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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사회학자 오찬호 "개저씨란 말,인터넷떠도는 한의 분출"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저자 오찬호 인터뷰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학자 오찬호. 그는 날카롭게 빛나는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감춰져 있던 대한민국의 단면을 드러내곤 했다. <진격의 대학교>(문학동네/ 2015년)에서는 ‘취업사관학교’가 되어버린 대학의 현실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2013년)를 통해서는 무한경쟁의 희생양이 된 이십대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이번에는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동양북스/ 2016년)라는 책을 들고 돌아왔다. 요새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인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오찬호의 기지가 어떻게 발휘되었을지 기대됐다.

이 책은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성차별적 문화를 심층으로부터 현상적인 것까지 흥미롭게 파헤진다. 저자 자신이 생활 속에서 경험한 남성중심적 문화를 에세이 형식의 글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군대', '개저씨', 회사나 가정 내 남녀차별 등 각종 뇌관을 건드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회사에 남자가 많은 이유', '운전 못하는 운전자를 김여사라고 통칭하는 이유', '누나가 남동생의 밥을 챙기는 이유' 등 삶에서 항상 겪었지만 찝찝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사안들에 대해서도 명쾌한 방식으로 그 이면을 밝히고 있다.


신간 출간을 기념한 인터뷰를 위해 서울 홍익대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오찬호를 만났다. 혹여 페미니즘이란 주제로 ‘맨스플레인(mansplain)’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했던 기자의 걱정은 기우였다. 저자는 이 책을 정통 페미니즘 서적이라기보단 사회학을 공부한 한 남자가 쓴 책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그 진솔함이 전해졌다.

"요즘 나오는 페미니즘 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면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도 존재합니다. 이 책은 그 전 단계로서 일상에 적용했을 때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여성이 남동생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페미니즘 입문서, 말이 정말 통할 것 같은 남자친구에게 권해서 읽혀보고 싶은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메갈리아' 활동, 정당방위의 수위를 조금 높인 것"


Q 이번 책은 8년 전 페미니스트 웹진 ‘이프’에 기고한 칼럼이 바탕이 되었다고요. 당시 뭇 남성들로부터 엄청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8년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검색을 해보면 남초 사이트 같은 데 내 글을 옮겨와서 ‘야 오찬호 군대 갔다 왔냐’고 쓴 글이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여전하구나' 싶죠. 군대를 갔다 온 사람만이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할 거란 착각이죠. 하지만 제 글은 군 복무의 힘듦이 잘못되었고,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밝히는 것이잖아요. 그런데도 ‘요새 무슨 남녀 불평등이냐’는 여전한 반응들을 보고 있자면, 시대는 지났는데도 똑같은 얘길 하고 있으니 더 퇴행한 거라는 생각이 들죠.

Q 이번 책에서 한국 남성에게 콤플렉스인 동시에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논리가 된 군대문화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비판하셨는데요.

안보적 특수성에서 군대를 갔다 왔다고 하더라도 그것과는 별도로 우리 사회는 절대 군대처럼 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논의를 넓혀나가야 하는데, 군대를 갔다 온 게 많은 남자를 설명하는 게 되어버렸잖아요. "군대를 갔다 오니까 일 잘하지", "군대를 갔다 오니까 뭘 알지"란 소릴 들어왔는데, 군대에서 잘못된 걸 배워온다고 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증명한 그릇이 틀렸다는 소리가 되는 거죠. 그러니 끊임없이 '군대 안 갔다 왔으면 말하지 말라',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데 내 과거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주장을 하게 되는 거죠.



많은 남자들이 처음에는 '씨발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왜 이래?'라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니까. 남자들은 그저 ‘군대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군대에서 생활할 때는 그곳이 ‘도무지 사람 살 곳이 아니라서’ 그토록 짜증을 냈건만, 제대롤 하고 나니 “군대 갔다 오니 사람 되었네”라는 소리를 듣는 역설이란 참…….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46쪽



* 개저씨의 특징
반말을 한다.
사생활을 묻는다.
스킨쉽이나 성적 농담을 일삼는다.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한다
가부장적 생각을 강요한다.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95쪽

Q 예의 없는 중년 남성을 일컫는 '개저씨'라는 말이 유행이었는데요. 책에서 '개저씨는 혁명’의 단어'라고도 하셨어요. 이 부분을 보고 얼마 전 길거리에서 흡연 중이던 중년 남성이 담배를 꺼달라는 아기 엄마의 요구에 뺨을 때린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개저씨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나이’와 ‘남성’을 가져와서 수직적 관계를 일상에서 만연화 시키는 태도인데요, 호들갑을 떨고는 있지만 과거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하던 중년 남성의 행동 반경이 줄어들어서 주목하는 것일 뿐 실제로 많은 중년 남성들을 누를 정도로 비판적 문화가 형성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저씨란 말은 마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한의 분출 같은 거죠.

Q 이렇게 남녀 간 논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혐오나, 남성중심사회란 점에 대해서 쉽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때 자음 기억, 니은, 디귿 같은 자음을 배우고, 모음 아, 야, 어를 배우고 문법들을 배우잖아요. 하지만 한국인들은 어떤 문법 법칙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배우죠. 젠더 교육이란 것도 그런 거예요. 남성들은 그런 문제가 발생할 때 역차별이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왜 여성들이 그렇게 공포를 느낄지, 여성은 무엇을 부당하다고 느낄지를 일상의 식탁 위에서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죠.

실제로 페미니즘 논쟁에 등장하는 논의들은 일상의 숙련된 논의를 안다는 전제 하에 나와야 그 다음 단계로 가게 되는데 아직은 아닌 거죠. 이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언어가 불편한 것이고요.


