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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Sep 11. 2022

타이카 와이티티와 고립

뱀파이어에 관한 특별한 다큐멘터리,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조조래빗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상황은 외부 사람을 보는 데에 편견을 부여한다. 서양과의 왕래가 없었을 때 코쟁이들이 가진 이미지가 그랬고, 군사정권 시절 삼팔선 위 공산주의자 도깨비들에 대한 이미지도 그랬다. 편견은 쉽게 갈등에 불을 붙이기에 드물게 가진 교류마저 충돌이 되어버린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화가 끓어오르는 요즘 모습도 관계의 단절에서 시작된 듯하다. 반면 성공적인 교류는 고립을 넘어 서로를 성장시키고, 결국 더 조화로운 집단을 만든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고립 속에 편견이 가득 찬 상태로 등장한다. 백 년이 넘게 인간들 속에 살았지만 평범한 대화조차 벽에 부딪히는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2014) 속 뱀파이어들, 사회로부터 낙오자 취급을 받는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2016)의 어른과 아이, 나치의 조기 교육으로 모든 유대인을 악마로 바라보는 <조조 래빗>(2019)의 어린이들까지 모두 그렇다. 슬픈 사건들도 웃음으로 덮어나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 막혀있던 인물의 시선은 낯선 세상과의 교류로 마침내 열린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 식사 전 공연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속 뱀파이어들은 생존을 위해 사람의 피가 필요하기에 도심 주택에 모여 함께 살고 있지만,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다. 디콘은 맡은 집안일을 5년 동안 미루고, 블라디슬라브는 과거에 묶여 행동하지 않으며, 피터는 그냥 어둠 속에 박혀있다. 비아고 혼자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나름 회의도 열고, 식사용 인간에게도 최고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둘 다 성과가 시원치 않다. 갓 뱀파이어가 된 닉은 뱀파이어가 된 사실에 너무 신난 나머지 다양한 사고를 친다.

내부에서도 잘 안 맞는데 다른 집단과의 만남이 잘 풀릴 리 없다. 작중 등장하는 늑대인간들은 뱀파이어와 반대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모여 무리 생활을 하는 특징을 보인다. 두 집단은 서로를 무시하는데, 대부분의 비호감이 그렇듯 그 근거가 전무하지는 않다. 늑대인간들은 보름달에 폭력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우두머리의 권위를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지만, 이를 평화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집단 내에서 서로 노력한다. 하지만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그 행동들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뱀파이어들은 이를 조롱하고, 자주 충돌한다.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 함께 탈출하기 시작한 리키와 헥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의 리키는 외적인 문제로 인해 고립되었다. 체구가 큰 사람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은 같은 입양 아동 중에서도 그를 외곽으로 밀어내었으며, 입양되었다가 보육원으로 쫓겨나기를 반복하다 보니 리키의 성격도 더욱 괴팍해진다. 방황을 반복하던 리키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벨라의 가정에 위탁되어 잠시 안정을 찾지만, 벨라의 죽음 뒤로 헥과 둘이 남겨진다.

그와 함께 남겨진 헥 또한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다. 젊은 시절 여러 차례 사고를 친 뒤 사회를 등지게 된 그는, 산장에서 그가 사랑하는 벨라와 여생을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리키를 데려오는 것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일이었기에 데려왔을 뿐 그에 대한 애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내내 툴툴거리던 그는 벨라의 죽음 이후 리키를 아예 버리고 홀로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답답한 보육원과 사회로 돌아가기 싫었던 리키는 헥을 따라 숲 속으로 향하고, 외부의 시선으로는 그들이 유괴범과 피해자처럼 보였기에 마을과 숲 속 모두 소란스러워진다.


<조조 래빗> - 조조의 유일한 친구, 친절한 히틀러

독일 소년 조조 베츨러는 나치를 사랑한다. 항상 나치 제복을 입고 다니며, 잘 이해하지도 못한 나치즘을 되뇐다. 자연스레 그의 마음은 히틀러 유겐트 캠프에 향하지만, 군대식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약한 마음에 토끼를 죽이지 못해 겁이 많다고 놀림을 받고, 용기 내어 던진 수류탄은 튕겨져 돌아와 얼굴에 화상을 입힌다. 풀리는 일 하나 없는 그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은 상상의 친구 친절한 아돌프뿐이다.

