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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l 03. 2021

주진우 "하면 안될일한 이명박, 할 일안한 박근혜"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출간 주진우 인터뷰

한 남자가 다른 한 남자를 쫓는다. 쫓는 남자의 직업은 기자다. 그는 편파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지킨다는 자존심 하나로 먹고산다. 그가 쫓는 상대는 대통령이라는 국가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몇몇 굵직한 의혹도 제기됐으나 여전히 그의 권력은 건재하다. 기자는 전직 대통령이 숨긴 어마어마한 비리를 밝히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게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영화에서는 보통 기승전결의 전개에 따라 전자가 후자를 이기며 끝이 난다. 그렇다면 현실 속 이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날까?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새로운 책을 냈다. 이름하여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푸른숲/ 2017년).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겨냥했다. 과거에도 주진우 기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관련된 보도로 여러 차례 특검 조사를 이끌어 낸 바 있다. 2008년의 BBK 특검, 2012년 내곡동 특검이 그것이다. 이 책은 오랜 기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쫓았지만 결정적 증거 포착은 미수에 그쳤던 한 기자의 실패담이며, 앞으로 ‘핵폭탄급’ 특종을 터뜨려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선전포고다.

주진우 기자에겐 여러 별명이 따라붙는다. ‘악마 기자’, ‘소송 전문 기자’, ‘삼성 전문 기자’, ‘이명박 전문 기자’ 그중엔 ‘대한민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판 기자’라는 별명도 있다. 이번 책도 명불허전. 취재원을 향해 애절하게 ‘숨겨진 계좌’ 정보를 달라고 요구하는 주진우 기자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자신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든 아내에게 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져 오기도 한다. 책장을 덮고 나자 파란 책 표지 위에 새겨진 주 기자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든든해 보이기도 했지만 홀로 선 모습이 몹시 외로워도 보였던 것이다. 8월 16일, 서울 충정로의 커피숍 벙커원에서 ‘주 기자’를 만났다.


“모든 장을 소송 각오하고 썼다”

Q 작년 10월 <악마 기자, 정의 사제>가 출간됐을 때 함세웅 신부님과 더블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날지 불투명했고, 희망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일 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기자님께서는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오늘 아침에는 한 후배 기자가 “선배 책이 대형 서점 한가운데 있어요, 많이 있어요.”라고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왔어요.(문자 내용이 뜬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며) 대통령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사회가 더 변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일환이 ‘이명박 프로젝트’입니다.

Q 아직도 멀었다는 말씀이시네요.

국정원의 미행 감시가 사라지긴 했어요. 하지만 아직은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진 못해서 몰래몰래 만나고 있어요. 아까는 이번 책이 나온 후 CJ 계열 방송사의 한 채널에서 인터뷰 약속을 잡아 놓고 중간에 취소하는 일이 있었어요. 아직도 그래요. 대통령이 바뀌고 청와대는 몇 사람 바뀌었지만 사회는 아직 그대로라는 걸 느끼고 있어요. 제가 무슨 일을 더 해야 할지 생각을 하고 있죠.

Q 기자님 페이스북을 보니 그저께(8월 14일)는 내란선동죄로 출석요구서를 받으셨던데요.

그래도 김어준은 음화반포죄예요. (기자 : 음화반포죄에 왜 걸리신 거예요?) 여기(벙커원 카페)에서 ‘더러운 잠’이란 미술작품을 전시해서요. 그래도 제가 낫죠. 내란선동죄가 음화반포죄보다 훨씬 낫다는 걸 꼭 써주세요. 그런데 이런 고소고발 건은 저한텐 익숙해요. 열 건인지, 열한 건인지, 열두 건인지는 상관이 없어요. 시대가 변했는데도 이런 출석요구서을 받는 것 자체가 조금 씁쓸하긴 해요.

Q 세상이 바뀐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삼엄한 시대인 것 같아요.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같은 책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었나요?

