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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r 02. 2022

‘책 읽는 셰프’유재덕“진정한 ’미식’ 열풍 불었으면”

<독서 주방> 출간 유재덕 인터뷰

침이 꼴깍 넘어가고, 깔깔 웃음이 터지다가 끝내 눈과 코가 찡해졌다.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조리팀장 유재덕 셰프가 쓴 <독서 주방>(유재덕/ 나무발전소/ 2019년)을 읽고나서 그랬다. 최근 몇년간 한국사회에선 ‘음식’에 대한 관심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서점가에도 맛이나 음식 관련 화두를 던지는 책이 여러 종 출간되었다. 매일 음식을 만들고 24시간 음식에 대해 생각하는 셰프는 이런 책들을 어떻게 읽었을까? <독서 주방>은 ‘책 읽는 셰프’ 유재덕의 본격 음식 책 서평집이다. 문화생태학자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부터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까지…다양한 음식 관련 책을 통해 먹는 얘기, 삶 얘기를 이끌어낸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초등학교 동창 김성신 출판평론가와의 인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36년만에 동창회에서 마주친 두 중년 남성은 색다른 우정을 맺었다. 서로의 관심사인 책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둘은 꽤 잘 통했다. 가장 감각적인 분야인 ‘식(食)’과 가장 관념적 분야인 ‘서(書)’의 만남이었다.

출판평론가 친구는 어느 날 대뜸 요리사 친구에게 책을 권하기 시작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음식을 관찰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책들은 주방에서 칼질을 할 때나, 새로운 메뉴를 구상할 때 그의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평생 주방에서 칼과 불을 갖고 놀던 셰프는 펜을 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출판평론가는 친구의 글을 묶어 한 편의 책으로 기획해냈다. 그렇게 <독서 주방>이란 책이 탄생했다.

유재덕 셰프의 근무지인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요리사 특유의 흰색 긴 모자인 ‘토그’와 새하얀 유니폼을 입은 그는 불과 칼이 오가는 주방에서 능숙하고도 분주한 모습이었다. 식재료를 다루는 능숙한 손매에서는 오랜 내공이 느껴졌다. 근무가 끝난 뒤 셰프복을 벗은 그를 만났다. 그의 좋은 벗이자 이 책의 기획자이기도 한 김성신 평론가도 함께 자리했다.

유재덕은 자신을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기보다는 ‘음식가’란 뜻인 ‘파불루머’로 불리기 원한다고 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직업인이자 따뜻한 온기를 품은 사람 유재덕을 오롯이 만나고 온 날이었다.

(좌) 출판평론가 김성신 (우) 유재덕 셰프

36년만에 재회한 초등학교 동장, 요리사와 출판평론가로 만나다

Q 올해 호텔 주방 총책임자가 되셨다고요. 머릿속에는 얼핏불같이 화를 내는 고든 램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유재덕 : 고든 램지처럼 했다가는 갑질로 고발 당하죠.(웃음) 물론 꼭 필요 할 때는 눈물이 쏙 나오게 혼낼 때도 있지만 일이 끝나면 누구보다 인간적인 선배입니다. 한 번 셰프와 요리사로 만나면 거짓말, 도둑질 하거나 싸우지 않는 한 그 인연은 계속 갑니다.

Q 주방에선 서열이 엄격하다고 들었어요.

유재덕 : 주방에선 셰프의 말이 곧 법이에요. 칼은 의사가 들면 환자를 고치는 데 쓰이고, 흉악범이 들면 살인 도구가 되잖아요. 근데 그런 칼이 주방에는 널려 있거든요.(웃음) 그래서 무조건 셰프 말을 따라야 합니다. 단, 셰프는 누구도 다치지 않게끔 하고 모든 책임을 지지요.

Q 이번에 쓰신 책 <독서 주방>에도 요리사의 삶과 음식에 대한 생각이 생생하게 담겨 있더군요. 이 책은 김성신 출판평론가님께서 기획하셨다고요?

김성신 : 유재덕 셰프와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36년만에 만났어요. 보통은 40대 후반 중년 아저씨끼리 만나면 통상적으로 거치는 루틴이 있죠. 술 마시고, 돈 버는 이야기 하고,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는 만나자마자 요리 얘기만 했어요. 요리사로서의 삶이 얼마나 의미있는지에 대해서요. 제게 출판평론가란 직업에 대해 묻길래 저도 제가 살아온 얘길 해줬죠. 중년의 아저씨 둘이 만나서 36년간 성장사를 한참 얘기했어요.

Q 두 분 다 생각과 취향이 잘 통했던 거네요.