누구나 그렇듯 조조는 그냥 또래와 어울리고 싶고, 또래 친구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치 독일에서 다른 사람과의 교류란 미쳐버린 주변 세계와의 교류를 뜻했고, 자연스레 나치즘에 깊게 빠져들고 만다. 혼자서 신발끈도 매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세뇌 교육의 효과는 커서, 나치는 조조에게 항상 밝고 명랑하게 그려진다. 특히 아돌프는 항상 조조를 응원해주며 그가 나치즘에 취해 멀쩡하지 않은 행동을 하길 돕는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인간 스튜

세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사람이 악하다기보다는 교류의 부재로 인해 편견과 화를 가진 것이기에, 친절한 외부인의 접촉은 그들이 가진 편견을 녹인다. 뱀파이어들에게는 인간 친구 스튜가 생긴다. 기계와 사람 다루는 데에 모두 능숙한 스튜는 뱀파이어들에게 카메라와 SNS 사용법을 알려주고, 그들이 변화한 세상에 조금씩 적응해나가길 돕는다. 인간이기에 뱀파이어들이 가지는 파티에 쫓아갔다가 잡아먹힐 뻔하기도 하고 늑대인간에게 실제로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늑대인간으로 돌아온 스튜는 이번에는 늑대인간과의 교류를 돕는다. 서로 으르렁대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은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 예전에 알려주었던 대로 함께 사진을 찍는다.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 정상에서 함께 바라보는 숲

폭력으로 줄곧 감정이 표출되었지만, 리키는 꽤나 감성적인 아이였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하이쿠를 지어 표현하고, 자연에서 발견되는 작은 변화에도 즐거워한다. 그저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헥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그는 리키와는 반대로 너무 오랫동안 마음을 닫아두었기에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숲 속에서 벨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그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벨라 다음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긴다.


<조조 래빗> - 함께 살게 된 유대인 소녀 엘사

조조는 두 번의 접촉으로 바뀐다. 하나는 악마로 생각했던 유대인과의 만남이다. 조조의 나치즘 사랑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보던 엄마 로지는 사실 유대인을 집 안에 숨겨두고 있었고, 우연히 조조는 숨어있던 엘사와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 혹은 멸시의 대상이었던 엘사는 점차 조조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이 된다. 유대인의 악마스러움에 대해 취조한다는 핑계로 괜히 말을 걸고, 엘사의 연인을 질투해 그를 공격하는 가짜 편지를 읽다가도 우는 엘사의 모습에 그녀를 위로하는 가짜 편지를 새로이 쓴다.

<조조 래빗> - 어머니의 신발

다른 하나는 동경하기만 했던 전쟁과 죽음에 대한 접촉이다. 즐겁게 나치 선전 포스터를 붙이다가 쫓아간 길의 끝에는 로지의 신발이 있었다. 나치와 유대인 양쪽 모두를 마냥 즐겁게만 바라보던 영화와 조조의 시선이 어두워지는 순간이다. 이윽고 베를린 공방전이 발생해 그동안 어설픈 훈련만 반복했던 히틀러 유겐트 대원들도 전장으로 향한다. 온몸에 곧 폭발할 탄을 두른 아이들이나 참혹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관객과 조조 모두를 저 현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게 만든다. 동경하던 전쟁의 잔인함도, 두려워하던 유대인의 평범한 이웃으로서의 모습도, 직접 보고 경험한 뒤에야 조조는 자신의 시선을 바꿀 수 있었다.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주인공들은 모두 고립된 상황이 만들어낸 이상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성장이 멈춘 그들에게는 꽉 막힌 시선이 주는 답답함과 아이 같은 순수함이 공존한다. 영화에서 성장 이전 모습도 밝게 그려졌지만, 교류 이전 그들의 모습은 가까이에서 봤을 때는 꽤나 답답할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너무 답답해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친절한 이방인이 더 늘었으면 한다. 그러면 마침내 이루어지는 성장으로 고립되었던 이들에게도 새로운 시선과 기회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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