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출간 양경수 일러스트레이터 인터뷰
“페이크 커버 씌우고, 회사에서 읽을 거예요ㅋㅋ”(piee***)
“ㅋㅋ 언어유희 甲!! 재미지네요.ㅋㅋ”(unique***)
지난 11월 발간된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도서 상품 페이지에 달린 독자들의 기대평이다. 이 책을 쓴 화제의 작가는 양경수(일명, 그림왕 양치기)다. 이름이 낯설다 해도 그림을 한번 보고나면 ‘그래 맞아, 이 그림’ 하면서 ‘ㅋㅋ’를 백만 개쯤 연발할지 모른다.
‘꿈이 없었던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꿈이란 걸 꾸게 되었어. 퇴사라는 꿈을...’
‘쥐꼬리만한 월급이 들어왔으니 오늘도 열심히 쥐꼬리만큼만 일하고 앉아서 죽때리다 튀어야지 잇힝~!’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중
직장인이라면 겪게 되는 부조리하고 답답한 상황들. 양경수 작가는 직장 문화 속에 가려진 불편함을 특유의 언어유희와 코믹한 일러스트로 포착해냈다. 원래 불교 회화 풍의 그림을 그리는 현대 미술 작가인 양경수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은 지난 5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오우아, 2016년)라는 책의 삽화를 그리면서부터다. 회사의 사축문화(직원들을 가축처럼 부리는 문화)를 꼬집는 진지한 내용에 양경수 표 삽화가 곁들여졌고, 직장인 독자들은 ‘속시원하다’며 열광했다.
덕분에 이 책은 2016년 12월 현재 6쇄까지 찍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보통 책에 실린 삽화들이 초대손님이라면, 이 책에서 삽화는 투탑 혹은 주인공에 가까웠달까. 모 게임회사에서는 이 책을 주문했다가 해고를 당한 직원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책의 존재감은 그저 단순 흥미 거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양경수가 이번에는 삽화가가 아닌 본격 저자로 돌아왔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은 쇼미더머니의 랩배틀을 방불케하는 저자의 촌철살인 비판정신과 코믹한 글, 그림으로 가득 찬 책이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도 그렇게 유쾌할까? 이런 웃픈 상황을 포착해낼 내공이라면 직장생활의 달인, 혹은 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마 많은 독자들이 가져보았을법한 질문. 기자 역시 이런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어느 때보다 유쾌했던 인터뷰 현장, 그 곳은 어느 때보다 수많은 ‘개드립’이 난무했지만, 진지한 인간 양경수도 만날 수 있었다.
양경수의 진지함과 양치기의 약빪, 두 얼굴의 이유
Q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작업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 같다. 어떻게 책 작업을 하게 됐나?
나는 원래 삽화가는 아니었다. SNS에 올리던 그림을 보고 문학동네 이연실 편집자가 함께 책을 만들어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책 내는 게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 그 첫걸음으로 내 그림이 들어간 책이 나온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때 안 했으면 큰 일 날 뻔했다.(웃음)
Q 그 책이 나왔을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곳곳에서 러브콜이 있었을 것 같은데.
광고를 엄청 많이 했다. 현재 광고가 80개 정도 들어와서 쳐내고 있다. 내 그림을 콘셉트로 삼은 빵도 나올 예정이다.(12월 1일 출시됨)
Q 양 작가가 그리는 미술 작품은 불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어떻게 서양화에서 일러스트나 삽화 쪽으로 길을 바꾸게 되었나?
서양화만 하다가는 밥 못 먹고 살 것 같아서 시작했다. 툰은 내 길이 아닌 것 같고, 컷 수를 줄여서 일러스트를 해보기도 했는데 일러스트는 내용을 담기 힘들더라. 그래서 중간 지점을 계속 찾았다.
Q 미술계 하면 ‘한 진지’ 하는 곳이다.(웃음) 어떻게 이렇게 두 가지 면이 공존할 수 있나?
