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출간 정이현 소설가 인터뷰
정이현 작가가 9년 만에 단편 소설집을 발표했다. 오랜 기다림의 끝, 이번에도 실망은 없었다.
그녀는 2002년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등단 후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등의 장편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고,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등의 단편 소설집에서는 사회에 대한 치밀한 성찰을 보여주었다.
지난 10월 출간된 9년만의 단편집. 세상은 변했고, 자연스레 작품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도 변했다. 정이현이 감지해 낸 것은 ‘상냥한 폭력의 시대’다. 성공을 꿈꾸기보단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사회. 서로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이다. 정이현은 사회구조라는 큰 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 감정 등을 재료로 이야기를 만든다. 개인과 사회가 결코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서울 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작가를 만났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읽기엔 세상이 너무 재밌는 것 같다.”라는 반어법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때로는 잔잔한 수다가 이어졌고, 때로는 사회학자 같은 매철한 분석도 나왔으나, 결국엔 소설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났다.
“조그마한 손톱도 감추고 거리 유지하며 사는 사회”
Q <오늘의 거짓말>(2007) 이후 9년 만에 나온 단편소설집이다. ‘정이현 단편’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가 컸다.
원래 9년 만에 내려한 건 아니다. 장편 쓰느라 단편을 거의 못 썼다. 이러다가는 영원히 단편집을 못 낼 것 같아서 마음먹고 썼다. 2013년 겨울부터 올해 5월까지 쓴 여덟 편 중 일곱 편을 이번 신간에 실었다.
Q 2002년 데뷔 때부터 ‘사랑’과 ‘사회’를 중요한 두 축의 주제로 다뤄왔다. 이번 소설집 작품들은 ‘사랑’보다는 ‘사회’로 더 기울어졌다. 주로 단편이 장편에 비해 더 어두운 정서를 띠는 듯 하다.
원래 사회파 미스터리를 무척 좋아해서 언젠간 장편으로 그런 걸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문제의식들이 단편에서는 조금 더 짧고 명료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네 개의 장편을 썼는데 그중 <너는 모른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내 단편의 느낌과 가장 가까운 장편이다. 그런데 <달콤한 나의 도시> 바로 뒤에 나오는 바람에 달콤한 걸 기대하고 읽었던 독자들은 ‘읽고 난 후 기분이 안 좋았다’며 평점으로 별 하나를 준 경우도 있었다.(웃음)
Q 원래는 이 소설집 제목이 다른 것이었다고?
단편 중 ‘우리 안의 천사’를 표제작으로 하려 했다. 그런데 딱 들었을 때 왠지 일본 소설에 있었을 법한 익숙한 제목처럼 들렸다. 또 모 커피숍 이름과 뜻이 유사하다.(웃음) ‘우리’라는 게 ‘us’(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함께 가리키는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cage’(새나 동물이 거주하는 공간)의 중의적 의미도 갖는다. 그래서 표지에도 그런 의미를 담았다. 그렇지만 의도한 의미가 전달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여겨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꾸게 됐다.
Q ‘상냥한 폭력’이란 말이 참 절묘하면서도 공감이 됐다.
요즘엔 잘 모르는 사이에도 메시지 끝에 꼭 웃는 이모티콘을 붙이고, 바로 답 문자를 보낸다. 서로 예의바르게 행동하지만 정말 속 마음도 그럴까? ‘나는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안전한 사람입니다’를 계속 항변하는 것이다. 상냥한 척, 예의바른 척 가면을 쓰는 위선이 생존 방식이 되어버린 사회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2000년대 초반, 나쁜 여자가 되어 더 성공을 하겠다는 다짐은 20세기적이었던 것 같다. 21세기엔 아무도 성공을 꿈꾸지 않고, 이 자리에서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조그마한 손톱이라도 서로 감추고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런 여러 가지 의미가 상냥한 폭력의 시대란 말에 담겨 있다.
“감정을 폭탄처럼 돌리는 사회…힘없는 동물이나 아기는 그 희생자”
Q 결정적으로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고 느끼게 한 사건이나 현상이 있었나?
아주 큰 사건은 아니지만 동물학대나 영유아 학대 사건이 있었다. 학대를 저지른 사람들이 괴물이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근원을 보면 모멸감의 감정을 폭탄 돌리기처럼 서로 돌리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정이현 소설 왜 이래?’란 얘길 듣고 고심에 빠져 있다고 치자. 마침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고서 평소 같으면 ‘바쁜데요’라고 말하고 끊을 수도 있는 것을 ‘제 전화번호 어떻게 아신 거죠?’라고 공격적으로 맞받아치게 된다. 그러면 또 그 텔레마케터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식으로 감정을 해소할 것이다.
요즘 시대의 모욕은 ‘너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섰을 때 ‘저 사람이 그때 그런 말을 왜 했지? 나를 무시하는 건가?’ 이런 걸 서로 계속 곱씹게 만드는 구조다. 그 구조에서 사람들이 감정을 폭탄처럼 서로 돌리다 보면 결국 제일 낮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말 못하는 동물, 말 못하는 아기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닐까. 사회적인 사건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서로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Q 작품의 서사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그 안에 깨알 같이 살아있는 디테일이 매력적이다. 가령 ‘서랍 속의 집’에서 부동산중개사는 고동색 뿔테 안경을 쓴 오십대 여자라고 설명되어 있고, ‘우리 안의 천사’에서는 주인공이 ‘벼룩시장’을 깔고 페디큐어를 바른다. 자잘한 설정이지만 급격히 현실과 밀착되는 느낌을 준다. 작품 쓰는 데 평소 관찰하는 습관이 중요할 것 같다.
