망간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도 새로운 문제들이 생기니 현재 국가 운영하는 사람들의 기층을 판갈이 했으면 좋겠다. 사기업과 완벽하게 유착된 지금의 고급 공무원들은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 뻔하다. 그리고 국가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


Q 어떻게 하면 국가의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평화로운 사람이다.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화염병 던지는 일은 잘 못 할 것 같다.(웃음) 화염병도 소수일 때 필요하고, 다수일 때는 조직력만 갖추면 해볼 수 있는 게 많다. 예를 들면 징병 대상자인 대한민국 청년 10만 명이 일제히 군대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그들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전까지는 갈 수 없다고 하면서 파업을 해버리면 국가가 10만 명을 잡아갈까? 그러면 감금시설이 모자랄 텐데. 우리가 폭력을 쓰지 않고 조직력으로 상당 부분 버릇을 고칠 수 있다. 조직력만 갖추면 충분히 비폭력적으로도 할 수 있다.


결국엔 아이디어 싸움이다. 젊은이들이 우리는 우리고 저들은 저들이라는, 흙수저가 금수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흙수저들끼리 뭉쳐서 금수저들에게 우리의 단합된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금수저도 흙수저도 세습화된 지금 상황에선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이 폐정 개혁안을 내세운 것처럼 움직여야 한다.


Q 흙수저들의 연대가 결국 중요하다?


그렇다. 반씨(반기문 UN 사무총장)가 대통령 되든, 문씨(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되든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크지 않아 누가 당선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대북 정책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잡아가는지에는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큰 그림에선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Q 조금 큰 시각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닌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나?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적으로 사회가 경제를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은행은 공공시설인데 왜 개인이 은행을 소유해야 하는지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은행이 공공시설로 운영되면 오히려 더욱 합리적인 금융정책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 위주로 필요하면 무이자 대출을 해줄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주택 문제도 풀 수 있다.


보다 공공성을 증대하고, 민주적 방식으로 경제의 골간을 이루는 시설을 운영하는 게 극도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보육, 의료, 교육, 노후 서비스 등 우리 삶에서 모든 기본적인 것들을 사회가 알아서 제공해주는 시스템이 당연하기도 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이윤추구적인 사회에 오히려 비효율적인 면이 많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북DB 2016.7.18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70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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