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오버와 관용

행오버, 행오버 2, 행오버 3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줄어들고 있다. 지속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심해져 온 갈등들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에 의한 검열과 그로 인한 자기 검열이 반복되어 금기시되는 이야기들이 늘어났다. 특히 다수에게 상연되는 이야기에서 그렇다. 유머를 그냥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 재미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는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여러 문화가 혼재되어 더 자유롭다고 인식되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우선시 되면서 금기의 소재가 늘었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작품들에 칼질이 가해졌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의 연출 이후 자신이 코미디 영화 제작을 중단한 이유로 유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모습을 이야기했다. 영화 속 아서 플렉은 이를 반영하듯 기득권층의 속성을 가지고 규격 외의 차별을 받다가 가장 과격한 모습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행오버> - 늑대 무리의 시작

분노 속에 사회를 흔드는 <조커>의 등장 이전에, 토드 필립스 감독은 <행오버> 시리즈에서 무의식 속에 도시를 흔드는 인물들을 보여주었다. <행오버>(2009), <행오버 2>(2011), <행오버 3>(2013) 세 편 내내 마약과 술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영화는 성역 없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조롱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데 집중한다. 등장인물들은 어떤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웃어넘기며, 모든 일을 웃음의 소재이자 추억으로 수용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행오버> - 더그의 결혼식 날 아침, 길 위에서

결혼식 당일 아침, 신랑을 데리고 사라졌던 친구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길 위에서 전화를 받은 필은 아무래도 결혼식은 어려울 거 같다며 신부의 이해를 부탁한다. 결혼식 이틀 전 마지막 파티를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던 신랑 더그와 친구 필, 스튜어트, 그리고 신부의 동생 앨런은 다음 날 숙취 속에 기억을 잃고 더그가 사라진 채로 깨어난다. 이후 지난밤의 일을 수습하고 결혼식 전까지 더그를 찾아오기 위해 방황한다. 정해진 기한까지 비어 있는 기억을 짚어가는 시리즈의 테마이자 영화의 목표는 그렇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제시된다. <행오버 2>에서는 스튜어트의 결혼식으로, <행오버 3>에서는 불법 거래의 현장으로 그 사유는 변하지만 구조는 유사하다.

<행오버> - 이튿날 화장실에서 만난 호랑이

등장인물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조롱을 위해 영화는 그들을 규범에서 이탈시킨다. 우선 공간적 배경을 결혼식이 진행되거나 경제활동을 하는 곳에서 떨어진 곳으로 설정한다.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로 대표되는 널리 알려진 죄악의 도시이다. <행오버 2>의 방콕은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 영화 내에서도 위험성과 혼란스러움을 강조하여 표현된다. 느슨해진 주변 분위기 속 강력한 마약의 의도치 않은 섭취로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일행 중 한 명이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사람을 납치해 두었거나, 호랑이나 원숭이 등 모르는 동물이 방에 같이 있는 기이한 결과에 도달한다.

<행오버 2> - 결혼식 하루 전, 얼굴에 문신을 한 스튜어트

예상치 못한 결과를 수습해가며, 세 사람은 각자 무의식 속에 행했던 일들을 마주한다. 이는 억제되었던 충동이 과도하게 표출된 모습들로 드러난다. 평상시에도 어느 정도 즐겁게 살아온 필과 달리, 반쯤 강제적으로 억제된 삶을 살아온 앨런과 스튜어트는 큰 사고들을 친다.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공격적이었던 앨런은 다른 사람의 충동적인 행동을 부추기거나 동물을 납치한다. 치과의사라는 직업과 함께 안정적으로만 살아오던 스튜어트는 얼굴에 문신을 하거나 자신의 송곳니를 뽑는 등 몸에 위해를 스스럼없이 가하고, 경찰에 맞서 길거리를 화염에 휩싸이게 만들며 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을 표출한다. 오랫동안 강제된 규범은 오히려 그 규범이 잠시 풀렸을 때 더욱 격렬한 반응을 만들었다.

<행오버 2> - 명상하는 앨런

앨런은 중반부에 모든 사건의 원인인 마약 투약이 자신의 행위였다고 자백하는데, 이 역시 앨런의 가족이 그의 사회생활을 강제로 억제했다가 오랜만에 가진 사회와의 교류를 등장인물들에게 떠넘긴 결과이다. 범행을 시인한 그에게 스튜어트와 필은 당연히 화를 내지만, 결국 그 행동을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하며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당장의 분노보다는 문제 해결을 우선으로 두어 의식이 있을 때만이라도 행동이 앞서게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인정 속에 앨런은 카지노에서 8만 달러를 따거나 명상으로 비어 있는 과거의 조각을 짚어내는 등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행오버 2> - 스튜어트의 결혼식 날 아침, 옥상에서

많은 사고들 끝에 이야기는 정해진 의식의 자리로 회귀한다. 포기 선언을 위한 통화였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 그동안 놓쳤던 부분을 깨달아 사건이 해결된다. 문제의 해결 이후 그 사이 저지른 잘못들은 정지된 사진들로 지켜보며 웃음으로 넘어선다. 잘못과 실수로 수용하며 넘어가는 것은 물론 영화이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그 상황들이 그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앨런과 같은 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사람에게 베푼 관용은 언젠가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든다.

<행오버 3> - 앨런의 결혼식 날 아침

<행오버 3>는 끝내 앨런을 성장시키는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이전까지 그의 모습은 이전 시리즈와 다를 바 없어,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범죄자 레슬리 차우와 연락을 지속하다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병원까지 동행해주는 친구들의 인정을 받고, 친구들 외에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생기자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위험에서 구해내며 마무리된다. 모든 이야기는 결혼식이라는 결말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기혼자였던 필을 제외한 세 인물이 차례로 결혼하는 것이 각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그려진다. 친구들이 앨런에게 베풀었던 관용은 치료 없이도 앨런이 정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시리즈 내내 조롱 섞인 유머를 보여주지만, 사실 용서와 인정의 미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의 선을 타는 유머는 분명 여러 차례 선을 넘어 약간의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성공한 웃음이 있었다면, 실패하거나 불쾌했던 유머 역시 하나의 소재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관용이 네 친구 모두 인연을 만나 결혼하게 했듯, 관용은 조금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영화와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