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소설과 영화를 볼 때, 가끔 저 주인공이 뭐가 그리 특별하길래 그런 기회를 얻었는지 불만 섞인 시선을 보내게 된다. 물론 그들은 특별하다. 감춰져 있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거나, 운명적 사랑이나 처절한 복수를 위해 모든 힘을 쏟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딛고 일어나 결연히 의지를 다지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 설정을 지닌 것은 이야기가 힘을 얻어 진행되기 위한 당연한 결정이지만, 그들이 지닌 무게감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간 거 같은 생각도 든다. 인물이 사라지고 남은 검은 화면에 비치거나 덮인 책장 앞에 앉은 자기 모습을 볼 때 괜히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굳센 의지나 목적 없이 김빠지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인물들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옛 삼국지연의를 읽다가 해당 인물들을 유쾌하게 조롱하는 유튜브의 삼국지를 보면 즐겁듯, 묵직한 이야기를 쫓다가 정처 없이 우습게 떠도는 인물을 봤을 때 얻는 즐거움이 있다. 조금 더 넓은 세계로 향하자면,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웅담이나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가 주는 장중함으로 우주를 보다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시원하게 파괴되는 세상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시작부터 인간은 미미하게 그려진다. 그들이 우쭐대며 사는 작은 지구에서조차도, 인간은 2등인 돌고래에도 밀리는 3등의 지능을 가진 존재이다. 책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발생하는 사건은 은하계 상에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는 일이다. 위에 가만히 잘 있던 거주자로서는 억울한 점이 있지만, 곧 파괴할 것이라는 공고문은 오랫동안 알파 센터 우리에 게시되어 있었으며, 인간보다 영리한 생물들은 이미 지구를 빠져나가고 난 다음이다. 지구를 위해 남은 것은 운 좋게 지구를 벗어난 아서 덴트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남아 있는 두 글자의 서술, ‘Mostly Harmless(대체로 무해함)’ 뿐이다.
Would it save you a lot of time if I just gave up and went mad now?
그냥 제가 지금 포기하고 미치면 시간이 많이 절약되지 않을까요?
- 아서 덴트, 주문 제작된 지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살아남은 아서 덴트는 그 미미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마침 알고 지내던 친구가 외계인이었던 덕을 본 아서는 지구를 파괴하러 온 우주선에 히치하이크하며 지구 멸망을 피해 우주를 돌아다닌다. 흔한 주인공들처럼 그도 불행을 겪고 변화된 상황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인물이지만, 그의 움직임에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맥없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던 아서는 어쩌다 보니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질문까지 향한다. 많은 낯설고 흥미로운 일들을 마주할 때도, 그는 이를 이해하는 대신 홍차만 찾는다.
인물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야기는 시종일관 비극적이다. 살던 곳은 파괴되고, 인류와 지구는 도구적 가치만 지녔으며, 우주에도 멀쩡히 돌아가는 것은 없다. 내부 인물들의 주류 의견도 그와 같다.
In the beginning the Universe was created. This had made many people very angry and has been widely regarded as a bad move.
태초에 세상이 창조되었다. 이 일은 수많은 사람을 화나게 했으며, 대부분은 이를 형편없는 선택으로 여겼다.
대신 이를 한 발짝 떨어져서 독자의 시각으로 보면, 발생하는 모든 비극은 즐거움과 웃음을 준다. 예측대로 순조롭게 풀리는 일 하나 없는 여행기는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지닌 덧없음을 전하며, 오히려 허무함과 무상함 속에서도 삶을 즐기는 방법을 보여준다. 아서의 일행 중 최고 성능의 인공지능 마빈은 너무 많은 깨달음을 얻어 우울증에 빠져있고, 우주선을 총괄하는 컴퓨터 에디는 우주선이 추락하는 상황에도 발랄한 모습을 보여 분노를 유발한다. 과한 지식에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그들의 모습과 무미건조한 아서의 시선을 비교해보며, 모든 것을 건조하게 보면 모든 일이 얼마나 오히려 좋은지 깨닫게 된다.
존재의 하찮음에 대한 통찰은 두 가지 장면에서 특히 인상 깊게 등장한다. 하나는 역대 최고의 슈퍼컴퓨터인 Deep Thoughts(깊은 생각)와 나누는 문답이다. 우주의 모든 고지능 생명체들-물론 인간은 누락됐다-이 모여 만든 컴퓨터는 그들이 요구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의 의미에 관한 질문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요구한다. 750만 년 동안 모든 것을 고려하고, 검토하고, 다시 검토한 결과는 간단했다. 그냥 42였다.
깊이 사유하고 감동할 답변을 기대하던 제작자들은 답변을 듣고 절망하지만, 그리고 꽤 맥 빠지는 답변이긴 하지만, 컴퓨터 입장에서는 자명한 답변이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 두 자리 숫자가 답변으로 제시되었듯이, 의미를 원한다면 각자가 간단하게나 복잡하게나 붙이면 되는 것일 뿐, 사실 삶이든, 우주든, 다른 모든 것이든 별 의미는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우습고 슬펐던, 향유고래의 독백이다. 우주선을 향하던 핵폭탄 두 개는 조금은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아서의 조작으로 각각 향유고래와 페투니아 화분으로 변형되어 추락한다. 자아를 인식하고 자기 지느러미와 꼬리, 배에 이름을 차근차근 붙이던 향유고래는 세상을 갓 즐겁게 맞이하기 시작하자마자 바닥에 도착한다.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끝나는 고래의 삶은 안타까우면서 우습다. 다른 존재들도 기간의 차이만 있을 뿐 과정과 결말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늘 무엇인가 깨닫고 해보려고 할 때쯤 이미 기회는 지나간다. 비관적인 한 마디로 마무리되는 페투니아 화분의 삶에 비하면 고래는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유쾌하고 힘없는 여정은 끝을 맺지 못하고 마무리된다. 돌아갈 지구가 없기도 하고, 시리즈의 첫 권이기도 하며, 의지를 갖고 어디론가 향하기에는 별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시리즈에서도 아서는 휩쓸리고 방황할 뿐 여러 차례 우주가 멸망하는 모습을 멈추기보다는 즐겁게 관망한다. 내 모습과 닮은 힘없는 이야기에서, 많은 웃음과 즐거운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