김성신 : 집에 돌아가면서 제 친구가 진짜 건강하게 잘 늙었단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분야 최고 전문가인데도 자기 자랑보다 직업이 가진 장점이나 요리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같은 것만을 이야기 했으니까요. 제가 일주일 정도 있다가 다시 연락을 했고 계속 만나면서 책에 대한 구상이 시작됐어요.

Q 그러던 어느날 김성신 평론가님이 유재덕 셰프님께 책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고요?

유재덕 : (엄지와 검지로 두께를 표시해보이며) 제게 이렇게 두꺼운 인문학 책을 주는 거예요. 처음엔 솔직히 눈은 책을 읽는데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바로 덮으라고 하고 다른 책을 권해주더라고요. 그렇게 편한 책부터 읽기 시작 했어요.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책 읽기에 재미를 붙였죠. 

김성신 : 그렇게 일 년 동안 아무 부담 없이 책만 읽게 했어요. 너 같은 사람이 세상을 위해 글을 쓰면 좋겠다고 얘길 했더니 처음엔 만류하다가 나중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후에 ‘스포츠경향’ 신문에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을 연재하게 됐고 그 글들을 묶어서 이번 책도 나오게 됐지요.

Q ‘셰프’, ‘요리사’란 이름보다 ‘음식가’, ‘파불루머’란 이름으로 불리기 원하신다고요. 이 이름도 김성신 평론가님이 지어주셨다고 들었어요. 음식가, 파불루머의 개념에 대해 간략해 설명해주신다면요?

김성신 : 처음 신문 연재를 시작할 때 요리사보다 더 상위 개념을 찾고 싶었어요. 미슐랭 별을 주렁주렁 단 최고급 식당 요리사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매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드는 주부가 더 상위 개념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러면서 ‘위대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됐죠. 세상이 너무 돈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프로가 더 상위인 것처럼 생각들 하지만 사실은 아니잖아요. 프로는 그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일뿐이고 실은 그 일을 진짜 좋아서 하는 아마추어가 더 우월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요리사’와 대별되는 ‘음식가’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됐어요. 라틴어에 ‘요리’와 구별되는 ‘음식’이라는 뜻을 지닌 ‘파불룸(pabulum)’이란 단어가 있더라고요. ‘마음의 양식’을 쓸 때 등장하는 단어예요. 여기에 영어식으로 er을 붙여 파불루머(pabulumer)라고 이름을 만들었어요. 조선 시대에 선비들끼리 호를 주고 받듯 친구 유재덕에게 파불루머란 이름을 선물한거죠.

“요리사는 엄청난 상상력을 요하는 직업…책에 큰 도움 받았다”

Q 감각을 자극하는 요리와 관념적인 독서는 얼핏 전혀 다른 영역의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유재덕 셰프님이 음식을 만드는데 책 읽기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습니까?

유재덕 : 요리사는 엄청난 상상력을 요하는 직업이에요. 그런 점에서 책에 큰 빚을 졌죠. 팀장 직을 맡기 전 오랜 기간 맡았던 보직이 신메뉴 개발이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환기가 되었죠. 메뉴에 이름을 붙일 때도 재치를 발휘할 수 있었죠. 뿐만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바뀌었어요. 음식 만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과연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Q 19대 대선 후보 식습관 관찰한 대목(p.32)을 재밌게 읽었어요. 요리사의 눈으로 보면 먹을 때의 세세한 제스처도 다르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유재덕 : TV에서 후보들이 길거리 음식을 먹는 장면을 지켜보니 그 사람의 마음이 보였어요. 일단 퍼포먼스를 위해 먹는 사람들은 주인을 안 쳐다봐요. 사진 기자만 쳐다보죠. 반면 먹는 음식에 감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두 손으로 바치고 그 음식을 만든 주인을 봐요. 그런 태도를 보면서 그 사람에게 진심이 있는지 판단을 하곤 했습니다.

Q 결국 주인을 바라본 사람이 당선 됐습니까?(웃음)

유재덕 : 지금 청와대에서 열심히 하고 계시죠.(웃음) 태도가 무척 진중했어요. 물론 정치인이기에 카메라를 아예 의식하지 않을 순 없어요.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심상정 후보는 그 정도가 덜 했어요. 누군가를 앞에두고 카메라만 의식하는 것의 부끄러움을 아는 거죠. 그걸 보면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찍어줘도 되겠구나 생각했죠.

Q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모든 걸 읽어낼 수 있는 거네요.

유재덕 : 음식을 내왔을 때 서비스 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항상 예의를 갖추는 사람들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요. 음식 매너와 예절은 다른 데 가서도 바뀌지 않고 똑같이 적용되더라고요.

