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독서 수업> 저자 한미화 강연 스케치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10명 중 7명은 매주 유튜브를 시청한다고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요즘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 스마트폰과 친하게 지내왔다. 도저히 심심할 틈이 없는 세상을 살아온 아이들. 이들이 책과 만나도록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은 부모들에게 지상 과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책을 쥐여주려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책이라면 질색하는 아이, 책을 읽다가 싫증내는 아이, 학습 만화만 읽고 싶어 하는 아이…’독서 교육’이 처음인 아빠ㆍ엄마에겐 막막한 순간이 한둘이 아니다.
25년 차 어린이 책 전문가 한미화가 쓴 책 <아홉 살 독서 수업>(한미화/ 어크로스/ 2019년)은 ‘독서 교육’에 갈급한 이 시대 부모들의 S.O.S에 응답하는 책이다. 독서 교육에 대한 기초 지식부터, 책을 거부하는 아이 유형별 대처법,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독서 교육 팁, 어린이 책으로 아이 속마음 파악하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 막 독서 습관이 형성될 나이인 초등 저학년 대상 독서 교육에 귀중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지난 9월 5일 서울 한남동 북파크에서는 ‘독서 교육’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학부모를 초청해 ‘부모가 알아야 할 초등 저학년 독서의 모든 것”이라는 강연이 진행됐다.
읽기를 ‘굳이’ 훈련해야 하는 이유?
현재의 부모 세대에게 책 읽기는 ‘권유의 대상’이었지 ‘학습의 대상’까지는 아니었다. 요즘 아이들이 독서, 읽기까지 훈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들은 알게 모르게 문자 중심의 시대를 살아왔어요. 내가 그렇게 책벌레였던 적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자랄 때는 교육 과정 속에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읽는 뇌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도 600페이지 책을 읽으라고 하면 힘이 들죠. 하지만 요즘 저학년 아이들은 비정상적으로 시각 문화가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어요.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전에도 애니메이션에 길들여 자라왔죠. 아직 핸드폰이 없다고 하지만 식당에 가서 아이들이 울어 재끼면 핸드폰이라도 줘야 하잖아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시각 문화에 길들여지면서 아이들이 영상으로 문자를 읽게 됩니다.”
이런 매체 변화 속에서 한미화 선생은 더 큰 변화를 예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적절히 읽어내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교육도 어려워진다.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우리는 책을 안 읽는다’, 이런 얘기 많이 하는데 그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읽기에 관한 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그걸 정확히 캐치 못 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읽는 뇌’는 적어도 초등학교 6년 동안 반복적으로 꾸준히 연습을 해서 만들어지는데요. 이게 없으면 아이들이 훑어읽기나 지그재그 읽기나 건성으로 읽기에 길들여져요. 그러다 보면 나중에 영영 ‘고급한 독자’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여기서 태어나는 겁니다.”
아이들이 고급 독자가 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순한 지식 증대나 이해력 향상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에서 읽기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읽기는 생각하기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테드 창이라는 SF 작가가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소설이 ‘콘택트’라는 영화로도 나왔거든요. (영화 스틸컷을 가리키며) 여기 주인공이 언어학자예요. 외계인이 지구에 왔는데 언어가 달라서 의사 소통이 안 되니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주인공이 파견된 거죠. 마침내 그녀가 외계인의 언어를 해독해낼 때 놀라운 일이 생겨요. 외계인은 미래를 볼 수 있는데 이 여자도 미래를 볼 수 있게 돼요.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언어라는 것이 사고의 집’이라는 거예요. 언어를 이해하면 그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많이 들은 아이가 읽기도 잘한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워주고 싶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여러 벽에 부딪히게 된다. 한미화 선생은 읽기 훈련이 덜 된 초등 저학년 아이에게 부모가 소리 내 읽어줄 것을 권한다.
