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터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진 Jul 03. 2021

이지성이 말하는 ‘알파고 시대’ 자녀 교육법

<내 아이를 위한 칼 비테 교육법> 출간 이지성 인터뷰

200년 전 독일 시골 마을에서 한 미숙아가 태어난다. 보통의 부모라면 적잖은 충격을 받고 실의에 빠졌을 터. 하지만 이 아이의 아버지는 절망하지 않았다. 생후 42개월부터 아이에게 <아이네이스>를 비롯한 유수의 고전들을 접하게 했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아이와 산책하며 눈높이 토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하고 현실 감각을 익히게 했다. 아이의 잠재력을 믿었던 극진한 교육의 결과는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아이는 9살 무렵에 6개 언어에 통달했으며, 15세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어린 박사학위 소지자’로 기재되었다. 결국 19세기 독일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천재 법학자가 되었다. 물론 정서적으로도 무척 행복한 삶을 살았다. 이렇듯 기적 같은 교육 신화를 이룬 아버지는 바로 칼 비테. 그의 교육법은 몬테소리, 프뢰벨, 페스탈로치와 같은 교육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이런 공부법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적어도 하루 종일 학원 안에 갇혀 지식을 달달 암기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꿈꾸는 다락방> 등의 책으로 대한민국 ‘인문학 열풍’의 진앙지에 있던 이지성. 그가 이번엔 <내 아이를 위한 칼 비테 교육법>(차이정원/ 2017년)으로 돌아왔다. 미녀 당구선수 차유람과의 결혼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지성은 2015년 아버지가 되었다. 직접 아이를 기르는 아버지의 마음이어서일까? 칼 비테 교육법에 대한 그의 접근은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지난 8월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교육’ 아닌 ‘문화’로 접근하라…부모 바뀌면 아이도 바뀌어

Q ‘칼 비테’, 낯선 이름입니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물임에도 그에 관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그만큼 중요한 학자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왜 꼭 칼 비테여야먄 했나요?

칼 비테는 자기 자녀를 잘 키웠으니 제일 어려운 실전 테스트를 통과한 분이시잖아요. 위대한 거죠. 다른 교육학자들은 남의 자식을 잘 키웠잖아요. 저도 우리 아이 교육해보려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요. 거의 불가능한 경지죠.(웃음) 아이를 키우면서 칼 비테에 대해 더 크게 놀라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걸 했을까…….

Q 우리나라 밖에서는 칼 비테가 무척 중요한 교육학자로 취급된다고 쓰셨어요. 

칼 비테의 책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자녀교육서의 고전 중의 고전이에요. 교육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읽는 책이고요. 아시아에도 칼 비테 붐이 일었어요.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칼 비테 붐이 일어서 일본 부모님들은 칼 비테를 거의 다 알아요. 중국은 2000년대 초반에 칼 비테 붐이 있었죠. 그래서 지금 칼 비테 관련 책이 가장 많이 나온 곳은 중국이에요. 이렇게 일본, 중국, 유럽, 미국의 부모들에게는 상식이 된 칼 비테를 우리나라만 모른다는 데에 대한 저의 답답함이 있었어요.

Q 작가님께서도 2000년부터 2008년까지 교사 생활을 하셨죠.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 수업을 진행하셨던 에피소드도 유명한데요. 당시에도 칼 비테를 아셨나요?

교대에 다니던 시절 칼 비테를 처음 알게 된 후 충격을 받았어요. 만일 제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면 말도 안 되는 교육 판타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지라 충격을 받았어요.

Q 딸 한나에게도 칼 비테의 방식대로 교육하시는지 궁금해요.

딸한테 <아이네이스>를 읽어줬더니 10분을 못 참고 바로 뽀로로한테 가버리더군요.(웃음) 어떻게 칼 비테와 똑같이 하겠어요? 거기서 최소 가능성에 대한 희망만 봐도 대단한 거죠. 우리가 대한민국 교육에서 어떤 갈증을 느끼잖아요. 반면에 독일에서는 이 갈증을 이미 해결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고요. 그런 갈증을 해결하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니며, 다른 교육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가능성만 열려도 큰 소득이죠.

제 딸이 뽀로로, 콩순이를 너무 좋아하는데, 사실 책은 거의 못 읽혔어요. 그런데도 21개월인 아이가 언어 수준과 지적능력은 5세 수준이래요. 이유를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 책이 5톤이 넘어요. 아빠는 매일 일어나서 책 읽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엄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데려가고요. 이런 문화에 있다 보니 저절로 그리 성장한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여태까진 좋았지만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죠.

Q 별도로 아이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닌, 가정의 분위기 그 자체가 교육인 것이군요.

저는 칼 비테 교육법도 문화였다고 봐요. 칼 비테는 시골 목사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유명 독일 사립 학교에서 초빙을 받을 정도의 교육 전문가였거든요. 칼 비테 주니어는 교육이 아닌 문화의 혜택을 입고 자란 거예요. 교육이 학교에서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라면, 문화는 자연스럽게 젖어 드는 것이죠. 그러면 부모가 아이를 (공부하도록) 잡을 필요 없어요. 부모가 자신을 먼저 가꾸면 아이들도 행복해져요. 칼 비테의 교육법에서 이 부분만 힌트를 얻어도 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교육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Q 책에서 칼 비테만의 자유분방하지만 자녀의 지능을 길러주는 다양한 교육법을 소개하셨는데요. 그 중 독자들에게 특별 추천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요?