이 책의 모든 장이 소송을 각오하고 쓴 기사예요. 이 책 때문에 소송이 걸릴 것은 불 보듯 뻔해요. 주요 정보기관 요직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드러내지 않고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용 중 어떤 부분은 많이 가려지기도 했고요. 저를 도와준 수많은 ‘빨대’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Q 책에서 크리스티나, 마농, 앤써니와 같은 수많은 정보원이 등장합니다. 그들과 수백 번씩 만나고, 밥도 먹고 싸워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도 해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중간에 있는 굉장히 특별한 관계인 것 같아요.

기자 일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일처럼 비쳐지는 것 같은데 사실은 보통 관계와 똑같아요. 그냥 사람 간의 관계예요. 제가 운 좋게 좋은 기사를 쓰게 된 이유도 여기 있어요. 내 여동생을 소개해주고 싶은 친구, 내 이야기를 함께 고민하고 싶은 친구가 있잖아요. 이것처럼 제보자들이 저를 좋은 기자라고 확신해서 이야기해줬던 것 같아요.

저는 백 가지 노력을 해도 하나를 얻기 어려운데 그분들은 하나 두 개씩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으니까 저로선 안타깝죠. 그래서 조르다가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취재원들을 가리고 어디까지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커요. 소송이 걸리면 저는 괜찮아요. 아까 말했듯이 열 개 걸리나 열한 개 걸리나 별로 상관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송이 주는 압박감이 굉장히 크거든요.

Q 소송이 걸릴 거라고 예상하세요?

저는 소송을 예상하고 썼고 소송을 준비하고도 있습니다. 소송이 걸려서 따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명박이란 거대한 권력이랑 싸우는데 제가 질 수도 있고 어떻게 될 수도 있어요. 어찌 보면 감옥에 갈 수도 있죠.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검증하고 따져보고 싶어요. 그 과정도 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어요.

Q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 이번 책에 대해 반응을 보여왔나요?

얘기하고 싶지 않겠죠. 그와 관련된 책이 나왔을 때마다 봤을 거예요. 이명박 주변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대응할 서류를 몇 가지 가지고 있는데 그 친구들이 반응해 오면 그걸 마구 폭로할 거예요.

Q 주 기자님께서 온 열과 성을 다해 쫓아다닌 한 사람, 왜 이명박 전 대통령이어야 했나요?

저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 돈과 취업에 목매고 각박하게 인간성을 말살하면서까지 출세와 돈의 노예가 되는 구조가 이명박 집권기에 고착화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사람 사는 세상이 공론화가 되다가, 이명박 때부터 빈익빈 부익부라는 자본주의의 극단적 폐단이 고착화 되고 극단화됐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회의 방향을 되돌려야 하는데 그래서 이명박의 실체를 조금 알려주고 싶어요. 여러 사람이 보고 좀 느꼈으면 해요.

“이명박 처벌 결과…국민들이 깨어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져”

Q 탄핵 전후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곤두박질 치다 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후하게 평가되는 면도 있었어요.

유시민 선배랑 당구 치다가 나온 말인데요. 박근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박근혜가 꼭두각시놀음을 하도록 그림을 그리고 길을 깔아준 건 이명박의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어요. 이명박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너무 많이 했고, 박근혜는 해야 할 일을 하나도 안 했어요.

Q 책의 내용을 보면 사법 차원에서 충분히 이명박 전 대통령을 처벌할 수 있었음에도 검찰은 처벌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아무리 핵폭탄급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결국 처벌은 어렵다는 뜻도 돼요.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쓴 건데요. 작년에 박근혜가 탄핵이 되고 구속이 되었잖습니까? 그건 국민들의 힘이었어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개인의 사욕을 위해 국정을 농단한 사건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처벌이 된 거예요. 사법부에만 맡겨 놨으면 박근혜를 구속했겠습니까? 박근혜를 탄핵시켰겠습니까? 국민들이 깨어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지금껏 BBK 의혹, 다스 실소유주 의혹, 차명 재산 의혹 등 이미 나온 증거는 많아요. 그런데도 검찰과 경찰들이 다 덮어줬잖습니까? 하지만 이걸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우리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냉철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이야기를 공론화하려고 생각했어요. 저는 민간인이고 기자예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어찌 보면 이 책은 실패기이기도 하잖아요. 여기로 쫓아갔는데 실패하고, 저기로 쫓아갔는데 실패하고…. 그런데 공권력이 국세청이 검찰이 나서면 잡을 수 있어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금융권에 이명박의 사람들이 다 들어갔고, 몇백억 원, 몇천억 원이 해외에 그냥 막 투자가 돼요. 그리고 다 사라졌어요. 이게 다 우리 국민들 돈이니까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 합하면 그 돈이 수십 조, 수백조 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걸 찾아오면 국가 복지를 위해서도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 5촌 조카 살인사건 취재 중 신변 위협을 당한 일도 있었지요. 아내 분께서 주 기자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가입해 둔 이야기도 책에 나오는데 읽으며 코끝이 찡했어요.