Q 책에서 ‘탐식을 강요하는 연예인 먹방’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등장해요. 요즘에 캡사이신이 포함된 매운 음식을 먹는 게 유행인데요. 이런 음식 유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재덕 : 음식은 시대의 심성을 반영한 결과물이에요. 사회나 학교나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매운 맛으로 풀어내려 한다고 봐요.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 내부 스트레스를 잊으려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결과이자 증상이기에 제가 막을 순 없어요. 다만 적극적으로 그런 음식을 권하거나 유행에 따를 마음은 없어요. 유행이나 트렌드는 금방 사그라드는 것이기도 하고요.

Q 또 하나의 거대한 유행인 유튜브 먹방도 본 적 있으십니까?

유재덕 : 몇몇 인기 유튜버 먹방을 본 적이 있어요. 제 시각에서 그건 탐식이지 미식이 아니더라고요. 탐식과 미식을 구분 짓는 지점은 ‘존중’이에요. 음식에 대한 존중, 그 음식을 먹는 자신의 몸에 대한 존중.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결국 어떤 생물은 죽여야 해요. 어떤 생물을 죽여서 내가 먹는 식사가 된 거잖아요. 내가 먹는 한 끼 식사에 대한 감사와, 만든 이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그 순간 탐식이 되는 거예요.

“고급식당 음식도 추억 없다면 2% 부족할 뿐”

Q 셰프님께서 정의하시는 좋은 음식은 무엇인가요?


유재덕 : 좋은 음식은 자신에게 잘 맞는 음식이에요. 내 마음, 내 몸 상태에 들어맞는 음식이어야 하죠. 어제 술을 먹고 속이 쓰린데 아무리 맛있는 크림 파스타가 놓여 있다고 해도 그걸 대할 때 속은 편치 않겠죠. 해장할 수 있는 음식이 그땐 가장 좋은 음식이겠죠. 그래서 좋은 요리사는 손님의 몸 상태나 최근 먹은 메뉴와 겹치지 않도록 살피고 헤아리고 배려해야 해요.


Q  누구에게나 소울푸드가 있다죠. 셰프님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유재덕 : 제 소울푸드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한식이죠. 어머니 살아 계실 때 함께 오이장아찌를 담궜어요. 그걸로 무침도 해주시고, 짠지도 해주셨죠. 어머니가 해주신 두부된장찌개, 김치찌개 생각이 많이 나네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런 음식 냄새가 나는 식당을 찾아들어가게 되기도 해요. 이제는 못 먹는 음식이니까요.
 
Q 줄서서 먹어야 하는 ‘맛집’이 유행하는 세상이지만, 음식의 맛이야말로 정말 개인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영역이라고 생각되네요.


유재덕 : 분위기나 감정, 기억, 추억에 따라서 맛은 크게 좌우돼요. 고급 식당에서 나온 훌륭한 음식인데도 2% 부족할 경우가 있어요. 그 2%가 추억의 맛이거든요.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2% 부족한 데 그치고 말아요. 호텔에 있든 시장에 있든 에너지가 막 발산되는 식당, 좋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식당이 최고의 식당이 좋은 식당이라고 생각해요. 생기가 없고 좋은 추억을 주지 못한다면 결코 퍼펙트한 식당이 될 순 없죠.

Q 호텔 셰프셔서 기술적이고 객관적인 걸 강조하실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걸 완성시키는 건 추억이라고 말씀하시니 더 흥미롭습니다.

유재덕 :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이 제일 맛있잖아요. 밥에 김치에 장아찌 반찬만 있어도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에 먹으면 배가 불러요. 하지만 일반 식당에서는 아무리 고봉밥을 먹어도 배가 고파요. 그건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이 집밥에 열광하는 것 아닐까요? 가령 욕쟁이 할머니 가게에 가는 것도 대리만족인 것 같아요. 내게 친근하게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으니까요.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는다는 기분을 느끼려고요.

Q 최근 몇 년간 음식 열풍이 불어닥친 대한민국에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유재덕 : 미식과 탐식을 구분해서 진짜 미식 열풍이 불었으면 좋겠어요. 오감을 이용해서 먹은 경험이 삶에 대한 사유와 성찰로까지 연결되었으면 해요. 어떤 일본 미식가들은 먹는 음식에 복어 독을 죽지 않을만큼 극소량 뿌린대요. 독 자체가 맛을 낸다기보다는 내가 지상에서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음식일 수 있다는 상황을 만드는 거에요. 이것이야 말로 탐식의 하이엔드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이런 탐식의 극단으로 가기보다는 음식의 정신적인 면에도 집중해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으면 해요.

- 글 : 주혜진(북DB 기자)

-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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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9. 11. 7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8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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