“이때의 읽기는 어릴 때처럼 막무가내 읽기가 아니라, 약속을 하고 하는 거예요. 잠자리 읽기가 제일 좋아요. 잠자리에서 15분간 3~5페이지를 읽는다는 식으로 짧게 약속을 해서 엄마와 아이가 책이라는 공동의 관심을 놓지 않도록 이어간다면 아이가 금방 ‘스스로 읽기’로 떠나버립니다. 제게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언제까지 읽어줘야 해요”인데 그럴 때마다 저의 대답은 “평생 읽어달라고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네 가지 능력은 각기 동떨어져 한 가지만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발달한다. 따라서 많이 들은 아이가 말도 잘하고 읽기도 잘한다. 읽어주는 교육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말인 구어(口語)와 책에서 구사하는 말인 문어(文語)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고 이제 글자를 배웠을 뿐이에요. 문어의 세계가 익숙하지 않아요. 문어의 세계를 담은 이야기들을 누군가 읽어주는 소리를 듣는 게 훨씬 이해가 빨라요. 어려운 글도 누군가 소리로 들려주면 그만큼 어렵지 않죠. 그리고 누군가 읽어준다면 그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겠죠? 그래서 듣다가 물어볼 수도 있죠. 아이가 너무 많이 물어보면 다 읽고 얘기하자고 하셔도 되지만 간단히 물어보는 건 중간에 끊고 대답해주셔도 무방합니다.”
글을 읽기는 하나 정독하지 않고 흘려 읽는 경우라면 이번엔 아이에게 소리 내 읽도록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한미화 선생은 말한다. 하지만 묵독에 길들여진 아이라면 이런 낭독을 힘겨워할 수 있다. 나아가 낭독을 시킬 때는 부모로서 주의할 점이 있다.
“아이가 글을 읽다 보면 틀리게 읽을 때가 있죠. 옆에 있는 어른들은 그걸 못 참고 지적을 해야 마음이 편해요. 그런데 아이가 지적을 한 번, 두 번만 들어도 더 이상 소리 내어 안 읽어요. 그래서 영미권에는 ‘리드 투 더 독(Read to the dogs)’이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훈련 받은 강아지를 도서관에 배치해서 아이들이 강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겁니다. 그러면 큰 장점이 개는 지적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웃음)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아주 놀라운 효과를 거뒀다고 해요. 만약 집에 개가 없다면 인형이나 거북이, 동생 등 그 역할을 해줄 아이의 친밀한 대상을 생각해보면 머리에 떠오를 거예요. 책에 나오거나 이웃이 실행한 방법 중에 내 아이에게 일대일로 적용되는 건 많지 않습니다. 그걸 아이에게 맞게 적용하다보면 그 안에 답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어 한미화 선생은 당장 아이가 명작, 고전 등을 읽지 못한다고 해도 조바심을 느끼지 말고 계속 읽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안 읽는 게 아니라 못 읽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의 독서 이력에서 중요한 건 ‘재밌다는 경험’이다. 그래야 독서를 지루하고 따분한 활동이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것은 평생 독서에도 영향을 준다.
“저학년 아이들은 책이 재밌다는 경험이 많이 쌓여 있어야 해요. ‘책은 참 재밌는 거야’, ‘내가 책을 읽었더니 선생님이 나한테 칭찬도 해주셨어’ 그런 작은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야 아이가 책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고요. 책이 재밌고 만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을 자꾸 갖도록 하는게 열 살 미만 저학년에게 중요해요.”
한미화 선생은 강연의 끝에서 단순히 학습능력 향상이나 뇌 발달에 좋다는 것 외에 더 큰 독서의 효용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우리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 중에 읽기는 정말 좋은 습관입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어려운 순간이 많고, 어느 한 사람 나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순간도 분명히 찾아옵니다. 그럴 때 책 읽는 습관이 있었던 아이들, 어릴 때 책을 즐겁게 읽는 경험이 있던 아이들은 책으로 다시 와요. 그 안에서 위안을 받거나, 방법을 찾거나, 친구를 삼고 그걸 동력 삼아 또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 책을 친구로 삼은 사람들은 결코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책 읽기가 물려줘야 할 아주 중요한 습관이라고 반복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학부모 Q&A] “열 살 때까지는 아날로그를 충분히 누리도록 해주세요”
Q 아이가 늘 재밌는 책만 읽어도 되나요?