원래 일억 원짜리 생명보험을 들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오천만 원짜리 밖에 못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이야기하며 웃지만 당시에 집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나봐요. 저희 집은 비상이었어요. 제가 도망가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미행과 감시, 협박에 살았어요. 희망된 조국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텐데 아직은 조심하고 있습니다.

Q 책에 담지 못해 아쉬운 얘기가 있나요?

취재원만 밝힐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얘기가 더 많았어요. 사실 제가 책은 빨리 썼는데 뼈대와 살들을 그대로 살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나중에 하나둘 씩 공개할 수 있는 길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바뀌고 그분들이 좀 더 안전해지면 제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명박은 영감을 주는 인물,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은 취재원”

Q 얼마 전 ‘시사인’ 517호에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 청탁 문자 메시지 보도로 특종을 터뜨리셨죠. 주요 일간지 및 방송사는 이 이슈를 보도하지 않고 있어요.

포털과 언론은 아직도 구시대에 살고 있고 돈과 권력에 종속됐다는 게 그대로 보여져요. 사실 작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조차 버려야 할 카드였어요. 그래서 마구 때렸는데 삼성과 이명박은 아직도 권력이 인 거예요. 그래서 쉽지 않아요.

Q 책 발간에 맞춰 가수 이승환 씨가 ‘돈의 신’이라는 제목의 북 OST를 발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래퍼 MC메타도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사회과학 서적과 대중가요의 조합이 새로워요.

이명박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면 재밌는 일은 다 해요. 저에게 이명박은 굉장히 영감을 주는 인물,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은 취재원입니다. 북 OST를 위해 저와 MC 메타 형이 가사를 썼고 백종열 감독이 뮤직비디오도 만들었어요. 이명박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저희들이 도시락 폭탄을 가지고 뛰어들어요.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없으면 저희는 가서 그냥 사망할 거예요.

Q ‘저수지 게임’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나온다고 하던데요.

진실을 좇을 때 저는 민간인이라 진실을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얘길 들어보면 “그 얘기가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영화나 영상이 주는 힘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명박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큐를 하자는데 응했어요. 제가 비자금 저수지를 찾아가는 몇 가지 취재에 다큐 팀이 동행했는데 아직 완성된 영상을 저는 못 봤어요. 정작 중요한 취재가 있으면 제가 자꾸 도망가는 바람에 감독님이 고생하셨죠.

Q 오늘날 ‘주 기자’는 마치 고유명사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 같아요. 늘 사회 고위층의 비리가 터지는 곳엔 주진우 기자님이 있어요. 이렇게 한 번 취재원을 잡으면 끝까지 놓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남들보다 잘나거나 많은 노력을 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삼성과 이명박 같은 거대 권력에 대해 기자들은 잘 알아요. 그들과 잘 지내면 얼마나 큰 혜택이 올 지를 알고 그 사람들과 잘 지내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잘 산다는 의미는 그렇지 않아요. 돈이 많거나 권력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에게 잘 사는 것은 정의롭고 나에게 떳떳한 거예요. 기자로 사는 동안은 이렇게 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Q 만약 그동안 쫓아 온 이명박 전 대통령에 관한 의혹의 실체가 드러난다고 했을 때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책에서 예고했듯이 몇 개의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기사로 인해 이명박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그분이 토론의 장에 올라오고 실체가 드러나면 기자의 역할은 다 한 것으로 일단 목표를 세워두려고요. 저도 좀 놀아야죠. 저도 좀 살아야죠.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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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7. 8. 24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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