기자분도 그렇겠지만 일할 때와 친구들 만날 때는 각기 다른 사람이 된다. 난 진지한 불화를 그리는 편도 아니었지만, 전시 하면 ‘진지 빨고’ 작가인 척 해야 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나에겐 개드립(순간적 재치로 지어낸 엉뚱한 발언) 치고 섹드립(성에 관련된 발언) 좋아하는 성향도 있는데. 그렇다면 각기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자 싶었다. 덜 진지한 작업을 위해 양치기라는 이름을 지었다. 다스릴 치(治), 자기 기(己)를 써서 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양경수의 진지함과 양치기의 약빰, 이 둘을 같이 가게 된 거다. 나 살려고 한 거다. 사실.
Q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이 ‘약치기 그림’이다. 약치기도 있고, 양치기도 있는데,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가?
원래 가명은 양치기였다. 그런데 그림이 뜨니까 사람들이 나를 약치기 작가라고 부르더라. 그래서 결국 양치기가 그린 약치기 그림이 되었다. 나는 뭐라고 부르던 상관없다. 그래서 양경수로는 불교 미술, 양치기로는 약치기 그림, 웹툰 잡다한 컷, 내가 아가 같은 작업을 하게 된 거다.
“직장 생활 無…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는 건 똑같아”
Q 막상 직장 생활 경험이 없다고 들었다.
직장 생활 경험은 없지만, 스무 살 때 집 나온 후로 쭉 일을 해왔다. 당장 먹고살고 학비도 내야 했으니 나에겐 알바 개념이 아닌 생존이었다. 그래서 파트타임 일보다는 내 일을 찾아서 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남의 돈 빼먹기 쉽지 않다는 것은 너무 잘 알아 왔다. 직장 생활이 어떤 체계 안에서 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남의 돈 버는 건 마찬가지다. 내 그런 경험들을 가장 대변할 수 있는 게 회사원이라고 생각했다.
Q 조직의 논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구체적 상황에 대한 정보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주로 어떻게 얻는 편인가?
대사가 구체적이지 상황이 구체적이진 않다. 사실 수트 입는 회사도 많지 않다. 그렇게 입으면 ‘회사원’ 딱 그런 느낌이 있으니까 그렇게 그렸을 뿐. 친구들 얘기도 듣고,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회사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친구들에게 요즘 뭐가 제일 힘든지 물어보면 “회의 진짜 길게 한다”. “매일 했던 얘기 또 하고, 결국 결론도 안 난다”는 식으로 대답이 나온다. 그러면 난 상상하는 직업이니까 상상을 해본다. ‘왜 결론이 안 날까, 왜 결국 제자리일까, 그건 ‘답정너’이기 때문일 거야’ 이렇게 상황이 그려진다. 괜히 물어보는 척 하지만 사실 이 사람 안에 답은 있으니까. 선배가 “미안한데 이것 좀 해줘”라고 말했다고 한다면, 미안하면 시키질 말아야 하는데 “나 안 미안하니까 이것 좀 해줘”랑 똑같은 말일 거다. 그런 걸 상상하는 거다.
Q 센스 감각이 높은 것 같다.
높다고? 높다는 표현은 좀 그렇다. 그럼 내가 센스 대통령인 건데 하야해야 할 것 같다.(웃음) 내 뒤에 조종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말 좀 배우러 제주도 내려가야 하나? 독일은 얼마 전에 갔다 왔고.
Q 역시 유머감각이 뛰어나다.(웃음) 방송 진출 계획은 없나?
SBS ‘말하는 대로’ KBS ‘명견만리’에 출연 예정이다. 집에 TV가 없어서 처음 ‘명견만리’ 섭외가 들어왔을 땐 ‘명견이 만리 간다’는 뜻의 애견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웃음)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왔다고 스케줄 담당하는 에이전시에 말했더니 명사들이 나와서 강연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알려줬다. 그때야 알았다.
Q 그림을 그리거나 멘트를 쓰면서 고민될 때는 없나?
