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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출판평론가 한기호 “나에게 책은 만병통치약”



올 3월에는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와 인간 바둑 천재 이세돌의 대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결과는 4대 1로 인간의 완패. 많은 이들은 인간의 자리를 기계에게 내어줄 날도 멀지 않았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교수는 4월 26일 방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30~40년 뒤에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몰아낼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도 했다.(관련기사 : [현장] 유발 하라리 "기술지배 엘리트의 권력독점 심해질 것")




출판평론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이 사건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이세돌에게 기적의 1승을 안겨준 ‘신의 한수’, 알파고의 지능이 미처 닿지 못한 지점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이해’이며 이것은 책만이 줄 수 있다는 것. 최근 한기호 소장의 이런 생각이 집약된 <인공지능 시대의 삶>이란 책이 나왔다. 신문 지면에 발표한 칼럼들을 모아 낸 책이지만 그것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계 기술이 발전한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이며, 그 답은 책이다. 책과 현실이 촘촘히 얽혀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삶>은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이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시점에 더욱 절실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인터파크 북DB는 서울 서교동에 자리잡은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지식 습득하고 배치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


기승전‘책’! 출판평론가 한기호 소장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무슨 주제로 시작했든 간에 3분 안에 책 얘기로 돌아간다고 해서 지인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이란다.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두 시간 여 진행된 인터뷰 동안 대화는 온전히 책에 대한 얘기로 채워졌다. 

한기호 소장은 한국 출판계의 전설과 같은 존재다. 1982년 출판사 편집자로 시작해 1983년 창비에 입사해 마케터로 15년간 일하며 쟁쟁한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이 그것. 1998년 출판사를 나온 후 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세웠고, 1999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2009년부터는 도서관 전문잡지인 ‘학교도서관저널’을 펴내고 있다. 다섯 개 출판 브랜드를 통해 단행본 출판도 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삶>에 실린 글들은 ‘책’이 중심이 된다. 책은 현실을 분석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며, 그 자체로 문제에 돌파구로서 등장한다. 무엇보다 그는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시대에 지식 습득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식 습득을 위해, 더 많이 암기하기 위해 책을 읽어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지식의 편집, 달리 말하면 배치가 더 중요한 시대예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때 기존의 지식과 연결해서 자기 얘기를 만들어 나가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하죠. 그것을 위해선 책을 읽어야 하고요. 이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혼자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읽은 후 토론해야 해요." 

그는 시험만 잘 봐서 성공한 수험형 엘리트들에게 성공이 보장되던 시대는 지났으며, 대학 졸업장이나 학위보다 어떤 역량을 실제로 갖췄는지가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컴퓨터가 못하는 건 삭제… 암기보다 망각 능력 중요” 

“정보에 대한 접근 능력이 경쟁력이 되지 않는 시대에는 정보를 끄집어내 주관적 의미를 부여해 가치를 발생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시대를 주도할 수 있어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고 중요한 부분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망각하는 훈련을 제대로 한 사람만이 이런 능력을 갖출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책 읽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기호 소장은 ‘현실적으로 인간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읽기’가 거의 유일하다‘고 <인공지능 시대의 삶>에 썼다. 

“인간의 경쟁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기계예요. 컴퓨터가 못하는 걸 인간이 해야 하잖아요. 그게 뭘까 생각해보면 정보의 저장, 보관, 이동은 컴퓨터가 잘 해요. 다만 유일하게 못하는 게 뭐예요? 삭제예요. 무엇인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고 망각하는 능력이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책을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 권 읽고 책에 대해 (원고지) 10매 정도의 서평을 써봐야 해요.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들춰보고 다시 여러 번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걸 어려서부터 훈련하게 되면 평생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죠.” 

<인공지능 시대의 삶>에서 한기호 소장은 독자들에게 역동적인 독서뿐만 아니라 저자의 역할 또한 주문한다. 책을 열심히 읽고 또 서평 등으로 재생산을 하고, 또 직접 책을 쓰기를 권한다. 이제는 책이 포트폴리오가 되는 시대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한 지인의 사례를 들려주기도 했다. 

“제가 낸 책들은 웬만하면 초판 2000권을 넘어가는데 아직 1000부를 못 넘긴 책이 있었어요. 책을 많이 못 팔아줘서 미안한 심정이었는데 그 책의 저자가 어느 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막상 만나서 그 마음을 전했더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면서 ‘책을 내고 나서 얼마나 바빴는지 아시냐, 오늘도 강연을 하고 자문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그래서 저녁 사러 온 거’라고 말해서 (제가) 마음을 빚을 벗었죠.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는데도 자기 포트폴리오가 된 거예요. 책을 제대로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책도 쓸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면 평생 살아갈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되는 거죠.”    

“맞춤형 책 골라주는 서점의 역할 점점 더 중요해질 것” 

한기호 소장은 서점의 도서 가격 경쟁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내고 도서정가제를 지지한 출판인 중 한 명이다. 책의 가격 경쟁은 독자들이 좋은 책을 만날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 그는 최근 동네 곳곳에 생겨 나는 독특한 콘셉트 서점의 등장에 대해 단순 ‘귀환’이 아닌 ‘진화’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서점들엔 한마디로 큐레이션 기능이 있는 거예요. 일본의 오라이도 서점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일 텐데요. 예를 들어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이 서점을 찾았다고 한다면 어떤 책이 필요할까요? 일단 이혼을 해야 하니 ‘민법총칙’을,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야 할 테니 ‘마음의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한 책을, 홀로 생계를 꾸려가야 할 테니 ‘싱글 여성으로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겠지요. 상황에 따라 그 사람한테 필요한 책을 내놓는 거예요.” 

새로운 서점의 등장은 희소식이지만 여전히 책은 스마트폰 등의 기기나 여러 영상 매체들을 대상으로 경쟁해야 한다. 그러면서 책을 향유하는 이들의 수는 확실히 줄고 있고, 이로 인해 ‘책의 종말론’이 야기되기도 한다. 출판전문가 한기호 소장이 보는 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의 최대 인쇄회사인 다이니폰 인쇄가 중요한 서점 체인 다섯 곳 중 쓰타야 서점 한 곳만 빼고 네 곳을 인수했어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마 종이책에 미래가 없다면 어엿한 기업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다른 사업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계속 서점 체인을 인수하고 온라인 유통에도 개입하고, 전자책 생산도 하면서 모든 분야를 다 다루고 있어요. 결국 하이브리드 출판으로 간다는 게 중요해요.” 

기승전책이라고 불릴만큼 책만 보고 달려왔고, 책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 내부엔 얼마나 많은 책에 얽힌 추억과 애증이 켜켜히 쌓여 있을까.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그에게 인생에서 책이 지니는 의미를 묻자 “나는 책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해요. 책에 모든 정답이 있고, 책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로 매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상이라지만 그의 말처럼 늘 우리 머리맡에 있었던 책이야말로 가장 다정한 친구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니었을까. 막막한 인공지능 시대, 책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니.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북DB 2016.8.3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7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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