세상엔 여러 다른 유형의 작가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관찰자로서의 작가가 되려 한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보통 사람들과 같이 가는 것. 시대를 정면에서 증언하기보다는 시대를 증언하는 사람이 오늘 아침에 뭘 먹고 나왔을까, 택시를 타고 왔을까 버스를 타고 왔을까, 그는 집에 돌아가면 울까? 후회할까? 그 뒷모습이나 뒤안길을 관찰하고 싶다.
Q 이번 단편집에는 유독 노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우리 안의 천사’ ‘밤의 대관람차’에서도 모두 노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세대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나?
내 소설의 등장 인물이 20~30대 여성이란 편견이 있다. <달콤한 나의 도시> <낭만적 사랑과 사회> <삼풍 백화점> 같은 몇 작품의 인상이 강해서 그런 것 같다. 또 내가 90년대 생을 잘 몰라서 그 세대에 대해서 아직 못 쓰고 있다는 이유도 있다. 쓰려면 더 많이 같이 호흡하고 인터뷰도 해야 할 거다. 나의 옛날만 생각해서 20대는 이렇다고 쓰면 그건 기만일테니까.
나를 포함한 내 또래는 모두 IMF 전 세대다. 우리가 서 있던 조건과 지금 20대의 조건이 너무 다른데 ‘스무살은 다 똑같지’ ‘스무살은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적 자세다. 그래서 내가 아는 세계들이 작품 속에 더 들어오게 된 면이 있다.
Q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의 화자가 남성인데, 처음엔 여성일 거라 생각했다.
두 이야기가 만나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른 경우다. 하나는, 우연히 찾게 된 파충류 카페에서 큰 거북이를 보고, 그런 거북이를 맘만 먹으면 가전제품 사듯이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밖에서 힘든 일이 있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거북이가 어슬렁 걸어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앓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단 얘길 들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자식들 모르게 의료용으로 시신을 기증했다는 거다. 병원비를 아껴서 자식들의 부담을 줄이려던 거다. 자식들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1년 정도 소설을 못 쓰고 있다가 쓰면서 확 풀린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애착이 있는 소설이다.
“불안한 일상에서 견고한 척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
Q ‘좋지 않은 조짐이 있을 때 가장 나쁜 경우를 상상하는 건 사소한 불운을 생애 전체의 불행에 대한 복선으로 확대 해석하는 버릇과 비슷했다.’(‘밤의 대관람차’), ‘내 인생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불운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우리 안의 천사 중)처럼 불행에 대한 성찰을 담은 문장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나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때부터 세상이 얼마나 불안하고 무너지기 쉬운 유리로 만든 집인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견고한 바닥을 걷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얼음이어서 풍 하고 빠질 수도 있다. 그걸 우리는 모르는 상태인 거지. 내가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전에는 유리로 만든 집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시간이 지나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불안한 일상에서 견고한 척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구조를 다 알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관심이 좁혀 지고 있는 것 같다.
Q ‘서랍 속의 집’은 르포 같은 느낌이다. 본격 부동산 단편소설이랄까?
왜 아무도 부동산에 대해 소설을 쓰지 않는 것인가 궁금했다. 작가들끼리 만나도 ‘너희 집 전세 언제 끝나니?’ 같은 얘기는 빼놓지 않고 하는데 말이다. 그 소설을 쓸 때가 우리집 전세가 끝나서 부동산 업자를 따라 수많은 집을 전전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소품처럼 재밌게 시작한 게 이 소설이었다. 문예지에 실린 글을 보고 친한 시인이 전화를 걸어와 ‘왜 이렇게 무서운 걸 썼냐’고 평하기도 했던 작품이다.
Q 주로 여성의 시선을 통해 사람들의 속물적인 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2011년 작고한 박완서 작가의 생각이 많이 났다. 박완서 작가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다면?
좋아했고 생전에 많이 뵌 작가다. 결혼할 때도 오셨고, 함께 점심모임 하는 멤버들과 댁에 찾아가 점심을 같이 하기도 했다. 물론 작가로서도 굉장히 존경한다. 문예지 서평 청탁을 받아 박완서 선생님 산문전집을 다 읽은 적이 있었는데 거의 한국 현대사였다. 1960~1970년대 서울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풍속이 선생님의 소설에 다 나온다.
박완서 선생님을 통해 지금 내가 사는 시대를 내 눈으로 향유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걸 많이 배웠다. 늙는다는 것 나이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조급함 같은 것들이 내 안에서 많이 없어진 것 같다.
Q 유치원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에서 큰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안나'는 그런 사건들을 연상시킨다.
'안나'를 내 과거 소설의 연장으로 많이들 읽는 것 같다. 여자들의 이야기, 계층에 대한 긴장감이 드러나니까. 원래는 동호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서로 어떤 편의에 의해 만나서 확 친해졌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와해되는 동호회 인간관계가 현대적 인간관계 같았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안 외로우려고 모여서 벌어지는 정치 관계를 그리려 했다. 유치원 화제가 뇌리에 딱 박혀서 이슈 위주로 읽는 분들도 많은데 상징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뿐 영어 유치원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웃음) 마침 지금 청소년 소설도 준비 중인데 인터넷 연재 후 책으로 나올 것 같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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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6.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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