그림 고민은 별로 안 하는데 멘트 고민은 한다. 참고가 될 사진은 무조건 가장 영혼 없는 상황을 찾으면 된다. 아주 심각한 걸 그리면 재미없다. 심각에 심각이 붙으면 재미가 없고, 오버에 오버가 더해지면 재미가 없다. 그건 내 개그 코드다. 처음엔 사진을 보고 대사를 적었는데, 이제는 한 방의 펀치라인(펀치를 맞은 것처럼 충격을 주는 재치있는 랩 가사) 같은 대사와 상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Q 아무리 센스 대통령, 멘트 천재라지만 생각이 막힐 때가 있을 거다. 그럴 때 달려가는 곳이 있나?
일단 대화를 많이 하고, 여러 방면에 있는 친구들과의 단체 메신저 대화방이 여러 개다. 그들에게 물어본다. 가령 힙합하는 친구들 방에 “내가 쓴 펀치라인 어때?”라고 물으면 대답을 해준다.
“무한경쟁 사회… 내 그림이 소통 창구 되었으면”
Q 책의 부제가 ‘처방전은 약치기’인데, 직장인들에게 주고 싶은 처방전이 있나?
나는 애초에 직장인에게 힐링을 주려고 이런 그림을 그린 게 아니다. 나도 불교니까 힐링에 관해선 스님들 얘기 좀 들었다.(웃음) 스님들 얘기가 소용이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현실은 여기 있는데 자꾸 높은 얘기만 하면 힐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이나 소통이 좋은 치유법일 수 있다. 독자들로부터 ‘그림 통해서 힐링 받았다’ ‘치유해달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스승이나 부모에겐 터놓고 대화하기가 어렵고, 주변 친구나 동료들은 무한 경쟁이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할 창구가 없는 거다. 그래도 내 그림을 놓고서는 “그거 봤어?” “너도 그랬냐?” “나도 그래”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틀 수 있다. 어차피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게 변함없는 사실이라면, 그 안에서 서로 터놓고 공감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Q 포털 사이트에 웹툰 ‘잡다한 컷’을 연재 중이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곡 ‘다 알아’라는 노래까지 나왔다.
함께 작업 해온 동료들 중 눈여겨 본 작업 좋은 친구들 몇이 있다. 이 친구들은 밥값 벌려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자기 작업을 못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들에게 월급은 주되 출퇴근 없이 자기 작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잡다한 OST’도 그렇게 나온 거다. 프로이고 음악도 너무 잘하는데 막상 작업을 해도 돈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세션비, 곡비, 마스터링비 다 주면서 작업을 맡겼다. 그 친구들과 ‘잡다한 컷’에 등장하는 직업마다 음원을 한 곡씩 발표하기로 한 거다. 회사원 시리즈가 끝나면 택배기사 편을 시작하는데, 그 내용으로는 ‘매일 오는 산타’라는 캐롤풍의 곡을 발표한다. 내년 1월엔 스튜어디스 편도 나올 것 같다.
Q 택배기사나 스튜어디스편은 회사원처럼 가벼운 분위기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관심을 많이 받으니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라. 회사원이 아닌 택배기사나 스튜어디스는 불특정다수가 아니니 자칫 희화시키면 그들 전체에게 피해가 가게 된다. 그러다보니 재미는 반감되더라도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엄청 인터뷰를 다니고 있다. 모든 직업군들이 그렇겠지만 택배기사분들은 안 좋은 상황을 많이 겪게 된다. 그런 걸 일인칭으로 보여줄 거다. ‘남들이 이슬을 마실 때 난 이슬을 맞으면서 새벽에 출근한다’ 이런 식. 약간 노잼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 정치 얘기도 너무 하고 싶다. 나라 굴러가는 꼴 그려놨는데 안 어울려서 공개하지 않은 것도 많다.
Q 공개하지 않은 다른 계획이 있다면 말해달라.
‘그냥 회사 다녀요’란 곡이 또 나온다. 요새 강연이 많이 들어온다. TED 한양대 강연도 잡혀 있고, 다음 주에는 전주여고에 가서 강연을 한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이다. 직업을 결정해서 가는 것도 좋지만, 나를 찾고 나서 직업을 결정하면 훨씬 쉽다는 얘길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원래 웹툰작가란 직업을 가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웹툰작가란 타이틀을 얻게 된 것처럼 말이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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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6.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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