칼 비테는 자녀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자녀교육에 대해 가진 커다란 명제는 선한 것만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하지만 칼 비테는 그렇지 않았어요. 악을 제대로 알려주고 그것을 바로 보게 해서 이것을 통해 선을 가르쳤어요. 저는 이 대목에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야말로 굉장한 교육법이라는 말씀을 해드리고 싶어요.


또한 칼 비테의 방법(책의 뒷 내용 상상하며 읽기, 책을 세 번 이상 읽기 등-기자 주)대로라면 아이에게 하루 30분만 책을 읽혀도 충분히 대단한 아이를 만들 수 있다는 거잖아요. 저도 사실 칼 비테를 알기 전엔 책을 오래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칼 비테는 왜 책을 하루 여섯 시간씩 읽느냐고, 그 시간에 놀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과도한 교육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망가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인문학 교육 필요


Q 부모님들도 머리론 다 이해하지만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안하고 답답해져서 더 많은 공부를 강요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사고방식의 전환을 해야 해요. 지금은 알파고가 나오는 시대거든요. 그런데도 아직 학력고사, 수능세대의 관점에서 교육에 접근하는 건 아닐까요? 일본은 2020년에 우리나라 같은 입시 교육이 완전 폐지가 된다고 해요. 인공지능 시대에 아무리 외워봤자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인재를 기르는 교육을 하겠단 거죠. 이게 바로 칼 비테가 지향했던 교육이에요.


Q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의 80%가 그들이 40대가 되었을 때 쓸모없는 것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는데요. 이런 전환의 시대에 어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결국 인문학 교육이에요. 인공지능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 된 걸로 움직이잖아요. 자신이 가진 정보 이상으로 창조를 못 하죠. 더 쉽게 말하면 인공지능은 정보로 판단을 하는 건데, 정보는 여태껏 입시교육이 담당해온 영역이었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커피의 역사나, 아이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해서 커피콩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인공지능이 더 잘 알아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건 인공지능이 할 수 없어요.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인문학밖에 없는 거죠. 새로운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바로 인문학 교육이겠죠. 여태까지 없던 생각을 스스로 하는 아이가 더 인정받는 구조로 바뀌는 쪽으로 교육의 기준이 바뀌어야 해요.


Q 칼 비테는 주니어 칼 비테가 생후 45개월 때부터 계속 서양의 고전을 읽혔는데요. 우리 부모들이 아이에게 고전을 읽힌다면 어떤 책을 읽힐 수 있을까요?


세 방식 중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아이에게 서양 스타일의 교육을 하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호메로스>나 플라톤부터 시작해야겠죠? 동양 스타일로 하고 싶다고 하면 <논어>를 읽히면 되죠. 그것보다 우리 역사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 최치원 선생의 <새벽에 홀로 깨어>라든지 <일득록>을 읽히면 돼요. 여기서 조금 더 발전시키고 싶다면 플라톤을 읽고 그리스에 가서 연관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중국 산동성 지역 태산에 가서 공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요. 외국에 가는 것이 힘들다면 우리나라 역사 탐방을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시간과 공간이 결합되면 훌륭한 문학 교육이 돼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저도 집에서 스마트폰을 보는데 주로 우리 역사에 관한 글이나 미술 작품들을 많이 봐요. 제가 그렇게 하면 아이도 따라 하겠죠. 언제까지 자극적인 연예 기사에 인생을 낭비할 것인가? 그것의 20~30%만 내 성장에 투자를 해도 내가 확 바뀌고 아이가 바뀌고 내가 아이한테 하는 말이 달라지는 거예요. 비로소 대화가 되는 거예요.




국‧영‧수, 인문학으로 대체…입시 관점으로 접근한 인문학 교육 아쉬워


Q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이 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중심에 계셨던 분으로서 우리나라 인문학 발전에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각각 평가하신다면요?


긍정적인 면은 한국인들이 드디어 어려운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기라도 시작했다는 것이에요. 제가 추천한 책 중에 <발해고> <소크라테스의 변명> <논어> <최치원의 새벽에 홀로 깨어> 네 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어요. 부정적인 면은 입시의 관점으로 접근해서 인문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국‧영‧수가 플라톤, 논어, 맹자로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게 안타깝죠.


Q 작가님의 인문학 교육은 단순히 책이나 교실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빈민촌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사업도 지속해왔고, 교육에서 소외된 다양한 계층을 위해 ‘인문학 프로젝트’를 시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CJ 도너스캠프가 전국지역아동센터 4,700곳, 그곳의 아동 50만 명 정도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요. 이곳과 연합해서 우리나라 전국지역아동센터에 인문학을 보급하는 프로젝트를 최근에 시작했어요. 북한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하고 싶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바람에 계속 길이 막혀왔어요. 최근에야 인문학 교육으로 탈북 청년들을 우리 사회의 리더로 세워나가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외국 빈민촌에 22개 정도의 학교를 세웠는데요. 학교 건립은 계속하겠지만, 그것과 더불어 해외 160개 빈민촌 학교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봉사자들에게 인문학 교육 과정을 보급하는 프로젝트를 일단 몽골에서 시범으로 시작했어요.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이것을 구체화시켜서 3~4년 뒤엔 진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유의미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출간될 예정인 책들이 있나요?


<논어>를 스토리텔링으로 쉽게 풀어쓴 책을 기획하고 있고요. 지금까지 제가 세운 해외 학교를 방문한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서 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DB 2017. 9. 12.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0803

매거진의 이전글 주진우 "하면 안될일한 이명박, 할 일안한 박근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