"강남역 노래방 살인사건, 올해 10대 사건 중 하나"

Q 최근 여성혐오 이슈와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곳은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입니다. 이 사이트는 약자 혐오를 일삼는 인터넷 사이트 '일베'의 방식을 '미러링'해 여성혐오 현실을 드러내는 게시글들이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이들의 활동에 관해 '혐오를 혐오로 되받아친다'는 부정적 의견도 있는 반면, '효과적이다'라는 긍정적 의견도 있습니다. 작가님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메갈리아에 올라온 어떤 글을 클릭해보니 혐오의 글이에요. 그걸 어떻게 평가하냐고 물으면 당연히 그것은 부정적이고 나쁜 뜻이죠. 그런데 어떤 것에 대한 평가가 그 게시글 하나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 글이 어떤 식의 스타일이며, 왜 그런 글이 등장했는지를 보는 거죠. 그것을 읽어내려면 '미러링'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애초에 어떤 폭력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고 있죠. 그렇다고 메갈리아의 폭력을 정당화 시킬 순 없지만, 두 개의 폭력을 동일한 폭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거예요.

메갈리아의 활동은 정당방위의 수위를 조금 높인 거라고 봐요. 물론 방식을 문제 삼을 순 있지만,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정당방위로는 제대로 처벌이 안 됐잖아요. 큰 줄기에서 볼 땐 여성혐오 문화에 노출돼 있던 분위기에서 행해진 남성에 대한 혐오 전략이라는 거죠. 이건 전략이고, 그 전의 건 문화란 말이에요. 메갈리안(메갈리아 이용자)이 하면 나는 어떤 공포도 안 느껴져요. 왜냐하면 그건 굉장히 전략적인 것이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위협성이 없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혐오 문화와 메갈리아의 전략을 같이 평가하는 건 굉장히 우스운 것 아닌가 생각해요.

Q 그렇다면 메갈리아의 활동이 남성중심문화를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저는 이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남성중심사회인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어떤 집단의 얘기를 미러링 해서 보니 나도 남성중심의 시각을 갖고 살아왔구나'라고 깨닫게 될 거라 생각해요. 가정이 문제 없다고 해서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굉장히 평화로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사회 고정관념을 만들어내는 걸 실천하고 있었단 걸 깨달을 수 있죠.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서 내 행동에 제약을 당한다면 저는 그것이 굉장히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제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행동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받고, 수치심을 느낄 때, 나의 어떤 자유를 줄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인간적인 성찰이란 거죠. ‘요즘은 정말로 신경 쓸 게 많아. 잘못하면 큰일 나니까’라고 하는 남성들이 있는데, 그건 좋은 거죠.

Q 지난 5월에는 강남역 노래방 살인사건도 있었습니다.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사건 희생자에 대한 추모 열기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안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라고 표현하시면서, 추모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돌아가신 분께는 굉장히 큰 위로를 전해야 할 테지만 이후에 여성들이 그 사건을 슬픔에만 그치지 않고 더 큰 덩어리로 정교화 시킨 것은 제가 보기에 올해 10대 사건 중 하나로는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 분노도 일어나고, 어떤 사건을 어젠다로 끌어올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추모의 크기가 컸으니까요.

Q 당시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추모하는 열기에 대해,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고 반발하는 남성들도 있었습니다.

‘여성혐오’라고 규정하는 게 '남자놈들 다 사라져라' 이게 아닌 거잖아요. 거기서 ‘잠재적 가해자라고 몰지 말라’는 말이 나오면 우리가 무슨 사회운동을 할 수가 있어요? 노동자 탄압하지 말라고 할 때 모든 CEO를 그렇게 몰지 말라고 하면 할 말 없고, 학교폭력 사라지라고 할 때 모든 교사가 폭력교사냐고 하면 한마디도 못하는 거잖아요. 당시 나온 이야기는 혐오 정서가 전부는 아니지만 여성이 위협을 받을 정도로 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남자는 그걸 줄여나가면 되는 것이죠.



Q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등의 책을 통해 제기한 문제들이 사회에 충격도 주었고, 또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도 된 것 같습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이슈를 이끌어내는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게 틀렸다는 걸 난 보여주겠다!' 그게 연구의 시작점이니까요. 결국 화제가 된다는 건 찬반 의견 대립이 붙으니까 그런 거죠. 제가 일부러 이슈를 찾은 것은 아니고, 내 몸으로 볼 때 부당하다, 저런 분위기는 틀린 것 같다 하는 주제들을 주로 다룬 것 같아요.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그런 글들을 많이 쓰겠죠. 물론 머리 아프죠. 하지만 그게 사람다움 아닌가, 그게 문명 아닌가 싶어요.

예전에 '워킹데드'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는데 계속 좀비가 창궐해서 국가도 법도 질서도 없이 생존자들끼리 살아가는 거예요. 동료가 죽었는데 묻어줘야 하나, 불에 태워야 하나, 좀비밥이 되도록 내버려둬야 하나 논쟁이 붙었는데,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잖아요. 그때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그게 문명 아닌가"라고 말한 게 기억나요. 우리가 말하는 문명이란 건 진보인데, 그러기 위해선 생활이 복잡해지고 머리 아픈 선행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다음 책 출간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요?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들을 인터뷰했어요. 무엇이 이들을 공무원의 세계로 이끌었는지를 연구한 거예요. 노량진에 가서 사진도 찍고 함께 밥도 먹고 직접 강의도 청강하면서 취재했어요. 빠르면 올해 11월쯤에 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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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DB 2016.8.29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7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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