재밌는 책 가운데 한 권 정도는 좀 괜찮은 동화책을 슬쩍슬쩍 끼워 넣으면서 병행하면 좋아요. 100% 엄마가 원하는 책으로만 채우면 아이와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게 해주돼 비율을 정해보세요. 5권이면 2권 정도는 엄마가 읽고 싶은 책을 읽자고.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는 부족하지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해서 자기 생활 습관을 만들고 그걸 지켜나가는 훈련을 할 수 있는 나이에요. 조금 시간이 걸려도 서서히 섞다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이건(재미만 있는 책) 안 읽고, 저것(의미도 있는 책)만 읽는 날이 와요.
Q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에게 매일 책 읽는 숙제를 내줍니다. 그림책일 경우 하루 세 권, 저학년 문고일 경우 한 권을 읽으라고요. 아이는 칭찬 받는 게 좋은 건지 하긴 하는데 너무 빨리 다 읽어버려요. 숙제로 내줘서 의무로 읽는 건 아닌지, 건성 읽기가 습관이 된 건 아닌지 걱정 됩니다.
그림책 같은 경우는 그림책 공부하는 분이나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얘기해도 묵독으로 읽으면 정말 재미없다고 얘기해요. 그림책이 가장 재밌을 때는 남이 읽어주는 걸 읽을 때죠. 그림책은 어른이 읽어도 글자만 읽고 끝이에요. 그림책이란 장르 자체가 읽어주라고 있는 장르거든요. 그림책은 부모님이 직접 읽어주셔야 아이는 그 순간에 그림을 볼 수 있어요. 아이가 건성으로 읽는 지는 한 페이지만 소리 내어 읽는 걸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낭낭하게 읽는다면 자동 독해로 잘 읽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막상 소리 내어 읽으라고 시키면 안 읽을 테니 아이가 한 페이지, 부모가 한 페이지씩 번갈아 읽는 식으로 아이의 읽기 수준을 파악해보세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꾸준히 읽는 거예요.
학부모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경우 중 하나가 아이가 읽긴 읽었는데 대체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예요. 이 때 아이가 이해는 했지만 표현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이게 왜 좋은지, 왜 싫은지 주인공이 어떤 마음인지 이야기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고급 능력입니다. 이걸 능숙하게 해내는 아이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걸 하길 어려워해요. 그럴 땐 부모님이 같이 해주세요. 제가 권하는 건 아이가 읽는 책을 부모님이 같이 읽는 겁니다. 아이가 읽는 책 중 한두 권이라도 같이 읽으면서 감정을 물어봐주세요. 말로 물어보면 아이는 얘기할 수 있어요. 독후감 쓸 때도 줄거리를 간신히 쓴 아이에게 비판적 사고를 원하시는데 훈련이 안 되어서 아이가 어려워하는 거예요. 질문을 던지고 아이가 말한 것을 적도록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Q 쓰기도 훈련이라고 생각해서 아이에게 매일 하루에 한두 줄이라도 써보도록 하는데, 억지로 쓰게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과 과정에서 많이 권장하는 게 일기 쓰기입니다. 다만 일기가 또 하나의 숙제가 되어서 문제가 되는 거죠. 이럴 때 제가 가장 많이 권하는 방법은 일상에서 쓸 일을 많이 만들어보는 거예요. 하다 못해 마트에서 구입할 물건 리스트를 쓰기도 하고, 해외 여행을 가서도 엽서 사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거예요. 생일 파티 초대장도 쓸 수 있고요. 아이에게 할 말이 있거나 집을 비울 때도 일부러 메모를 남기고 거기에 답을 달게 하는 거죠. 하지만 처음엔 잘 안 달아요.(웃음) 그게 쌓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익숙해지면 조금씩 달라집니다. 생일 파티 초대장도 직접 쓰게 할 수 있고요. 일단 ‘일기 쓰기’의 밑 단계로 일상에서 자꾸 손글씨 쓰기를 시켜보세요. 특히 열 살 미만 아이들은 아날로그 방식을 많이 체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극, 감각, 경험에 의해 아이의 뇌는 발달하고 똑똑해지고, 이건 아날로그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열 살 정도까지는 아이가 그걸 충분히 누리도록 도와주세요.
- 글 : 주혜진(북DB 기자)
-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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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1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8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