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나, 희귀난치병 환자가 되다.

0.02 퍼센트의 삶이 시작되다,

by 하트맨

"환자분,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놀라지 말라는 말과는 다르게 의사선생님의 표정은 굳어져있었다.




기말고사가 20일 남았던 2019년의 6월 1일 토요일,

국토대장정을 가기 위해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심장에 이상이 의심된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초음파 검사에 긴장할 틈도 없이 찜질복처럼 생긴 가운으로 갈아입은 채 침대에 누웠다. 곧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고 꽉 묶었던 가운을 풀어헤쳤다. 검사기로 가슴 이곳저곳을 문지를 때마다 차가운 젤이 느껴졌다. 검사실은 고요했고, 검사기계에서 들리는 정체모를 소리와 키보드 소리만이 검사실을 채웠다.



40분여간의 길었던 검사가 끝나고,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던 의사 선생님은 말을 꺼냈다.




환자분,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이 말과 함께 내 인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1000명중에 2명, 0.02퍼센트의 사람들이 걸리는 희귀난치성 유전병이라고 했다. 이름도 생소한 '비후성 심근증', 심장근육이 두꺼워져 혈액 공급이 잘 안되는 질병이었다. 게다가 심장을 감싼 주머니에 염증도 생겨있었다. 심장에 물이 많이 차있다며 당장 대형병원에서 물을 빼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대학생에서 급성 심정지의 위험이 높은 희귀난치병 심장 질환자가 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설명을 듣는 동안,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치료는 가능한가요...?"

설명을 듣는 동안 내 왼쪽 어깨를 꽉 움켜쥐시던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큰 병원에서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수술로 제세동기를 삽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심장이 멈추면 위험하니까요.

언젠가 심장이 멈출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야만 한다는 한다는 이야기 같았다. 이렇다 할 치료방법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의사 선생님은 쪽지와 함께 진단서를 주며, 내일은 일요일이니 오늘 꼭 병원을 방문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의사 선생님이 써준 쪽지


진료가 끝나고, 엄마가 아빠와 통화하는 동안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운동선수와 청년들의 흔한 급사 원인', '급성 심장마비', '심정지'를 이야기하는 정보들이 쏟아졌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던 진료실의 모습이, 굳은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나에게는 모두 현실이 되었다.

가슴을 움쳐쥐고 쓰러지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어렴풋이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